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산기행 [여행]

그 날의 조각들
글 입력 2019.08.14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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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같던 바다



이번 가족 휴가는 어디로 다녀오시게 되었나요?


부산이요.

 


여행지를 부산으로 정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우리 가족은 부산을 즐겨본 적이 없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출장으로 몇 번 갔다가 쉴 틈도 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차에 짐같은 몸을 실었던 기억밖에 나질 않는대요.


저는 스무 살에 가봤어요. 근데 그마저도 대외활동 MT로 잠깐 간 것이어서 알코올에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있네요. 아직 16살밖에 되지 않은 동생은 가족 없이 먼 부산을 가봤을 리 없고, 제 친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여행을 가기 전, 가장 걱정되었던 점은?


'부산이 가족여행지로 적합할까?'였어요. 부산의 젊고 역동적인 느낌을 다섯 명의 가족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 상황에서 내가 이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8월이 유독 바빴거든요.


이번 방학기간 동안에는 쉬면서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엄두도 못 낼 정도로요. 아, 남쪽이라서 더위도 큰 걱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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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기 전, 가장 기대되었던 점은?


오랜만에 여유롭게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이요. 아 그리고 제가 백 번 설득해서 예약한 숙소가 가장 기대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여행지에서 묵는 숙소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묵는 곳이 안락하고 예쁘고, 편안해야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더 행복하게 남는 것 같아서. 근데 친언니는 숙소 값으로 많은 돈을 지불할 돈으로 더 맛있고 비싼 걸 먹자고 하더라고요. 제가 한 고집해서 이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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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 날의 기억은?


저희 집에는 네 발 달린 털 뭉치들이 살고 있어서, 눈뜨자마자 털 뭉치들을 반려견 호텔에 맡겼어요. 주인이 아스팔트에서 넘어져도 뒤도 안 돌아볼 정도로 무심한 첫째 털 뭉치가 갑자기 낑낑댔어요.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주인을 많이 따랐구나 싶어서 마음 한 쪽이 일렁였어요.


조금 많이 무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생각날 때마다 가족들에게 "우리 털 뭉치들 잘 지내겠지? 너무 보고싶다!"라고 칭얼거렸더니, 언니가 분리불안은 강아지가 아니라 네가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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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했던 순간


광안리에서 엄마, 아빠, 언니가 회를 사러 간 사이, 동생과 모래로 장난치던 때요. 막내가 사춘기가 와서인지 요새 통 속마음 얘기를 잘 안 했거든요. 그래도 애가 또 착해서 가족들 장단은 잘 맞춰주는데. 그래서 제가 이런 저런 질문들을 계속했어요. 처음에는 망설이는가 싶더니 술술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 목소리에는 동생의 서툰 애정이 듬뿍 묻어있었어요.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올 때, 막내 녀석이 제 옆으로 스윽 오더니, "누나. 나는 우리 가족이라서 참 축복받은 것 같아."라고 했어요. 저는 웃으면서 아빠만큼 높아진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아~ 부산 좋다~" 크게 소리쳤어요.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


대구뽈찜이요. 부산 음식은 돼지국밥, 밀면, 어묵밖에 몰랐어요. 그런데 대구탕과 대구찜도 유명하더라고요. 유튜브와 구글에 검색해봤는데, 자꾸 뜨길래 '맛있을까?'의심하면서 가봤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아삭한 콩나물과 부드럽고 고소한 대구 살의 조합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빨간 양념에 양파도 많이 들어있었는데,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맛을 확 잡아줬어요. 나중에는 양파가 너무 맛있어서 양파만 골라먹기도 했어요.


술도둑 밥도둑이더라고요. 가격도 다섯 명이서 4만 9천원밖에 안 나왔어요. 공복 상태로 갔는데도요. 대기시간이 있기도 했고, 중간에 서빙이 잘못되어서 조금 더 기다렸었는데, 그 기다림의 힘듦을 모두 잊게 해주는 맛이었어요.


아빠는 집에 올라와서도 "대구뽈찜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고 계세요. 저도 다시 가고 싶어요. 먹을 것 좋아하는 우리 돼지 가족 특성상 언젠가는 꼭 다시 찾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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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았던 장소


저는 해동용궁사요. 저는 종교가 없지만, 저희 어머니와 친언니가 불자예요. 옆에서 절을 드리는 언니와 엄마를 보고 저도 옆에서 절을 드렸어요. 되게 단순한 소원을 빌었어요.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지혜롭게 해달라고.


그런데 엄마는 불상이 유독 많은 절에서, 보이는 불상마다 절을 드리더라고요. 그늘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이 날씨에, '엄마는 무엇이 그리 간절하기에 저렇게 정성 들여 절을 할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엄마가 옆에서 "우리 가족 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어. 절 하는데 느낌이 좋네. 잘 될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순간 몸이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엄마의 말에는 자식 걱정에 숨죽여 울던 엄마의 밤, 가족 생각에 입술 꾹 깨물며 출근하던 아빠의 아침, 짜증부리는 동생, 이기적인 내 모습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잔상들이 송글송글 맺혀있었어요.


해동용궁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간절함이 이 곳 저 곳에 널려있어요. 그 간절한 마음 하나하나 너무 경이롭고 소중해서, 천천히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불상들에게 마음 속으로 경의를 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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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부산여행에 대한 소감을 말한다면?


눈물나리만큼 황홀하고 안온한 순간들이었어요. 소중히 품고 있다가 지칠 때 두고두고 꺼내보려고요. 부산은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부산은 마냥 젊은 것 같으면서도 정겨운 색들이 여기저기 많이 묻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스킹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있는 해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기분 좋은 비릿함이 코를 자극하는 시장이 들어서 있어요. 또 SNS를 장식해줄 멋진 분위기의 오션뷰 카페의 옆에는 시간을 품고 있는 크레인과 고기잡이 배들이 줄지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어요.


소중한 사람이 가족여행지를 고민한다면, 부산을 꼭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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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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