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여름, 당신의 머리를 서늘하게 해 줄 이야기 [TV/드라마]

과연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을까?
글 입력 2019.08.0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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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MI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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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더워도 너무 덥다. 뜨거운 물속에서 한발 한발 내딛는 느낌이다. 아니다, 차라리 물속이 나을지도. 땀으로 범벅된 몸을 이끌고 친구 자취방으로 향했다. 옷 속에 팔 다리들이 어서 시원한 공기를 내놓으라 아우성이다.


휴가를 맞아 내려온 부산에서의 나, 지난 세월의 스트레스를 모두 풀고 가리라! 역시, 에어컨 빵빵한 친구 집에서 샤워까지 하고 나오니 천국이 따로 없다. 1박 2일동안 내가 이 말을 얼마나 내 뱉었던지žžž.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넷플릭스의 관대로움을 맛본다. 시원한 침대에 누워서 보는 넷플릭스가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하루 만에 ‘블랙미러’ 시즌1을 다 봤다. 시즌1은 3개의 에피소드라 부담감도 없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신이 보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 볼 수 있다. 나 질려서 드라마 시작은 잘해도 끝을 못 보는데, 이 드라마 딱 내 취향이잖아? (옴니버스 형식 : 독립된 짧은 이야기 여러 편을, 한 가지의 공통된 주제나 소재를 중심으로 해서 엮어내는 이야기 형식)


만약 기술이 마약이나 마찬가지이고 사용되기도 마약 같이 사용되고 있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무엇인가? 불안함과 즐거움 사이의 모호한 존재가 바로 블랙 미러다. 타이틀에 나오는 '검은 거울'은 모든 벽과 책상에 있고 모든 사람의 손바닥에 있다: 차갑고 번쩍거리는 텔레비전 화면, 모니터, 스마트폰이 바로 '검은 거울'이다.





HOT 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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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중에 가장 재밌게 본 에피소드는 ‘핫 샷’. ‘재미있게’라는 말이 적당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 보고 난 후에 그리 썩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는 없었거든.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나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한다. 치약을 쓸 때마다 주인공이 가진 돈이 줄어든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자전거가 준비되어 있는 공장 같은 곳으로 모여든다. 그곳에서 자전거를 타면 돈이 조금씩 쌓인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앞 쪽에 있는 화면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서 볼 수 있다.


주 콘텐츠는 성인용 동영상, 아메리카 갓 탤런트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Hot Shot’이다. 열심히 땀을 흘려 번 돈으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고, 주인공들이 달고 사는 영상 화면의 광고를 삭제하는 데 쓸 수 있다. 아 그리고 모두의 꿈인 오디션 프로그램 핫 샷에 출연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참가비를 벌면 말이다.

 


생존을 위해 노예처럼 살아가야 하는 사회. 한 여자가 그 삶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녀. 진심으로 노래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세계는 정말 간편하고 간단하다.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벌면 되고, 그러다 정말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에 설 수 있다. 고도로 발달된 기술은 손짓 하나로 인간의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 준다. 그런데 첨단 기술이 발전한 인간 세계.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 삶의 질이 더 향상될 거란 예상과 달리, 이 세계 좀 이상하다. 분명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삶들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기이하고 찝찝하다. 크레딧 영상을 보며 온갖 생각에 잠겼다. 기술의 이면에는 도대체 뭐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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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 = 삶의 풍요로움?



기술이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의 매뉴얼이다. 우리는 각종 기계와 함께 살아가고 있고, 그 기계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려면 기술을 알아야 한다. 가령 카페에서 커피 기계로 커피를 만들고 싶다면 그 기계를 다루는 매뉴얼, 즉 기술을 알아야 한다.


시계라는 기계를 사용하고 싶다면? 시계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텔레비전이나 세탁기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의 조작 버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등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다. 기술은 갈래가 없는 일방통행 길과 같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는 것이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기술을 배울수록 더 다양한 기계를 다룰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기계를 더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획일화된 하나의 방법만 배울 뿐이다. 선택지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세탁기 기계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기 전에 옷을 세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잿물로 씻을 수도 있고, 비누로 씻을 수도 있고, 발로 밟아서 세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탁기라는 기계는 어떠한가? 그 기계를 사용할 때, 우리의 선택지는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다. 기계가 인간의 삶에 침투한 후에, 우리에게는 각 기계에 맞는 기술이라는 하나의 선택지만 남은 셈이다.


과연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을까? 표면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컴퓨터는 많은 정보를 주었다. 우리 삶에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길을 걸으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과 MP3가 없었다면 우리는 길을 걸으며 음악을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안겨준 것이다.


하지만 그 기계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계 조작법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 선택해야 한다. 다양한 선택을 위해 한 가지 선택만 강요받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선택을 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지만, 기계의 획일성으로 인간은 기계화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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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꽤 흥미롭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교통수단의 발달으로 우리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더 빠르게, 더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선택지는 줄어든 것이라는 이야기. 교통수단이 발전하였지만 우리의 시간은 더욱더 줄어든다는 거다. 그 당시에는 이야기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최근에 그러한 이야기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나는 얼마 전에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서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하철이 정말 곳곳에 지나다니고 있다. 기차와 버스 그리고 비행기까지 편리하게 탈 수 있다. 내 선택지는 더 많은 곳, 더 빠른 경로가 추가된 것만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더 부족하다. 선택지가 늘어남과 동시에 그 선택지에 길들여진다. 오히려 다양한 선택지로, 내 선택지가 축소된다.

 

‘핫 샷’ 에피소드가 끝나고. 이유 모를 불쾌감이 들었다. 이 불쾌감은 그들이 보여준 세계가 침울하고 어두운 면을 보여줬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쾌하고 섬뜩한 순간은, 그 세계가 우리의 삶과 아주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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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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