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다시 쓸 때까지] 09. 오후의 평범한 풍경이 되어

글 입력 2019.07.2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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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다시 쓸 때까지]

09. 오후의 평범한 풍경이 되어

글. 김해서



필름 카메라의 매력에 빠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올해 초 연남동 어느 빈티지 가게에서 하나를 구매해 첫 롤을 3월에나 스캔해 보았으니, 겨우 한 계절하고 조금 넘게 사용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내 카메라는 이하게 엑사라는 독일 브랜드의 1960년도 시리즈인 exa 1b이다. 100% 수동 카메라라 작동법이 불편하고 모양이 투박하며 상당히 무겁다. 그래도 사진 촬영에 필요한 기본 기능 외 부가 기능이 없는 기본형이기 때문에 필름 초짜가 사용하기에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수동 필름 카메라가 생겼다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꽤나 엄청난 일이다. 필름 카메라를 샀다고 SNS에 자랑하는 것은 좋은 화질을 갖춘 요즘 핸드폰으로 손쉽게 찍을 수 있는 장면을 굳이 불편하게 찍겠다는 선언과 같다. 혹시나 상이 흔들릴까 숨도 멈추고 초점을 겨우 맞춘 다음에, 수평과 빛을 계산하여 힘겹게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정성 들여 담은 장면을 바로 확인할 수도 없다.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상소에 가서 값을 내고 스캔을 맡겨야 한다. 필름 한 롤이 평균 36컷이고 36장을 다 채워야 현상소에 갈 수 있으니 사진 확인까지 적게는 몇 시간, 많게는 몇 주가 걸리는 일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물으신다면, '그렇게까지 할 일이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빛으로 타버린 사진, 초점이 엉망인 사진, 너무 어두워 검게 나온 사진 등등 망한(?) 사진도 특별하기 때문이다. 핸드폰 카메라로는 얼마든지 비슷한 톤으로 다시 찍어낼 수 있겠지만, 필름 카메라는 '그때 그 장소의 빛'이 아니면 절대 똑같은 느낌을 낼 수가 없다. 심지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찍은 사진도 톤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사진에선 푸른 톤이 짙게 보이다가도 다음 컷에선 누르스름하게 나온다. 순전히 운발, 아니 빛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볕이 좋은 날이나 조명이 괜찮은 곳이 보이면 우선적으로 '카메라'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찍기 위해서라도 나가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건 내게 일어난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난 날씨를 타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었고 딱히 좋아하는 날씨 같은 것도 없었다. 심지어 밝고 선명한 오후보다는 땅거미가 내려앉은 어스름한 느낌 속에서 모든 게 흐려지는 걸 좋아했고, 습도와 온도에 감각이 더 예민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고작 싸구려 빈티지 카메라 하나가 생겼다는 이유로 해가 반짝 뜬 오후를 반가워하게 된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적 조건에 대해 민감해진다는 건 인간을 참 단순하게 만든다. 볕이 좋으니 기분이 좋다니!

화사한 오후의 빛 속에서는 모든 게 풍경이 된다. 산이나 들판뿐만 아니라 사람도, 짐승도, 자동차도, 전봇대도, 선풍기도. 하다못해 물기가 방울져 맺힌 작은 유리컵이나 길바닥에 쌓인 담배꽁초들까지 풍경이다. 부피감이 있는 온갖 덩어리들이 '사진'이라는 평면의 세계로 다시 태어날 때면, 피사체는 마치 웅크린 태아처럼 빛의 품 안에 갇힌 연약하고 꿈결 같은 존재로 보인다. 가로수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빛을 느리게 통과하는 노인, 카페 구석에서 세상모르게 단잠을 자는 고양이, 폐허 속에 서있는 낡은 의자, 고층 건물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검은 실루엣, 익어가는 곡식들. 스캔 된 사진들을 받아 보고서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우린 역시 빛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생명들이구나.

지상의 빛이 사그라지는 밤이 되면 우리의 마음은 먼 곳으로 유랑을 떠난다. 밤은 좀처럼 내가 원래 있는 곳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어둠의 몸집이 비대해지는 만큼, 우리가 머물 수 있는 마음의 면적은 줄어드는 법. 침대에 몸은 누웠지만 자꾸만 몽상 속으로, 꿈속으로, 과거로, 수많은 갈림길로 쪼개져 떠나는 영혼. 그러나 낮은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들에게도 '지금 이 순간'이라는 시공간을 보여준다. '오늘의 빛'은 살아있는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사유지다. 불행의 정수리에도 공평하게 내리는 새 아침의 빛. 새로운 날의 낮은 단지 낮인 게 아니라 지구가 한 바퀴의 자전을 마쳤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뛰놀 수 있는 땅이 밤 사이 새롭게 굳어 떠오른 것이다.

불편한 필름 카메라를 얻고 나서, 나는 낮에도 꽤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다. 잘 보고 싶은 것을 열심히 보는 사람이라고 하면 될까. 고작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 시시각각의 빛에 의지한다. 좀 불편하면 어떤가. 즐겁고 따스한데. 필름 사진에 있어서, 난 그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구절에 밑줄을 그어보는 독자와 다를 바 없다. 프로가 아니니까, 프로답지 않게 아주 평범하게 낮을 구경할 것이다. 셔터를 누르는 나 역시 그 오후의 평범한 풍경이 되어서 말이다. 방금 찍은 사진 속에 어떤 빛이 담겼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예감하며.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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