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몸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경의, 아워바디 2019 [영화]

살기 위한 움직임
글 입력 2019.09.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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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너머 눈에는 빛이 없고, 등과 어깨 머리까지 아래로 쳐져 무기력해 보이는 모양새를 가진 평범한 여자가 나온다. 그 여자의 이름은 자영. 자영은 명문대를 나왔고, 30살까지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지금은 결론적으로 변변한 소속 하나 없는 백수이다.


자영은 어느 날 집 앞의 공원에서 안정적으로 힘차게 달리는 여자를 보고 영감을 얻어, 달리기 초보를 위한 동영상이 틀어져 있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운동장을 뛰어 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곧장 잘 달리지 못한다. 


자영은 공원에서 봤던 여자를 다시 보게 되어 따라가게 되고, 안정적으로 빠르게 달리는 여자를 쫓아간다. 온몸이 땀에 젖고 숨이 턱 끝까지 헉헉 찬다. 죽을힘을 다해 여자를 쫓아간다. 마침내 여자와 가까워지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울음을 토해낸다. 주저앉아 힘껏 눈물을 토해내는 자영을 뒤돌아보는 여자의 이름은 현주.


자영은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사실은 달리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공부를 했을 것이며 밥 먹을 때나 누워서도 시험을 인식할 수밖에 없게 고시원 방의 곳곳에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벽에 붙여 놓았다. 이 세상 누구보다 가장 자신을 잘 괴롭힐 수 있는 자신에게 채찍질 당하며 시험을 준비했을 것이다. 약해지려는 마음들을 욱여넣어가며 그렇게 달렸을 것이다. 무기력함은 오히려 너무 달림으로써 왔을 것이다. 8년 동안 친구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엄마의 눈칫밥을 먹으며 깊은 물속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 마냥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자영은 현주가 속해 있는 달리기 동호회에 들어가면서 점차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다. 친구가 대리로 있는 회사에서 자존심을 구겨가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자영은 퇴근 시간이 오면 곧바로 가방을 챙겨 달리러 간다. 자영은 거울을 통해 달리기가 주는 몸의 변화를 생경하게 지켜본다. 맞지 않던 바지가 들어가며, 얼굴에는 생기가 돌아 주변 사람들도 인식할 만큼 긍정적인 변화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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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몸을 보는 자영(배우 최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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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자영(배우 최희서), 오른쪽 현주(배우 안지혜)


현주는 달리기하다 힘이 들면 자신의 뒤에 바짝 붙어 자신의 기를 뺏어가라며 자영을 뒤에 세우고 달린다. 둘은 부쩍 가까워진다. 자영은 현주의 집에 놀러 가 현주가 만든 술을 먹는다. 술 좋아하냐는 자영의 말에 현주는 "술 먹으려고 운동하는 건데?"라고 대답한다. 이 대사 한마디는 단순히 그냥 던진 농담이 아니다. 현주는 살기 위해 운동했다. 자영은 현주에게 "달릴 때 무슨 생각 해?"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 말에 현주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현주의 달리기 목적은 살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죽고 싶은 마음을 버리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 죽은 것 같은 내 몸을 억지로 움직여 나의 발바닥, 나의 무릎, 나의 종아리, 나의 허벅지, 나의 팔, 나의 머리카락의 움직임을 느끼고 심장이 뜀을 느끼는 것. 그로 인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곱게 화장한 얼굴과 정장 차림으로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던 현주는 이후 며칠간 동호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은 현주 누나가 회사는 빼먹어도 달리기를 빼먹은 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고 며칠 후 현주는 아무렇지 않은 듯 동호회에 나타난다. 자영에게 오늘은 네 뒤에서 달려야겠다며 말한 현주는 어느 순간 자영을 앞질러 가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던 현주는 차에 치여 죽는다.


현주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자영은 현주의 집에서 자던 날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고통스러워한다. 동호회 사람들은 현주가 소설을 쓴다는 것에 경의를 표했지만 정작 그 이야기는 궁금해하지 않았고, 현주가 자영에게 조심스레 내 소설 읽어볼래?라고 말을 꺼냈을 때 자영은 잠에 들었다. 현주의 집은 모델하우스 마냥 짐이 없었고 오로지 서재에만 책들이 있었다. 현주의 장례식은 조용히 시작돼서 조용히 끝났다.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에게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이야기가 전부인 사람에게 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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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뻔하지 않았다. 운동을 함으로써 무기력한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발전시킨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하지 않았다. 내가 요가를 시작한 이유가 생각났다. 처음 나는 잠이 많은 것이 체력의 탓이라고 생각해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처음의 목적과는 달리 지금 나는 잘 버티기 위해 요가를 한다. 내 생활에 만족했다면 아마 나는 요가를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괴로운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려 요가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몸은 움직여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우리의 몸은 강해서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발끝부터 얼굴까지 열이 올라오고 머리가 윙윙 울려도 내 몸은 버틴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운도그, 업도그, 전사자세, 플랭크, 하이런지, 로우런지 등 요가 선생님의 말에 따라 엉덩이를 들었다가 놨다가 한 쪽 다리는 들고 온몸에 힘을 준 채 한 가지 자세로 3분간 버티다 보면 오로지 다른 잡생각은 사라지고 버티는 것만큼의 고통만 남는다.


운동의 목적이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질문은 과연 자영이는 살아갈까, 하는 것이다. 영화 내내 현주와 같이 자영은 위태로웠다. 친구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인턴을 하는 와중에 정직원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결과적으로 자영은 회사를 나와 돌아가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고급 요리를 대접한 후 정직원이 됐으리라 굳게 믿는 엄마에게 자영은 엄마는 쉬지 않고 얼마나 달릴 수 있냐고 묻는다.


요가 수련의 마무리는 사바사나이다. 사바사나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송장자세이다. 두 다리를 뻗고 누워 손은 손바닥이 위로 보이게 허벅지 옆에 두는 편히 쉬는 자세이다. 우리가 해온 여정의 자연스러운 완성으로 수련의 끝을 상징한다. 고통스러운 50분의 수련시간과 진이 다 빠진 채로 느끼는 10분간의 달콤하고도 편안한 휴식시간을 위해서 요가를 한다. 사바나사나 기다리고 있음을 꼭 잊지 않는다. 즉, 우리는 쉬기 위해 달린다. 우리의 목적이 꼭 쉼에 있음을 절대 잊지 않아야 한다. 모든 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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