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부 다 새크라멘토 탓이야 [영화]

글 입력 2019.08.0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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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는 2018년 그레타 거윅 감독이 제작한 미국의 성장 영화이다. 시얼샤 로넌 (크리스틴 "레이드 버드" 맥퍼슨 역)이 주연으로 출연한다.




I am LADY BIRD
안녕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라고 해
다른 이름이 있지만, 내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줬지
모두가 나에게 잘살아보라고 충고로 위장한 잔소리를 해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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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라멘토를 떠나야 해!


삶에는 주어진 것과 선택한 것,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주어진 것에는 가족, 고향, 이름, 외모 등이 해당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 이름, 고향 등을 선택할 수 없고, ‘원래’ 그런 채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쏙 들기는 어렵다.

선택권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거부 반응이 있다. 나만 그런 것 같고, 왜 하필 그런가 싶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날 수도 있다.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할까?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 우리 엄마는 왜 저럴까? 마땅히 해결책도 없으면서 괜스레 억울하기만 한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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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고 싶은 소녀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자신의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지루한 곳이라며 떠나고 싶어 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집을 숨기려 한다. 급기야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의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엄마 몰래 원서를 넣기도 한다.

‘레이디 버드’는 그녀가 직접 지은 자신의 미들네임으로, 그녀는 자신의 본명이 아닌 ‘레이디 버드’로 불리길 원한다. 새크라멘토를 새처럼 날아 떠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드러내는 이름이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레이디 버드’로 부르길 당부하며, 이름을 쓸 때는 Christine "Lady Bird" McPherson이라며 Lady Bird에 큰따옴표를 꼭 붙여 강조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만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의 이름, 뉴욕에 대한 환상, 친구까지, 전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주어진 것들을 외면하려 한다. 자신이 선택한, 바라는 것에 너무나 눈이 멀어 가진 것들에 점점 멀어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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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는 늘 지루한 표정을 짓고, 새크라멘토를 재미없는 곳으로 표현했지만, 그건 그녀가 만들어 낸 새크리멘라에 대한 프레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파티를 하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첫 경험을 하는 등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즐기며 지루하지 않게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새크라멘토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 역시 외면했다.

“새크라멘토를 떠나야 한다.”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 생각은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우선이었으며, 모든 것을 결국 새크라멘토를 떠나야 하는 이유로 포장할 만큼 그녀에게 중요한 목표였다.




세크라멘토만 떠나면 돼!



부정적인 현실에 대해 타인 혹은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린다면 마음은 훨씬 가벼워진다. 자신의 짐을 떠넘겨버리는 거다.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게 아냐.” 하고 말하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그리고, 탓하기 가장 쉬운 대상은 바로 ‘주어진 것들’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쩐지 더 쉽게 말을 뱉게 된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이렇게는 안 됐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대표적으로, 누구나 한 번쯤 가족을 원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불우한 가정형편을 탓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모든 것이 가정환경 때문이라며 화를 냈을 수도 있다. 돈만 많았어도, 집만 좋았어도. 선택권이 없었다는 이유로 모든 원망의 화살을 주어진 것들에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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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는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방황이나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전부 새크라멘토의 탓으로 돌렸다. 새크라멘토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늘 고향에 불만을 느끼고, 뉴욕을 동경했으며, 삶이 지루하고 힘든 이유를 새크라멘토에서 찾았다.

그러나, 고향을 떠난 레이디 버드는 어땠나? 그녀는 여전히 재미없고, 지루하고, 달라질 게 없는 일상을 ‘뉴욕에서’ 보내게 된다.

*


삶에 많은 변화를 겪고 법적으로 성인이 된 레이디 버드는 바라던 대로 ‘뉴요커’가 되었다. 더는 떠나고 싶은 소녀가 아니다. 이미 떠나왔기 때문에 그녀는 더 이상 ‘레이디 버드’로서 날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크리스틴’이라 소개한다. 원망을 내세워 탈출을 꿈꾸던 어린 소녀에서 많이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새크라멘토를 모르는 상대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며 거짓말을 하고, 자신이 뱉은 거짓말을 감당하지 못해 토를 하고 응급실에 실려 간다.


알을 깨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과 함께, 주어진 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그녀가 ‘레이디 버드’를 깨고 크리스틴이 되어도, 새크라멘토를 용서하지 못하면 계속해 고향을 원망하는 어린 소녀로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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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레이디 버드가 자신의 고향을 용서하고, 엄마를 이해하고, 고향을 향해 가지고 있던 애정을 인정했을 때, 그녀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솔직한 그녀의 모습은 영화 중 가장 아름다웠고, 예뻤으며, 지루해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날 좋아하면 좋겠어.”라고 말했던 그녀는 러닝타임 1시간 30분가량 동안 “엄마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세크라멘토는 사실,



자신을 둘러싸고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항상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라 자꾸만 얼마나 소중한지 잊게 된다. 무슨 짓을 하고 어떻게 말해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것들. 떠나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애틋함. <레이디 버드>는 쉽사리 외면하고 살던 주어진 것들을 둘러볼 기회를 준 영화였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 무언가를 탓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그건 그저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달라질 것도 없는, 그냥 ‘이것만 아니었어도’라는 희망을 품기 위한 어린 마음일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내게 주어진 것들. 원하지 않았지만 나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들. 그것들도 결국은 나이고, 내 모습이며, 없어서는 안 될 내 소중한 일부이다. 내가 알아주지 않아서 빛내지 못했던,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중요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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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의 말대로 레이디 버드는 사실 새크라멘토를 사랑하고 있었다. 새크라멘토의 아름다움을 말하던 레이디 버드, 아니, 크리스틴의 모습. 그리고 “I love you.”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빛이 바래기 전에 꼭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이제는 그만 미뤄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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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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