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till life with flowers in a vase, 폴 세잔 [영화]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을 보고
글 입력 2019.08.2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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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문제집을 챙겨 간 카페의 테이블에 두꺼운 도록이 놓여 있었고, 문제집 대신 도록을 펼쳤다. 첫 장부터 끝까지 영어로만 되어 있어서 작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미술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그림을 볼 줄도 몰랐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도록의 주인은 Paul Cezanne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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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life with flowers in a vase>
by Paul Cezanne,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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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따라 그려 본
<Still life with flowers in a vase>


집에 와서 도록에서 본 작품을 검색해보았다. 1885년에 유화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이었다. 무작정 따라 그려보았다. 그러면서 거칠어 보이는 붓질 속엔 아주 섬세한 색의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폴 세잔은 한 시간에 붓질 한 번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표현에 신중했다. 나도 이 색은 도대체 어떤 색연필을 사용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세잔의 그림과 달리 아주 쨍한 색이 되었고, 내 그림은 미완성으로 남겼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약 130년을 넘어 나에게 닿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잎이 내려앉고, 꽃들도 바닥을 향해있다. 그러나 제목은 Still life였다. 세잔은 죽어가는 꽃들 사이에 살아있는 꽃 송이 하나를 발견하는 사람이었나 궁금했다. 지금 와서 보니 여전히 살아있는 꽃이 그토록 외로워 보인다.

세잔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주로 혼자 먹는 밥엔 밥 먹을 동안만 볼 심심한 영화를 틀어 놓는다. 통신사 단말기에서 제공하는 무료 영화 채널에서 드라마 장르를 검색하다가,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발견했다. 2016년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영화였고, 한국에서는 크게 흥행하지 않은 영화인 것 같았다. 잠깐 틀어놓으려던 영화는 어느덧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감독 다니엘르 톰슨


movie_image.jpg
영화 속 폴 세잔(기욤 갈리엔)과
에밀 졸라(기욤 까네)


영화는 작가 에밀 졸라와의 우정을 통해 폴 세잔의 삶을 조명한 것이었다. 그림과 달리 세잔은 무정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에게 무정했고, 아버지의 뜻을 거슬렀고, 어머니를 한 평생 걱정시켰고, 친구를 비난하는 것도 일쑤였다. 고집이 워낙 세 다른 화가들과의 만남에서도 깽판을 부리고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도 유일하게 에밀 졸라의 충고는 곧잘 들었다.

폴 세잔(Paul Cezanne, 1839.1.19~1906.10.22)은 프랑스의 화가이며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리고 세잔과 약 40년간 우정을 이어갔던 에밀 졸라(Emile Zola, 1840.4.2~1902.9.29)는 대표작 <목로주점>, <나나> 을 남긴 자연주의 작가이다.

에밀 졸라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여의고, 프랑스 남부인 엑상프로방스(Aix-en-province)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파리의 악센트와 왜소한 체격을 가진 졸라는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고, 세잔은 졸라를 구해준다. 졸라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잘 익은 사과 몇 알을 바구니에 담아 세잔의 집에 찾아간다. 그 이후 졸라와 세잔은 세상 둘도 없는 절친이 된다. 졸라는 문학에, 세잔은 그림에 관심을 갖고 서로의 예술적 가치관을 공유한다.

아버지가 은행장인 세잔과 달리 더 이상 시골마을에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던 졸라는 18살이 되어 파리로 돌아가고, 세잔과 졸라는 편지로 우정을 이어 간다. 아버지의 반대에 엑스 법과대학에 등록한 세잔은 졸라에게 "아아 괴롭다네! 법학이라는 고문의 길을 택했다네. 나에게 혐오감을 느낀다네. 술만이 나를 번뇌에서 벗어나게 한다네." 고통 섞인 편지를 보냈다. 그에 대한 졸라의 답장이 인상 깊다.


폴 세잔에게

너는 나에게 수수께끼이고, 스핑크스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자 풀 수 없는 신비 같은 존재야.

만일 네가 목표에 도달할 생각이 없다면 나도 네 행동을 이해하겠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로선 정말 이해하기 힘들어.

지난 편질 읽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 있었어. "난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행동하고 싶어. 왜냐하면 내 행동과 내 말은 모순 관계에 있으니까 말이야."라는 구절이었네. 이해하려고 여러모로 생각을 해봤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

대체 너의 행동이란 게 뭐가 있지? 그저 게으름뱅이 모습 아닌가? 이렇게 말한다고 충격 받진 말게. 넌 지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어. 그러다 아버지에게 파리로 유학 보내 달라고 말하겠지. 아버지께 그런 부탁을 해도 지금 행동관 전혀 모순이 없을 것 같네. 법률 공부는 뒷전이고 지금 자넨 박물관만 드나들고 있으니 말이야. 그림이야말로 네 유일한 관심사야. 네 희망과 행동엔 모순이 없어.

한번 까놓고 이야기 해보게나. 그렇다고 너무 화를 내진 말고. 네겐 신념이 부족해. 생각이나 행동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지. 우유부단함 때문에 너는 그저 시간과 우연에 몸을 맡기고 있네.

전에 한 말을 되풀이해야겠어. 그게 친구로서의 도리인 것 같네. 여러 면에서 우린 성격이 비슷해. 그렇지만 내가 너라면 지금 끝장을 보고 말겠어. 이 모든 걸 위해 전부를 거는 거야. 예술과 법률 사이에서 더 이상 우왕좌왕하진 않을 거야.

어정쩡한 상태 때문에 네가 고통받고 있는 걸 잘 알고 안 됐단 생각도 하지만 지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네. 화가가 될 건지 법률가가 될 건지 하나를 택하게.

참, 네 편지 중에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게 또 하나 있었어. 생각처럼 그려지지 않는다고 창문에 붓을 집어던졌다고? 무엇이 그토록 조급하고 무엇 때문에 그토록 변덕을 부리는 건가?

네가 오랜 동안 그림을 공부했고 수천 번 그리기를 반복했는데도 결과가 그랬다면 이해할 수 있지.


졸라는 세잔을 위해 따끔한 조언을 할 줄 아는 친구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세잔의 재능을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졸라는 배를 주릴 듯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었고, 세잔은 현실과 이상 그 사이에서 몹시 방황하고 있었다.

1861년 4월, 22살의 세잔은 마침내 화가로 살기로 결심하고 파리로 상경한다. 파리에 도착한 세잔은 스위스 아틀리에 미술학교에서 누드화를 공부하고 오후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파리 보자르 미술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 국립 미술 아카데미가 독보적으로 주관하는 정기 살롱전의 작품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러나 파리에 상경한지 5개월이 지나 화가로서의 진로에 자신이 없어지자 낙담에 빠진 세잔은 엑스로 귀향했다.

영화 속에서도 세잔은 자신의 그림들을 집어던지고 물감을 붓는 모습을 보인다. 그를 찾아온 졸라는 "재능을 증명만 하면 될 텐데,예술가로서 베짱이 부족하다" 라고 말한다.

1862년 졸라가 여름휴가를 보내러 엑스로 내려왔고, 졸라는 이 무렵 문인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같은 해 11월 세잔은 졸라의 충고를 받아들여 파리로 다시 상경했다.

국립 미술 아카데미 살롱 전에서 떨어진 화가들을 위해 1863년 낙선 전이 처음 열렸고 세잔도 참가했지만 떨어졌다. 영화 속 세잔은 "낙선전에도 낙선한 화가가 나네"라고 빈정댔다. 이어 1866년 3년째 살롱전에 출품했지만 심사위원으로부터 "마치 권총으로 그려진 그림 같군"이라는 혹평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대중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세잔과 달리 1870년대 졸라는 결혼도 하고 [테레즈 라캥], [목로주점] , [나나] 등을 발표하며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으며 돈을 쓸어 모은다.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세잔은 점점 세상과 멀리한다. 자신과 같이 낙선하던 마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까지 전부 입선해 더더욱 절망에 빠진다.

그 즈음부터 졸라와 세잔은 자주 다투게 되고 졸라는 편지를 보내 끊임없이 세잔을 격려했다. 사실 그 즈음 세잔도 부인과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세잔은 결혼할 마음이 없었는데 자신을 묶어 둘 여자는 이 세상에 없으며, 아버지가 부인을 마음에 안 들어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잔에게는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그림에 몰두하는 일, 심지어 자기 자신보다 그림을 더 사랑했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대도 세잔은 끝까지 그림을 놓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과 다르게 크게 성공하고 제 힘으로 저택을 짓고 사는 졸라와의 관계는 질투와 자기 비하, 자격지심과 비참함 그 어떤 것 사이에서 삐거덕 거리긴 했지만 1885년까지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세잔이 프로방스에 머물 때는 서신을 통해 졸라와의 옛 우정을 확인하곤 했고, 졸라의 저택을 찾아와 며칠이고 머물다 가곤 했다.

1886년 졸라는 소설 <작품>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세잔과 졸라의 40년 우정을 끊어 놓았다. <작품>은 등장인물 화가 클로드 랑티에가 겪는 예술적 좌절과 무능력을 주제로 한다. 클로드 랑티에는 세잔의 비극적인 면을 골고루 가지고 있었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그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엑스 프로방스와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 천재 예술가 클로드 랑티에는 자신의 재능에 실망한 나머지 미완성 화폭 앞에서 목을 매달고 만다. 이를 읽은 세잔은 충격에 빠져 졸라에게 편지로 인연의 끊음을 선언한다.


"<제작>을 조금 전에 받아보았소. 과거의 산증인, <루공마카르 총서>의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오. 동시에 우리들의 옛 나날들을 위하여 악수를 청하는 바이오. 자네에게 우리의 옛 시간을 되돌려주오. 폴 세잔."



1902년, 9월. 졸라는 질식사로 사망하고, 1890년대가 돼서야 인정받기 시작한 세잔은 엑상 프로방스에서 은둔하며 그림에만 몰두한다. 은둔하던 세잔은 다음날 정원사의 입을 통해 졸라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세잔은 울음을 터트리며 아틀리에로 뛰어 들어가 그곳에서 3일 내내 칩거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4년 후 세잔은 폭풍 속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폐렴으로 사망한다.





현실에선 세잔이 졸라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이후로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지만, 영화에선 세잔이 졸라에게 절교의 편지를 보낸 이후로 졸라의 집에 쳐들어가 서로 싸우며 속 얘기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처럼 세잔과 졸라가 예술의 창작자로서 서로의 피폐함을 나누고, 자신의 재능에 대한 무력함과 의심과 죽음에 대한 불안에 대해, 어제 만든 작품이 다음날엔 쓰레기로 보여 북북 찢어버리는 것에 대해, 매일 새벽에 문득 쉼표 하나를 고치기 위해, 붓질 한 번을 더하기 위해 벌떡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에 대해, 예술가의 고통에 대해 나누고 서로를 응원했으면 어땠을까 졸라가 세잔에게 쓴 편지 중 "완전히 멀어지기에 서로를 너무 잘 안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들이 아는 만큼 했으면 어땠을까 슬퍼진다. 도록에서 보았던 Still life with flowers in a vase는 졸라와 절교하고 2년 후에 그려진 작품이다. 세잔의 외로움이, 쓸쓸함이 와닿는다.


+
세잔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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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s and Oranges>
by Paul Cezanne,  1895-1900


사과는 세잔의 대표작이다. 세잔은 눈에 보이는 대로의 간단한 형태와 사물의 본질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그는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보가 어떻게 구김을 만드는지에 집중했고, 각각의 사과를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았다. 특히 왼쪽 사과의 접시는 위에서 내려다 본 듯하고 그 옆의 오렌지 접시는 약간 밑에서, 물병은 바로 앞에서 바라본 듯 각각의 시점이 다 다르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원근법과 차이를 두면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이 외에도 사과 그림이 유명한 이유는 세잔이 사과를 그리기 좋아했기 때문인데, 영화 속에서 모델한테 "움직이지 마. 사과는 안 움직여" 말하듯 사과는 과일 중 가장 오래 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과는 졸라가 어렸을 적 자신을 구해준 세잔의 집에 바구니에 담아온 것이었다. 사과를 그리며 필연적으로 졸라를 추억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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