[Review] ‘혼마라비해’ 할 수 없는 까닭, ‘혼마라비해?’ [연극]

“앞으로 일본 국민으로서 모든 권리와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글 입력 2019.09.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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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극장을 나오며, 앞으로 자이니치에 대한 나의 견해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부분들에서 마음 깊이 공감했고, 각 인물들의 서사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재일교포가 느끼고 있을 아픔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시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쉬이 넘겨버리지 않고, 굉장히 가까이에서 정면으로 마주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들을 지나치던 순간들의 내가 부끄러워졌고, 이 뜨거운 안타까움을 ‘민족성’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내릴 수 없음을 알고 나자 정체모를 슬픔이 함께 밀려왔다.

 


 

작품 소개



한류열풍 그리고 혐한시위, 섬세한 시선으로 재일동포의 삶을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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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혼마라비해?>에서는 일본의 ‘자이니치’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와 편견을 다룬다. 일본에서 실제 자이니치와 만나 겪었던 일화로부터 출발한 본 작품은 또한 ‘헤이트 스피치’, ‘오사카조선학원 고교 무상화 차별 사건’ 등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혐한 사건도 작품에 함께 녹아있다.


작품은 일본 오사카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한 가정에 방문한 ‘토종 한국인 작가 신영주’가 우연히 그 집에 걸린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욘사마, 2PM 열풍이 불고, 혐한 시위가 일어났던 2009년의 일본의 풍경과 자이니치의 모습을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작품의 특징이다. 


여긴 누구, 나는 어디? 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조선인. 한국, 북한, 일본 태어날 때부터 어느 한 나라의 소속이 되는 자격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해왔던 재일동포들, 그리고 한국에서 나고 자라온 ‘토종 한국인 신영주’. 같은 핏줄로 태어났지만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만남이 보다 사실적인 대사들을 통해 유쾌하고 재치 있게 풀어져 나갈 예정이다. 

 

 


‘조선인’이라는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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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생각할 때면, 역사·정치·사회적으로 너무나 긴밀하게 엮여있는 ‘먼 이웃’이라는 생각에 복합적인 감정이 따라오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은 배울 점은 많지만 어딘지 얄미운 나라였고 마냥 좋게 생각하기에는 밑지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역사적인 아픔 때문일 테다.


그 아픔이 해소되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얽혀있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아픈 과거의 연장선에 살면서 ‘조선’이라는 뿌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부끄럽지만 최근의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 조선인 학교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적이 있었어도, ‘조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재일 교포에 대해 진정성 있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은 극을 보고 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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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해방 후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의 후손으로, 분단 이전의 한반도를 뿌리 삼아 일본에서 태어났음에도 ‘조선’의 역사와 정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의 근간을 지키려는 이러한 노력이 달갑지 않다. 한국이라고 해서 이들을 같은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고 반기는 분위기도 아니다. 때문에 조선인들을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물론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조선인이라는 국적을 그 역사를 가진 우리가 알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과 같은 편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인들이 북한식 교육을 받고 자란다는 것에 불편함이 느껴져 부정적인 견해를 앞세우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감히 그 배경과 역사부터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 말하고 싶다.

   

  


선택의 이유



영주가 오사카에 건너가 하숙집에서 조선인들을 만난 후,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극 중의 인물들은 모두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 중 어떤 것이 더 좋은 방향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장면들에서 아주 많은 생각이 필자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현규는 독도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양국에서 외면을 받았고, 우진은 대학 진학을 위해 조선인을 제외한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했다. 지숙은 한 순간 인기 가수에서 매국노로 전락한 현규를 지켜보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이 셋은 모두 일본 국적으로의 귀화를 택했고 일본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이 원했던 대로 계속해서 조선인으로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어느 한쪽에 속해야만 한다는 사회의 시선이 끊임없이 이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 중 현규의 모습이 가장 눈에 밟혔다. 한번에 귀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두 번째가 되어서야 그는 일본 국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말을 우느라 내뱉지 못한 까닭이었다.

 


“앞으로 일본 국민으로서 모든 권리와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에게 일본 국민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한국에 태어난 한국인인 내가 헤아릴 수 있는 무게는 한참 벗어나 있을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더욱 안타깝고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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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라비해’ 할 수 없는 까닭



현규와 지숙은 일본인으로 귀화하여 동양인들이 많이 살지 않는 라트비아로 이민을 갔다. 우진 역시 일본인으로 한국 대학에 진학한 후 일본 기업에 취직했다. 광식이 아저씨는 여전히 하숙집을 운영하며 조선인 학교에 나가 한글을 가르치며 조선의 뿌리를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그의 삶을 살 테다. 각자 자신의 삶을 충실히 이어가고 있을 것임에도, 후련해지지 않았던 것은 나의 애매한 책임감과 연민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극의 결말이 나에게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이들이 가진 아픔에 진작 공감하지 못하고 무지와 무관심을 핑계삼아 좀더 열린 마음을 갖지 못했기에, 인물들의 슬픔이 생긴 것만 같아 안타깝고 미안했다. 영주의 말처럼, ‘같은 땅에 나지 않았음에도 나보다 더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정신을 지키려는 타국의 조선인들과, 이제는 고통을 함께 헤아리고 나눠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혼마라비해’, 정말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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