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가란 명함의 자격 [사람]

예술가라는 이름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글 입력 2019.08.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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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를 무엇으로 소개해야 하나


올여름부터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격주에 한 번 모여 글을 쓰는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당연히도 이곳에는 나를 알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서로의 직업과 나이를 모른 채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일반적인 사회에서의 소개 방법은 직업이나 전공이었지만, 여기서는 주로 관심사를 통해 자기를 소개했다. 소설을 좋아하고, 영화와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통해 공감대를 나누거나 특정한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은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했다. 사람을 알아갈 때 직업으로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편견 없이 더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고안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기소개 순서가 오자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쓰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소개했다. 사실 학생이라는 내 신분과 공부하고 있는 전공을 설명하지 않는 이상, 나를 설명할 방법은 취향을 공유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 모임에서 반쯤 음악가가 되었고, 편견 아닌 편견을 얻게 되었다. 나는 음악가가 직업이 아닌데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2. 정체성


'나는 음악가라고 할 수 있을까?' 내게 질문을 던졌을 때 몇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 음악이 경제적 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대중들에게 전달되기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졌다.

전문인이라고 하기에는 공연이나 작곡인력이 될 실력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곡을 쓰고 부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음악가라고 할 수 있는지 조금 의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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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정체성은 복잡하다. 그래서 자아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은 복잡한 정체성에서 몇 가지 조건을 확인하는 일이다.

한 개인은 외부적인 조건과 내부적인 자아가 복잡하게 관계하며 하나의 단편을 형성한다. 그리고 개인이 가진 복잡한 정체성만큼, 사회적 맥락에 따라 개인의 보이는 모습은 달라진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직업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고, 직업이 아닌 취향의 기준으로서 자신의 취향으로 소개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개인은 상황이 요구하는 정체성에 따라 자신을 소개한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은 상대방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질문이지만, 반대로 상대방을 가장 알기 어렵게 하는 질문이다. 업무로 만나는 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이와 같은 질문은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필요 없는 대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업무 관계로 만나지 않는 이상 직업을 물어보기 꺼리기도 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이것을 직업이라고 정의한다. 직업은 개인의 삶에서 가장 큰 시간과 능력을 할애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직업을 물어보는 일은 개인이 가진 가장 전문적인 깊이를 가진 일을 따진다.

그래서 글쓰기 모임의 자기소개 시간에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소개했지만, 사람들에게 내가 반쯤 음악가가 된 것에는 오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3. 자격을 주는 명함


음악인, 건축인, 교사, 마케터, 기업인 등 직업을 정의하는 수많은 이름이 있다. 사실 이 이름들은 직업 활동에서 하는 일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단어들이다.

예를 들면, 나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주 2회 독해 수업을 진행한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은 학원강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직업을 학원강사라고 설명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을 때, 나는 학원강사로 생계를 책임지지도 않고, 학원강사는 나의 전문적 깊이를 쌓기 위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는지' 질문이 들어온다면, 나는 쉽게 학원강사라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직업을 정의하는 이름들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자격과 같은 명함이다.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는 뒤에 ‘지망생’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아직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직업적 명찰이 주어지는 기준은 일종의 자격시험이다.

취업이라는 시험을 통과하면 직업적 전문성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일을 하는 것이며, 통과하지 못하면 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지망생, 수험생과 같은 자격 미달의 명찰을 달고 그 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4. 음악가라는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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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이라는 명함은 다른 직업의 명함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다른 직업들과 같이 음악인은 직업적 자격이 주어지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특정 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다든지, 학위를 받거나 회사에 소속되는 등 자격을 설명하기 위한 직업적 기준은 다르지 않다.

또한, 프리랜서와 같은 직업적 포트폴리오를 통해 개인의 능력을 인정받고, 아이돌 지망생과 같은 단어로 데뷔 이전의 자격 미달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음악가라는 명함이 직업적 자격을 설명하는 데 쓰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음악가라는 명함은 직업적 자격 이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다. ‘쓸모’라는 기준으로 직업인과 지망생을 가르는 기준은 대부분의 직업에 적용되지만, 음악과 같은 예술은 예외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음악인이라는 명찰은 사실 ‘쓸모’의 기준으로 주어지기보다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표현력의 기준으로 자격이 주어지기도 한다.

꼭 완벽한 창작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해석이 존재하고 그 부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음악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쓸모의 차이로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예술적 기준은 창작자를 예술적 기준으로서 인정한다. 작곡가, 작가의 가치는 직업적 숙련도가 아닌 주관적 예술적 가치로 인정받고 동등한 창작자로서의 가치로 결정된다.

나는 분명 취미로 음악을 하고 있다. 아직 앨범도 없고 단독 무대의 공연 영상도 없으며 음악가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 또한 없다. 하지만 음악을 한다는 사실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쓴 곡들이 존재하고, 들어줄 사람들이 있고, 부를 곳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음악가라는 명함이 주어질 조건을 만족한다. 내가 차후 음악가가 아닌 직업을 가질지라도 음악가라는 명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예술을 만들고 표현하는 모든 이들에게 동등한 가치로 주어진다. 예술가라는 명함이 주어질 조건은 창작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예술을 동경하는 이들이 자신 있게 그들의 목소리를 내길 원한다. 목소리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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