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숨죽여 때를 기다리는 영상작품들의 연대기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8.1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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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 평면의 캔버스 위에 그려내는 기존의 작업 방식과 다르게 여러 조건들을 만족하는 값을 넣는 디지털 기반의 작업과정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기존의 캔버스는 작가가 담고자 하는 사상을 시각적으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반면, 영상작품은 소리와 움직이는 영상, 자막 등 시각과 청각적 요소를 합하여 보다 세밀하게 작가의 사상을 담아내어 관람객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키웠다. 현실적 제약의 요소가 다분한 캔버스 작업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도록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라는 특성이 디지털에서 구현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조건의 자유로움과 정교한 표현 방법의 가능은 다양한 주제를 담은 영상작품들을 '미술관'에서 규정된 형태로 전시한다. 큰 전시 주제의 구성요소로써 '영상작품'은 관람객에게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전시가 끝난 후, 영상작품의 처리 과정은 기존 미술작품과 다른 매체적 특성으로 많은 질문을 낳았다. 디지털 형식으로 제작된 영상작품은 그 구성요소 하나가 모두 작가가 입력한 값들의 결과라는 자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매체의 구현이 수동적이라는 특성도 영상작품을 관리할 주체가 반드시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기존 미술작품과 달리, 작업 결과물을 나타내는 방대한 자료값들의 보관이 중요해진 것이다.

영상작품이 가상의 세계인 디지털에서 자료의 형태로 구현되었기에 입력된 자료와 그 결과물인 작품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뉴미디어 아카이브 전 - 떠도는 영상들의 연대기'는 디지털로 구현된 영상작품들의 매체적 특성과 보관 방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전시다. 전시의 주요 맥락은 '영상작품과 영상 아카이브의 관계', '디지털 영상 아카이브의 등장이 기존 아카이브의 개념을 어떻게 바꾸었는가'이다. 두 맥락은 디지털 매체로 인해 관람객들의 디지털 매체를 대하는 데서 오는 익숙한 경험과 영상작품의 특성을 재고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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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저장 공간인 '문서고'를 재현해놓은 전시공간은 입구에서부터 조용함이 감지된다. 켜켜이 쌓인 문서자료들이 각각의 박스에 구획되어 넣어져 있는 듯하다. 종이매체를 주로 저장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문서고'에는 이질적 느낌이 들게 하는 디지털 '영상작품'들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보관된 자료들이나 기존 미술작품을 지정된 위치에서 발견하는 듯한 경험을 준다. 직관적으로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디지털화된 경험에 익숙한 관람객들은 과거로 회귀한 듯한 인상과 낯섦을 느낀다.

영상작품들이 자료로서 존재할 때, 그 가치와 메시지의 온전한 이해가 어려움을 증명한다. 영상작품들이 각 구획에 틀어지고 있지만, 이 작품이 어떤 작가, 연도, 제작 의도, 작품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 수 없다. 그저 보존, 보관된 기존의 방법을 수용하여 무작위로 쌓여 있을 뿐이다. 마치 숨만 쉬는 영상작품들의 무덤으로까지 보인다. 영상작품들이 자료화된 상태의 심각성을 가시화한 '문서고' 전시공간은 앞 공간인 'MMCA 단채널  영상 아카이브'를 통해 그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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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단채널 영상 아카이브'는 관람객들이 기존 전시에서 보였던 영상작품들을 다시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문서고' 형태의 전시보다 앞서 있었던 곳으로 이미 영상작품들의 아카이브화에 관한 논의의 대안적 성격을 갖는다. 마치 도서관에서 자료를 열람하듯이, 관람객은 '문서고'형태의 전시에서 우연히 마주한 자료화된 '영상작품'을 온전한 형태로 시청할 수 있다. 자료화된 '영상작품'이 내보내는 희미한 소리와 저화질의 화면에서 발견한 관심의 요소를 다시 확인 가능하다.

앞 쪽의 컴퓨터 화면은 디지털 자료 구축과 열람 방식에 익숙한 관람객들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되어있다. '문서고'에서 자료화된 '영상작품'들중 발견한 '전소정 - 열 두 개의 방, 2014', '박현기 - 도시의 지하철역에서, 1988', '김희천 - 바벨, 2015'도 열람 가능했다. '문서고'형태의 전시에서 자료를 찾듯이 발견해낸 영상작품들은 이 공간에서 해당 작가, 제작연도, 작품설 명, 선명한 화면과 소리로 작품 감상과 이해가 가능해진다.

'전소정 - 열 두 개의 방, 2014'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한 작품이다. '열 두 개의 방'은 조율사의 조율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다. 작가는 조율하려는 건반을 누르는 음의 반복에 따라 색상과 진하기를 달리하며 음악과 색의 관계성을 표현했다.

'박현기 - 도시의 지하철역에서, 1988'은 지하철 정거장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시작품의 장면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일상 속 지하철 정거장이 의미하는 바를 고찰한 작품이다. '김희천 - 바벨, 2015'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행적을 첨단 기기로 추적하는 과정을 게임 화면처럼 제작해 가상세계를 보는듯한 연출을 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아버지의 사고 원인은 알 수 없다는 결과에서 작가가 느끼는 허무함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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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아카이브 전 - 떠도는 영상들의 연대기 전시공간 내, 전소정 - 열 두 개의 방, 2014, 좌측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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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아카이브 전 - 떠도는 영상들의 연대기 전시공간 내, 박현기 - 도시의 지하철역에서,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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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아카이브 전 - 떠도는 영상들의 연대기 전시공간 내, 김희천 - 바벨, 2015, 좌측상단


무작위로 발견한 세 작품들은 'MMCA 단채널  영상 아카이브'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전시는 '문서고' 형태의 공간에서 발견한 '자료화된 영상작품'을 익숙한 검색 기능으로 찾아 탐구하는 2번의 연속적 경험을 하도록 안내한다. 그러나  'MMCA 단채널 영상 아카이브'에서 마주하는 영상작품도 열람 가능하도록 시스템화된 컴퓨터에 자료로 저장되어 있는 영상 자료다.

즉, '자료화된 영상작품'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전시는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형성된 영상작품이 자료라는 속성을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자료들이 디지털 언어로 체계화된 형태로 구현된 것이 영상작품인 셈이다. 따라서 영상작품들이 '문서고'에서 보관된 상태로 있는 것과 컴퓨터 속 온전히 열람 가능한 영상작품들과는 속성에서 큰 차이가 없다. 'MMCA 단채널  영상 아카이브'는 문서고에 쌓여 있는 자료화된 영상작품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술 전시의 주제가 단 하나의 작품만 두고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상작품의 온전한 이해는 '문서고'형태의 공간도 아니며 컴퓨터 속 하나의 영상을 열람하는 행동도 아니다. 아카이브의 목적은 보관, 보존하여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그 앞에 영상을 붙여, 영상작품을 보관, 보존하는 '영상아카이브'는 각 영상들이 실제 전시되는 조건에서 존재함이 유의미하다. '전시장'에 있는 상태에서 영상작품은 비로소 그 메시지를 다른 작품들과의 연관성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동시에 영상작품은 관람객들에 의해 해석되고 소통하며 재생의 의미가 담긴 미술관 내 보관과 보존의 목적이 이루어진다.

영상작품을 자료와 작품으로 따로 구분하여 그 공간을 '문서고'와  'MMCA 단채널  영상 아카이브'로 구성했다. 짧은 동선임에도 영상작품이 자료로서만 있을 때와, 자료의 형태인 작품으로 다시 열람하는 경험은 둘 사이의 관계가 밀접함을 생각하게 한다. 디지털 영상작품은 특히 자료와 작품 사이의 관계성이 깊다. 어느 한 쪽만 택해서는 그 본래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자료가 디지털화되면서 끊임없이 완성된 작품의 형태를 유지하는 요소가 되었다. 영상작품의 이러한 상호관계성은 정적인 기존 아카이브 방식인 '문서고'의 보관 보존에 파동을 일으킨다. 일련의 영상작품은 아카이브화 과정에서 사실과 상상력이라는  연대기 개념에 빗대어 지속적인 의미 확장이 있어야 한다.

일화적이며 단시간에 압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상작품은 단독으로 존재해도 그 영향력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관람객과의 소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영상아카이브가 한 장소에만 머물러 있지 않도록 다양한 공간 확보와 송출방식이 필요하다. 자료와 작품이 함께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성상, 각 영상작품이 어떤 전시 주제에서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었는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전시장의 환경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 시기다. 여기저기 무작위로 흩어져 있는 영상작품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둘 새로운 방향을 말이다.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변화된 관람객과 작품의 특성을 반영한 영상작품만을 위한 아카이브화가 디자인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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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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