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논문을 무대화한 공연, 그리고 시노그래피 [공연예술]

'퍼포논문' 기획공연 <셀프-리서치그라피>를 보고 와서
글 입력 2019.08.2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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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공연된 <셀프-리서치그라피>를 보았다. 한 사람이 구성·연출·출연한 공연이었다. 이 작품이 1인 공연이라는 점은 꽤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공연의 바탕이 된 것이 창작자가 쓴 한 편의 논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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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로 창고극장은 작년부터 ‘퍼포논문’이라는 기획공연을 해왔다. '퍼포논문'은 "연극, 퍼포먼스 관련 최신 논문을 무대화하는 프로젝트"인데,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렇게 작년 여름 처음 보게 된 이 기획공연은 나에게 다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익숙한 주제가 낯설어졌고, 그 낯섦 때문에 교감이 어려웠다. 그런데 그것이 논문에서 출발했기 때문인지, 그저 공연의 이야기 방식이 잘 소화되지 않아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올해에도 ‘퍼포논문’이 공연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곧바로 보러 갈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극장 홈페이지에 소개된 창작자의 소감을 읽고는 꼭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가졌던 질문들에 대한 한 가지 답이 이 공연에 담겨 있을 것 같았다.



“퍼포논문을 준비하면서 연구자도 어쩌면 연극 창작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방법이 좀 다를 뿐이지, 연극을 글자로 남기는 것도 연극에 대한 일종의 2차 창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공연예술을 연구하는 이론가, 연극을 연구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관객들이 알면 좋겠어요. 그리고 연구자로서 비평이나 배우, 연출가의 작업 방식, 그의 미학이나 방법론 등으로 논의되어왔던 것들을 연극의 시노그래피적 관점으로 말해보고 싶어요.” (저자 이지혜)



여기서 언급된 ‘시노그래피’가 공연의 출발점이었다. 시노그래피는 "연극 공간과 무대 구성에 관한 기술 및 학문을 총칭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공연은 꽤 많은 부분을 이 ‘시노그래피’의 개념 및 역사를 설명하는 데에 할애하고 있었다. 보는 동안에는 왜 이렇게나 자세히, 친절하게 배경을 설명해주는 걸까 하고 의문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공연이 다 끝나고 난 뒤에 이 공연이 말하고 있는 바를 전체적으로 떠올리며 그 이유를 납득했다.


‘퍼포논문’이라고 해서 논문 전체를 무대에 올릴 수는 없다. 구성-연출-출연을 맡은 저자는 선택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대화에 있어서 이 연구의 배경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도록 결정한 것 같았다. 논문에서 새롭게 분석한 내용 그 자체보다는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되기 전, 꼭 필요한 것들을 모으고 탐구한 부분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듯했다. 실제로 그의 연구는 이 공연과 함께 이제 막 발을 떼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 됐든 그 결정은 꽤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연구의 배경이 되는 것들을 명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논문의 핵심적인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정된 시간 동안 내가 알 수 있는 만큼까지는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노그래피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던 사람으로서 그것이 가진 학문적 의미를 알게 되었고, 나아가 보편적인 관극 행위 안에서 시노그래피가 갖는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중심 개념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 연구를 하게 된 이유, 이 논문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도 연구 배경에 해당됐다. 그 이야기가 제목에 쓰인 ‘셀프-리서치그라피’ 부분이었다. 공연자가 연극에 발 담그고 살아온 시간을 눈과 귀로 따라가며, 나는 창작자의 삶, 연구자의 삶 그리고 그 둘을 자연스레 교차해온,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의 삶을 목격할 수 있었다.


관객인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이어질 그의 연구와 또 다른 연극적 시도를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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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노그래피’라는 주제를 무대 구현의 방식으로서도 아주 성실히 담아냈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무대 장치가 함께 말했다. 시노그래피의 역사는 줄지어 놓인 소품들로 한눈에 보이는 시각적 연대기가 되었고, 연구자 본인에 대해 말하는 ‘셀프-리서치그라피’ 파트에 다다라서는 조명과 그래픽과 촬영 기법이 이야기에 전면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의 공연을 보며 최근에 내한했던 로베르 르빠주의 공연 <887>이 떠오르기도 했다. <887>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 또한 정교하게 짜여진 대로 이야기에 복무하는 무대 장치들이었다. 로베르 르빠주는 조명, 미디어 아트, 사실주의적 조형물 등을 활용하여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것은 때로 과도할 만큼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해가기도 한다.


이번 <셀프-리서치그라피>가 그런 점에서 과도했나, 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확실히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들에서도 시각적 요소가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것이 불편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형식상의 특징으로 다가왔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시노그래피적’ 공연을 연출한 것으로 보였다. 연구자가 이 공연을 통해 또 하나의 실험적 연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번 관람을 통해, 지난번 '퍼포논문' 공연에서 느낀 낯섦과 어려움은 이 기획 공연의 본질적 결함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논문이 무대의 언어로 탈바꿈하여 읽히는 일은 참으로 재미있고, 또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연극을 하는, 연극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고, 보려 하지 않는 연극과 연극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지금, 계속해서 창작자와 연구자의 작업을 바삐 쫓아다녀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 과정은 전적으로 나 좋자고 하는 일이 될 것이다.

 


* 참고: <셀프-리서치그라피> 프로그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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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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