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달콤시큼한 복수의 주문, "레몬" [도서]

글 입력 2019.09.2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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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권여선 장편소설


우리는 보통 복수의 색깔을 어떤 색으로 꿈꾸는가. 서슬퍼런 복수의 칼날을 생각하면 파란색일 것이고, 화 또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면 붉은색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레몬”에서의 복수의 색깔은 다르다. 샛노란 레몬색이다.


<레몬>은 한일 월드컵으로 전국민이 열광하던 2002년을 배경으로 한다. 월드컵 마지막날, 열아홉살 고등학생 해언은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존재 자체로 아름다울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던 해언의 죽음, 그리고 찾지 못한 범인. 결국 사건은 해결되지 못한 채 17년이 흘러버렸다.


소설은 해언의 동생 다언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처음엔 다언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사건의 해결자, 탐정 역할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조금씩 읽을수록 그게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이 소설은 살인사건이라는 소재와 달리 용의자가 누구인지 추측해나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고, 범인을 잡아내는 쾌감을 선사하는 추리 소설은 명백히 아니었다. 대신 그보다 한층 더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기로 작정한 듯 했다. 바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보내줄 준비가 안 됐는데



다언은 해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어 끝까지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이다. 당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한민우의 집까지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는 범인을 밝혀내는데에 실패한다. 언니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졌지만 결국 명쾌한 정답을 얻지 못한다.


다언의 어머니 또한 딸 해언을 잊지 못한다. 이름을 잘못 지었기 때문이라며 해언의 원래 이름이었던 ‘혜은’으로 개명을 신청해보지만 사망자는 개명이 불가능해 번번히 거부당한다. 이에 다언은 해언의 외모와 닮도록 계속해서 성형을 한다. 어머니는 그런 다언을 막지 않는다. 억지로 해언을 복원시켜놓고, 그렇게 두 모녀는 죽은 듯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봄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듯이 나는 내 삶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다”


- 소설 <레몬> 中



하지만 사건으로부터 17년이 흐른 시점, 다언은 다시금 언니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 후 복수를 결심하면서 용의자들을 추적하고 사건을 파헤친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한다.


“레몬”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갑작스런 죽음에 제대로 된 애도도 하지 못하고 보내버린, 그래서 그 상실감이 너무도 깊어져 상처로 남아버린 남겨진 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말이 어울리는 듯 하다. 우리 시대의 큰 상실의 아픔인 세월호와도 이러한 맥락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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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그 아쉬움과 분노, 억울함은 남겨진 이들의 마음 언저리에 남아 계속 그들을 괴롭힌다. “어쩌면 죽었어야 했을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내가 아니었을까”, “내가 그 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까”와 같은 자신에 대한 원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해답이 없이 늘어진다. 다언도, 그의 어머니도, 상희도, 한민우도, 윤태림도 전부 죽은 해언을 의연하게 보내주지 못했다. 다언도 사건의 해결자가 아니다. 그저 상처로 물든 남겨진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우리 언니 해언도 곧 날아가버릴 새처럼 그렇게 따스하고 향기롭게 살아있지 않았던가.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순간들이 삶의 의미일 수는 없을까.”

- 소설 <레몬> 中





복수의 주문이자 잃어버린 낙원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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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레몬>은 표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새까만 검정 바탕에 커다랗게 박혀있는 선명한 노란빛의 레몬. 소설에서 레몬은 해언이 죽은 당시 입고 있었던 레몬색 원피스로 언급된다. 그 외에도 참외, 계란 프라이의 반숙 노른자 등으로 노란색을 상징하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처럼 작가가 노란색을 복수의 상징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란색은 <레몬>에서 밝고 명랑한 색이었다가, 분노를 다짐하는 색이었다가, 치유의 빛이었다가, 과거의 행복이었다가, 잃어버린 낙원을 말하는 색으로 무수히 변화한다. 그래서 레몬의 달콤시큼함처럼, 평온하게 살려고 해도 그렇게 살아지지만은 않는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라진 이들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남겨진 이들의 상징이기도 한 세월호의 노란 리본처럼 말이다. 다음 생은, 그것도 아니면 어떤 이의 생 하나만큼은 평범하게 태어나 평화롭게 살다, 평온하게 죽은 적이 있기를, 기도하는 작가의 마음이 절실히 와닿아 더욱 서글퍼졌다.



"삶이 결코 평범하지도, 평화롭지도, 평온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늘 당연하면서 놀랍고, 이상하면서 또 궁금하고, 두려우면서 매혹적이어서, 우리는 자꾸 삶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 소설 <레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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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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