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손톱과 어른의 상관관계 [사람]

손톱에 대한 결론 없는 독백
글 입력 2019.08.20 20: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학교.jpg
 


초등학교 때는, 반마다 학급을 대표하는 ‘조폭 마누라’가 있었다. 그 나이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성장이 느려서 나보다 키가 큰 남자애가 거의 없었다. 등치도 크고, 목소리도 큰 데다가 남자애들한테 싸움도 이기려 드는, 그런 선머슴 같은 여학생을 남자애들은 ‘조폭 마누라’ 라고 불렀다.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짓궂은 장난으로 다른 여학생들을 울리기 좋아하는 남학생들에게 나는 건드리지 못하는 대상이었고, 여학생들에게는 든든한 대장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남자애들을 잡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나는 매년 담임선생님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항상 같은 반 여학생 연경이와 나를 비교했다. 지금도 연경이를 생각하면 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를 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새까만 긴 생머리에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항상 책을 읽거나, 교실 뒤에서 여자애들이랑 공기놀이를 하며 놀곤 했다. 내가 사고를 치고 친구들 앞에서 혼날 때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제발 연경이 좀 닮아라, 얼마나 보기 좋으니?’


내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연경이를 쳐다보면 그녀는 항상 조용히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입을 가린 손마저 너무 연경이의 손 다웠다. 하얗고 쭉 뻗은 손가락 끝에는 가지런한 손톱이 윤이 나게 빛났다. 나는 다 물어뜯어서 못생긴 손톱을 뒷짐을 지며 뒤로 숨겼다.


‘쟤는 손톱도 예쁘네’



중간손톱.jpg
 


예쁜 손톱에 대한 동경, 혹은 집착이 그때 생긴 게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한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부터 나는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타고난 손톱도 작았는데, 틈날 때마다 실컷 이빨로 괴롭혀 줬더니 더 못생긴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때 나는 짧은 반 곱슬머리에 헐렁한 티셔츠와 카고 바지 입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뛰어다닐 때 나풀거리기나 하는 치마보다는 그런 옷이 훨씬 나으니까. 치마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간 날은 한 손에 꼽힌다. 가끔 나를 곱상한 남자애로 착각하는 어른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나와 연경이를 비교할 때마다 억울했다. 굳이 따지자면 연경이는 나와 모든 면에서 반대인 친구다. 생긴 것도 반대 성격도 반대,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 같아질 수 없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그전만큼 남자애들과 뛰어다니지 않았다. 사춘기였다. 여자애들 사이에서 혼자 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흔한 여중생A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처럼 머리도 손톱도 열심히 길러봤다. 하지만 손톱은 조금 힘들었다. 버릇이 버릇인 지라 손톱을 기르다 물어뜯고, 기르다 물어뜯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그 당시 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한 파란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다닐 수 없었다. 다행히도 미용실에 자주 가는 습관은 없어서 머리카락은 기를 수 있었다. 아무도 안 입는 카고 바지는 이미 옷장 구석에 처박았다. 머리도 길고, 교복 치마를 입고 다니는 나는 그렇게 외관상 여자애 같은 모습이 되었다.



손.jpg
 


수많은 여자 어른들을 봤다. 담임 선생님, 학원 선생님, 나를 지나가는 여자, 내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 내가 관찰한 여자 어른들은 모두 좋은 향기가 났다. 긴 머리카락은 찰랑거리고, 걸을 때 기분 좋은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무엇보다 손톱에서 윤이 났다. 열 손가락 모두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거나, 이런저런 색이 발라져 반짝거리는 손톱.


나처럼 못난이 손톱을 가진 여자 어른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여자 어른’은 모두 그런 줄 알았다.


지금은 나도 성인의 나이다. 이제는 술집에 가도 신분증 검사를 잘 하지 않는다. 남들이 봐도 어른인 사람이 되었다. 내 손톱은 여전히 못생겼지만, 이제는 전만큼 손톱에 집착하지 않는다. 조금 자라면 서툴게나마 좋아하는 색의 매니큐어를 발라 보기도 하고, 너무 물어뜯어서 피가 날 때도 있다.


그래도 가끔, 일하다가 예쁜 손톱의 손님이 건넨 카드를 받을 때는 내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아직 나는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존재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친구와 이번 달 말에 네일 샵에 가자고 약속했다. 네일 샵에는 아직 가본 적이 없다. 그날을 위해 다시 손톱을 기르고 있다. 어릴 때 봤던 어른들 같은 손톱이 되면, 나는 완전한 어른이 됐다는 생각이 들까? 궁금하다.





[김혜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