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스티븐 유니버스'로 배우는 용기 [TV/드라마]

잘못을 인정할 용기, 사과를 할 용기, 나를 사랑할 용기
글 입력 2019.08.0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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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애니메이션 '스티븐 유니버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때론 현실에서 필요한 긍정적인 활력을 얻는다. 외로움이 사라지기도 하고, 옳은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며, 용기를 얻거나, 행복해지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 투니버스보다 카툰 네트워크를 더 즐겨봤다. 투니버스에서 하는 애니메이션은 이야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어 처음부터 보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한 화당 30분 이상이라 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반면 카툰 네트워크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옴니버스 식이라 앞뒤 내용을 몰라도 가볍게 볼 수 있고, 한 화당 10분 안팎으로 진행되어서 밥을 먹거나 심심할 때 가볍게 보기 좋았다. ‘틴 타이탄 고’와 ‘겁쟁이 강아지 커리지’, ‘이웃집 아이들’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사실 추억의 애니메이션이라는 건, 추억이 담겨있기에 재미있게 느껴지는 거지 지금 보면 이걸 왜 좋아했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재미없다기보다 다시 보니 잔인하고 자극적이며 편견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 애니메이션을 굳이 보지 않는 이유는 어릴 때처럼 순수하게 보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러다 우연히 스티븐 유니버스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는데, 한 번 눌러본 게 식사 때마다 찾아보는 애니메이션이 되었고, 곧 각 잡고 침대에서 보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안의 세계가 완전한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모든 스토리의 세계관이 그래서도 안 되고) 주인공이 편파적인 시선을 비판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가벼울 때는 한없이 가볍다가 진지할 때는 진지한 ‘스티븐 유니버스’에 홀린 것처럼, 한참 보았다. 그러다 보니 과한 애정이 생겨 왜 좋은지 모두와 나누고 싶어져 노트북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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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유니버스는 보석이 본체인 젬 외계인들이 지구에 침략하는 걸 막는 이야기다. 본래 지구를 침략하려는 홈월드 행성의 젬이었으나 후에 지구를 사랑하게 된 크리스탈 젬은 초록 행성을 지키기 홈월드 젬과 싸운다. 애니메이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 ‘스티븐 유니버스’는 크리스탈 젬의 리더였던 로즈 쿼츠가 인간 그렉 유니버스가 사랑에 빠져 낳은 아이로, 배꼽에 엄마 로즈 쿼츠의 보석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모두가 그에게서 엄마 로즈를 보고, 당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길 기대한다. 그 역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스티븐은 그가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속상해한다.


한편으로는 엄마와 함께 다니는 친구를 보며 엄마의 부재에 슬퍼하기도 한다. 크리스탈 젬은 그럴 때마다 스티븐의 옆에 있어 주고, 우리는 로즈가 아닌 널 사랑한다며 응원해주고 북돋워 준다. 아무리 그들이 격려해줘도 로즈 쿼츠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은 스티븐 혼자서 해야 한다. 스티븐은 꾸준하게, 자신의 능력을 향상하고 로즈의 존재에 부담가지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결국엔, 모두가 스티븐이 스티븐이기 때문에 스티븐을 사랑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나아갈 수 있고, 더 성장할 수 있는 사람과 젬,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보여준다.


시즌 1은 스티븐 유니버스에게 초점이 맞춰 진행된다. 아직 어린 스티븐은 전쟁의 잔해가 남은 공간에 미션을 행하러 간다. 본래 젬이었으나 어떠한 이유로 변형된 괴물과 싸우러 가면서도 소풍 가듯 신나서 과자와 아이스크림 등을 가득 챙겨간다. 한 에피소드의 초반, 스티븐은 대부분 민폐가 되는 행동을 저지른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감 있게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해결이 되지 않더라도 크리스탈 젬의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는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스티븐은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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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에서 크리스탈 젬인 펄과 애머시스트, 가넷은 완벽한 존재처럼 보인다. 펄은 깔끔한 성격에 계획적이며 차분하고, 애머시스트는 힘이 세고 항상 자신감이 넘치며 장난스럽다. 가넷은 힘도 센 데다가 똑똑하고 모두를 차분하게 이끄는 리더다. 항상 말썽을 부리는 스티븐에 비해 이들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도 상당히 ‘인간’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넷은 항상 냉정하고 현실을 잘 파악하며 힘이 강하다. 그에게는 어떤 결함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가넷은 사파이어와 루비라는 두 젬이 결합하며 만들어진 존재이다. 서로서로 사랑하고 누구보다 긴밀히 믿고 있으므로 퓨전을 하지만 홈월드 젬은 퓨전을 약한 존재가 강해지기 위해 발악하는 추잡한 짓이라고 일축한다. 물론 가넷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지만 둘이다. 모든 감정은 둘의 감정이고 그러므로 더 강하고 단단하다.


그런 가넷도 때때로 크게 화가 나거나 루비와 사파이어의 의견이 부딪힐 때는 퓨전이 풀리면서 크게 싸우고, 서로를 상처를 준다. 평생 풀리지 않을 것처럼 화내다가도 이내 자신이 잘못한 점을 나누고 화해한다. 아무리 완벽하게 마음이 통하는 존재라 해도 매일 사이가 좋을 수는 없다. 가넷은 사이가 늘 좋은 것보다 잘 화해하고 서로 간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고향 행성인 ‘홈월드’에서 수많은 펄은 그저 예쁘게 자리만 지키고 문을 열어주고 다른 젬을 도와주는 역할로써 존재한다. 모든 젬은 태어날 때부터 목적을 가지기 때문에 보조 역할을 위해 존재하는 펄은 날 때부터 힘이 세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게 만들어졌다. 대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문을 열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


지구의 크리스탈 젬이 된 펄은 그런 스스로가 남들보다 약하고 그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 로즈 쿼츠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고통스럽다. 퓨전을 해 힘을 키우고 싶어 상대적으로 강한 가넷에게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퓨전을 하면 힘이 더욱 강해져 만족감을 느끼고, 자신만의 힘으로는 강한 적을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넷은 네가 강해질 수 있는 방식은 누구도 아닌 너 스스로만 알 수 있다며 자신을 믿으라 말한다.


또 스티븐은 펄이 홈월드에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그저 장식품 같은 존재였을지 모르지만, 지구의 펄은 스스로 노력해서 지식을 쌓고, 검술을 배웠기 때문에 본래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대단하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고 무조건 더 강해지기 위해 발버둥 치던 펄은 자신 있게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수련한다.





애머시스트의 경우, 힘세고 강한 군인으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날 때부터 몸집이 작은 크리스탈 젬 에머시스트는 다른 군인용 젬에 비해 힘이 약하다는 게 항상 콤플렉스다. 이 때문에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고 또 필요로 하지 않을까 봐 걱정한다. 약하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서 누군가 그에게 깊은 질문을 할 때마다 장난을 치며 말을 돌린다. 본인은 항상 누군가와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낀다. 펄의 존재도 그렇다. 애머시스트는 치밀하지도 계획적이지도 않지만, 펄은 그렇다. 애머시스트는 모두가 펄만 칭찬할 때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진다.


특히 홈월드에서 누구보다 크고 강하게 태어난 ‘제스퍼’라는 군인용 쿼츠 젬을 만나자 주눅이 든다. 애머시스트는 제스퍼처럼 강하지도,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스티븐은 그에게 너는 너일 뿐이지 제스퍼가 아니며, 제스퍼를 흉내 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다른 젬들의 기대에 못 미쳐 불안해하고, 완벽한 존재이지도 않은 스티븐 자신을 닮았다고. 누구보다 약하고 불안정한 서로를 이해하게 된 스티븐과 애머시스트는 퓨전을 하고, 제스퍼를 이긴다. 애머시스트는 불안과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존재를 이기고 비로소 확신과 자신감이 가득한 존재가 된다.


날 때부터 강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크리스탈 젬은 사실 유기체 생물인 인간과 비슷하게 나약하다. 우리처럼 나약한 그들이 사건을 겪을 때마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걸 볼 때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그들은 스티븐에게도, 나에게도 얼마든지 자신처럼 강해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누군가를 닮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 태어날 때 약했다고 스스로가 쭉 약할 거라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나다. 앞길이 어둡고 답답할 때 헤쳐나갈 방법은 자신을 믿고 나가는 것뿐이며, 힘들 땐 주변에 의지해도 된다고, 그렇게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힘이 약했거나 장애가 있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못해 주변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해 우울할 때 다 괜찮다고 보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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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도트는 스티븐 유니버스에서 말하고 싶은 바를 가장 강하게 말해주는 캐릭터다. 페리도트는 본래 지구를 정복하려는 홈월드에서 파견된 엔지니어, 학자다. 지구를 둘러보며 정보를 정리하고, 지구 내부에 있는 핵폭탄 같은 존재 클러스터를 활성화해 생명체를 모두 죽이고 새로운 식민 행성으로 구축하기 위해 일한다. 지구에 오기 위해 수천 년 동안 거울에 갇혀있다가 겨우 도망친 라피스를 다시 포로로 만들어 정보를 빼내기도 한다. 그러나 크리스탈 젬의 제재로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지구에 남겨진다.


페리도트는 홈월드의 계급사상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존재이다. 홈월드에서만 생활하던 페리도트는 젬은 태어날 때부터 그 존재 이유가 정해져 있고 이에 순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급하게 만들어진 버전 2 페리도트인 자신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는 걸 당연시한다. 그에게는 힘을 증폭시켜주는 팔다리 모양의 기계를 부착해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다. 기계를 착용하지 않을 땐 자신의 능력을 한없이 깎아내린다.


유식한 펄이 기계를 만드는 것을 보며 가만히, 예쁘게 있기만 하는 존재가 이러는 게 이상하다며 하대하고, 애머시스트가 본래의 크기보다 더 작게 태어난 것에 대해 악의 없이 웃기도 한다. 또, 지구를 정복하려는, 홈월드의 최고 계급 다이아몬드를 찬양한다.


스티븐은 페리도트가 옳은 일을 할 기회를 여러 번 준다. 지구가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있으며 변화무쌍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같이 지구를 지켜달라고 한다. 결국 페리도트는 최상위 계급인 다이아몬드에 지구를 침략하면 안 된다고 설득하고, 설득이 통하지 않자 ‘돌덩어리’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을 한다. 계급주의의 홈월드에서 벗어난 페리도트는 차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다닌다. 능력에 대해서도 다시 알게 된다. 버전 2의 페리도트는 신체적인 어떤 능력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금속을 허공에 띄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은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필요한 일 이외의 능력을 전혀 찾아보지 않았기에 전혀 몰랐다.


페리도트는 지구의 문화나 사상 등을 잘 몰라서 다른 크리스탈 젬에 비해 사고를 많이 친다. 스티븐처럼 물리적인 사고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서툴지만 제대로 문제점을 인지하고 사과하기 위해 노력한다. 처음 애머시스트를 화나게 했을 땐 녹음기에 자신의 진심을 담아 들려주고, 홈월드에서 지구로 올 때 포로로 잡았던 라피스에게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인 녹음기를 선물하며 화해를 요청한다. 모든 화해에 용서로 답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페리도트는 상대가 싫어하지 않을 선에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라피스와 애머시스트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페리도트를 마냥 좋은 캐릭터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그의 말을 통해 홈월드가 얼마나 계급주의 사회이며 젬들을 세뇌하는지 알 수 있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런 행위가 개개인의 성장을 방해하고 옳지 않다는 걸 이해하려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모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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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전쟁이며 포로처럼 무거운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스티븐 유니버스 모든 시즌의 초, 중반은 옴니버스식으로 스티븐이 사는 비치 시티 마을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스티븐의 가장 친한 친구 코니, 허세 가득하고 남에게 좋은 말을 하지 못하는 라스, 거절을 못 할 만큼 마음이 여린 세이디, 감자튀김 집에서 일하지만 감자튀김 모양 인형을 싫어하는 피디와 외계인 등 불가사의한 현상을 믿고 비치 시티를 계속 이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로날도 뿐만 아니라 피자 가게의 코피, 키키, 쿨한 신세대인 벅, 샤워 크림, 제니, 다소 독특한 매력을 가진 어니언과 그의 부모 옐로테일, 비달리아 등 수 많은 캐릭터가 끊임없이 출연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화해하고 친해진다.


처음에는 개개인의 존재만 보여주다가, 회차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관계도를 보여준다. 피자 가게의 아저씨는 락을 사랑하는 제니의 아버지고, 시장인 듀이는 예술을 사랑하는 벅의 아버지인 식이다. 재혼 가정, 동성애자 등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 대부분이 이 마을에 모두 들어있다. 꼭 내가 작은 마을에서 스티븐과 함께 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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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잇고 싶다던 피디는 감자튀김 인형 탈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아버지 프라이맨은 그가 그 탈을 사랑하는 줄 알고 계속 탈을 쓰고 홍보를 하게 한다. 이에 스티븐이 옷에 들어가면 살아 움직이는 젬을 탈에 집어넣어 피디에게 자유를 주고, 그 결과 감자튀김 인형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감자튀김을 먹게 강요한다. 피디와 스티븐은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감자튀김 인형에서 젬을 꺼내 비치 시티를 구한다. 그 과정에서 프라이맨은 제 아들이 감자튀김 인형 탈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뒤로는 계산대 업무를 보게 한다.


마을 사람들이 주가 되는 에피소드의 경우 내용 대부분이 이렇듯 갈등이 벌어지고, 스티븐이나 젬이나 혹은 어떠한 사건이 갈등을 증폭시키다가 스티븐이 중재하고 당사자끼리 대화로 해결한다. 어떻게 보면 매번 같은 패턴이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모든 갈등 상황이 너무나 다르고 해결 방법도 다양해서 반복되는 느낌이 없다. 더군다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억누르는 부모님과 오히려 그러므로 부모님께 비밀을 만드는 자녀의 문제, 매번 과한 부탁을 하는 친구나 형제자매 때문에 생기는 내적 갈등, 작은 실수를 했는데 생각 속에서 너무 커져서 자꾸만 우울해질 때의 고민 등 모든 문제가 내 일상에서, 혹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제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리고 사건을 추억하며 공감한다.


고등학교 때 나는 사과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러서 친구와 싸우면 그대로 소원해지거나, 아니면 상처가 다 낫지 않은 채로 어색하게 평상시처럼 행동하려고 애쓰곤 했다.


어느 날, 친한 친구와 싸웠다. 종일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불편한 감정이 날 좀먹었다. 수업이 끝나고, 캐비닛에 교과서를 놔두는데 친구가 다가왔다. 친구는 내가 이런 점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저런 점은 네가 너무 과한 거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순간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이 모두 사라졌다. 사과를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렇게 다시 상처를 모두 눈 녹듯 없애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생각했다. 그 뒤로 누군가와 싸운 뒤에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단순히 내 잘못과 그 아이의 잘못에 대해 생각하며 나를 좀먹기보다 나서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정하고, 어떤 것이 기분 나빴는지 말하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떠올리며 먼저 사과하기 위해 노력했다.


스티븐 유니버스에도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이나 소중한 스티븐을 젬 괴물에게서 지키기 위해 펄에게 검술 훈련을 받는 코니는 학교에서 어떤 아이와 부딪힌다. 그때 반사적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호신술을 써 바닥에 눕혀버린다. 코니는 부끄러워 그 자리를 도망친 뒤 계속해서 그 일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가 다쳤을까 봐 미안하고 걱정한다. 가넷은 코니에게 감정을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네 곁에는 내가 있으니 다 괜찮다고, 감정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바라보면 해결책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코니는 조언을 받아들이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부딪혔던 아이에게 사과한다. 아이는 괜찮다고 답하며 호신술을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둘은 친구가 된다.





사과하는 것은 항상 두렵다. 내 잘못을 직시해야 하고, 사과해도 관계가 호전되지 않을까 봐 걱정되고, 애초에 사이가 나빠진, 친했던 사람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감정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숨기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는 것보다 마주 보고 감정을 인지하고 이해해야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문제를 일으키고 사과를 한다고 사건이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만, 사과하지도 않고 숨는다면 평생 하나의 약점처럼 마음 어딘가에 남을 것이다. 스티븐 유니버스에서는 이렇듯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아이나 여전히 서툰 어른들을 응원한다.


스티븐 유니버스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사랑으로 모인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상대를 사랑하기에 계속해서 노력한다. 스티븐 유니버스의 모든 캐릭터가 자신이 누군가를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처를 줬을 때 사과를 하고 관계를 호전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계속해서 스티븐 유니버스를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던, 내 안에 숨어있는 용기가 끌어내어 지는 기분이다. 조금은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런 용기가 내 삶에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우울할 때는 스티븐이 옆에 있어주는 거 같고, 감정에 휘둘릴 땐 가넷이 조언할 것 같고, 내 자신이 너무 나약해서 무력할 땐 펄이 용기를 복돋아준다. 환경에 불만을 가질 땐 애머시스트가 날 좀 보라며 장난을 걸기도 한다. 단순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애니메이션 이상이 되어 내가 나일 수 있게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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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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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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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스튜핏
    • 오타쿠로서 많은 작품을 감상해왔지만, 그 중에서도 <스티븐 유니버스>를 제 마음 속 일위로 뽑고 있답니다. 애정이 느껴져서 좋은 오피니언이네요ㅎㅎㅎ 사랑하지 않을 수 없죠. 메시지, 연출, 캐릭터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수작 .... 저도 작품 중에 울컥한 순간이 여러번이고, 너무 좋아해서 여러번 보다못해 듣기 공부를 이걸로 하고있습니다(ㅋㅋㅋㅋ)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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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7
    • 2019.08.09 14: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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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스튜핏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읊었나 싶었는데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죠, 요새 정말 푹 빠져 살아요. 뒤로 갈수록 너무 진지해져서 아이들이 봐도 되나 싶지만 그만큼 아이들이 얻어가는 것도 많은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영화가 나와 보게 된다면 서로는 못 알아차려고 극장 내에서 스페셜 스튜핏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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