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Prologue. 모범생을 위한 노래는 없다

글 입력 2019.08.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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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활을 책임진 지역 학원가.
 


지난 14년간 나의 정체성은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잃게 된다.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만 충실히 뭔가를 해왔던 나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10대는 물론,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한동안 그 좁은 세계에 갇혀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 하루도 야간 자율학습을 건너뛰고 친구들과 놀지 않았던 것, 날씨 좋은 봄날에 수업을 듣는 대신 한강으로 달려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독보적인 업적으로 성공하는 이들은 남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모범생이 아니라, 기존의 상식에 도전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나를 괴롭게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온 나를 개성 없는, 생각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정해진 답을 찾는 훈련을 실컷 하게 하고, 이제는 자신만의 것을 찾으라 하는 이중 잣대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20대가 혼란을 겪었으리라고 생각해본다. 대한민국에 MBTI 성격유형 중 성실하고 묵묵히 일하는 ISTJ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니 말이다.


모범생의 음악은 없다.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로 대표되는, 학교에 반항적인 정서의 음악은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말 잘 듣는 모범생의 음악은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중등교육과정까지는 랩 메이킹이나 드럼, 가사 쓰기가 없으므로, 뮤지션은 필연적으로 학교가 이야기하는 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범생은 재미도 없다. 늘 시키는 대로 하므로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성공을 정의하는 말이 다양하고, 성공에 이르는 길을 이야기하는 책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며 쌓아온 성실함이 특별한 가치가 아니라는 생각에 우울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그것도 나의 개성이라면 개성이 아니겠냐고. 그렇게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면서.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나의 모범적인 성격이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했는지. 그러고 보니 내 성격에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있었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학교 안을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 안에어 사람들의 관계나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분명히 누군가 시키는 대로 따르기는 했지만, 내 나름대로 다 계획이 있었고 (영화 <기생충>의 대사가 맞다) 비판적인 견해도 가지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전공인 심리학을 통해 학교를 다시 돌아보며 내 경험을 새로이 분석해보기도 했다. 편견 없이 배경이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곳,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하기만 했던 곳, 폐쇄적인 특성으로 각종 폭력을 경험하기도 하는 곳인 학교는 고작 인생의 20% 남짓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평생을 좌우할 가치관을 만들고,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꼭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꿈인 내게, 학교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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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깨끗하게 청소한 대학교 기숙사 책상.


요약하자면, 학교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내가 관찰했던 학교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그리고 학교에서의 경험이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해 보고자 하는 의도다. 거창하고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구차한 경험담이다. 학교에 가는 길에 생각했던 것들, 학교에만 존재하는 질서와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글이 칼럼이 아닌 에세이인 것은 가르침과 일깨움을 주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내가 다닌 학교에 대해서만 잘 알고 있고, 나 스스로도 누군가에 의해 신념이나 생각을 주입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웹툰으로 따지면 생활툰처럼 가볍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지만, 그래도 활자로 쓰는 만큼 조금 더 사유가 더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제목은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 ‘Into the Spider-verse(한국 개봉명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따온 ‘Into the School-verse’이다. 학교라는 세계는 사회와 분리되어 진공 상태처럼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했기 때문이다. 그 안의 나름의 질서가 있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우주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어로도 스쿨버스와 비슷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리라고 기대해본다.


아직 모든 에세이를 구상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주기 위해 몇 가지 주제들을 예고하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동안만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잠시만 멈추고, 자신을 만들어온 기억과 경험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빠른 환승과 통학에 관한 고찰

팀 프로젝트에 임하는 나의 자세

학교 안의 미신들: 재수의자

기숙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법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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