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0개의 아침, 270만 년의 역사 -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가는 70명의 노동이야기
글 입력 2019.07.1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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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사실 나는 이 책이 소설책인 줄 알았다. 책 소개 페이지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냥 제목이 굉장히 길고 흥미로워서, 심오한 소설인 줄 알았다. 인간이 지금껏 살아온 과거들, 살아가고 있는 현재, 그리고 급격하게 일어나는 산업혁명 속에서 인간의 노동의 역할, 그리고 마음가짐 등을 시사하는 책인 줄 알았다.


그렇게 '으..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게 책장을 넘겼다. 70개의 직업이 나열된 목차가 보였다. 적잖은 당황과 함께, "겪어보지 못한 시대의 직업을 어떻게 묘사하겠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작가의 상상력의 끝은 어딜까라는 생각을 했다. 표현력은 물론이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실감이 났다. 광대를 설명하는 데 있어 '땅 밑으로 죽은 자의 소리가 들릴까 귀를 대고 눈을 감는다.'라는 표현들은 책을 읽는 도중에 책끝을 접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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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인간은 참 많은 시기를 지나왔다. 우리나라만 해도,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을 겪고, 전쟁을 겪고, IMF를 겪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세상은 새로운 시장을 필요로 했고,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노동의 변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인간은 처음에 생존과 직결된 일을 했다. 그러나 굶주림,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자, 인간은 자신들의 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려 들었다. 그 욕구는 지위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부의 축적이기도 했고, 지식에 대한 갈망이기도 했다. 그들은 각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고,(비록 그 활동이 비인간적이더라도) 저마다 그러한 집요함이 있었기에, 이 세상이 또 한걸음 발전해왔을 것이다.




02



작가이자 기업가, 카피라이터이자 브랜드 컨설턴트 등 N 개의 직업을 아우르고 있는 경력만으로도 글쓴이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직업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필력이 너무나 출중해서, 동화 구연을 듣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이 조금 아쉬운 점으로 작용했던 것은, 특정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매칭이 조금 안되었다는 것이다. 망나니와 같은 경우,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며 술을 내뿜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책에서는 너무나 정갈하면서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읊조리고 있었다.


한결같은 필력은 그 시대의 모습을 담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내가 직접 그 시대의, 각각의 인간이 되어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근데 단순하게 글자를 통해 지식을 얻으려 하는 주제에 너무 바라는 게 많은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어 이만 생각을 접기로 했다.


이 책은 술술 읽히는 편이지만, 끝까지 완독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 왜냐하면 그 직업,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진, 그리고 설명을 보고서는 도저히 검색을 하지 않고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선수 이야기에서는 펠프스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흑사병에 대해 다시 검색해보기도 한다. 그러니 읽는 시간이 2배, 3배 더 걸릴 수밖에.


그리고 70개의 각기 다른 인간 이야기가 큰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물론 문명의 발전에 따라 인간이 발전했기에 직업도 함께 발전했겠지만 어색하지 않게 다음 이야기가 펼쳐지는 걸 보며 저자의 글 솜씨에 한 번 더 감탄하게 되었다.




03



<미래로 가는 남자>편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생 때 많이 했던 과학 상상화 그리기에서 '우주도시, 수중도시' 등등을 그렸던 것처럼 살짝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 중개자라든지, 기억 세탁자라든지, 날씨 조절 관리자라든지.


하지만 또 깊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불가능한 일들은 아니다. 내가 태어난 시대에만 해도, 자율 주행 자동차 상용화는 현실성 없는 머나먼 이야기였고, 드론이 이렇게 무궁무진하게 발전할지 꿈에도 몰랐으니깐. 하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이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했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거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직업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또 그것을 업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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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던 점을 또 하나 꼽자면, 날씨 조절 관리자 편에서, 날씨를 인간이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재해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소방관은 저 멀리 역사 속의 직업으로 남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Human Resoure(인적자원관리) 컨설팅 회사인 로버트 월터스 사는 2030년까지 사라지지 않을(혹은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 직업 중 10위를 소방관으로 소개하고 있다. 당연히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를 논할 수는 없다. 다만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 앞으로의 미래를 받아들이고, 예측하는 시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04



이 책에 소개된 마지막 이야기는 '노인'이다. 나는 마지막 장에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궁금해서, 두세 번도 더 맨 뒷장을 먼저 읽고 싶었지만, 너무 허무해질까 봐 꾹 참고 열심히 읽었다.


진시황릉이 불멸의 삶을 염원했지만, 결국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결국엔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할 때가 올 것이다. 우리 90년대 생들이 나이가 지긋이 들어 100살, 110살이 되었을 때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정확히 예측이 되진 않지만, 지금보다는 노동을 덜 하고, 풍요롭고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막연히 있다. 물론 그냥 바람일 수도 있다.


나는 인간의 '일, 노동'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입장이어서, 인간과 노동은 떼려야 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책에서의 노인이 살아가는 시대는, 고도화된 기계, 인공지능으로 뒤덮여 인간은 노동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자아실현으로써의 노동이라느니 하는 것은 다 무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를 욕하고자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어차피 다가올 이런 시대를 무작정 비판하고 걱정하기보단, 그저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린 이런 시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준비만 되었다면, 그 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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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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