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마주하기, 그래도 옆에 있을 것 - 페미니즘 연극제 "마음의 범죄"를 보고

인물과 갈등으로 읽어낸 <마음의 범죄>
글 입력 2019.07.08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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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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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나’를 만나려고 노력해본 사람들은 안다. 다른 것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에스엔에스나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멋지게 보여지는 것들 -을 의식하지 않고, 나는 누구인지를 혹은 나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 뭔지 알기는 쉽지 않다. 작게는 음식적 취향에서부터, 크게는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내 몸 바깥의 무언가’의 영향을 받지 않기란 어렵다. ‘나’를 만나는 방법은 자아를 탐구해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자아 그 속으로 들어가다보면, 이건 내것이고 저건 다른 이의 것이고 하는 판단이 조금은 서는데,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근래 가장 자주 자신의 자아 속에서 찾아내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는 모두 ‘가부장제’스러운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러니까 자아 속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를 찾아보면 남성중심의 사회상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속으로 향하는 길도, 종국엔 바깥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름 : 순진, 가진, 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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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로 가진, 아진, 순진
 


1980년대에 영화로 각색되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등에서 각종 상을 수상한 바 있는 <마음의 범죄>는 한국으로 들어와 주인공 이름으로 순진, 가진, 아진을 골랐다. 이름은 사실 상 가장 좋은 ‘성격 드러내기’ 방법이다. 도라에몽에서 퉁명스러운 친구를 퉁퉁이로, 간사하고 마른 친구를 비실이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건전하지는 않지만 효과적인 ‘이름 짓기’의 사례가 될 것이다.


<마음의 범죄>의 세 자매의 이름도 같은 맥락이다. 첫째 ‘순진’은 순진하다. 자신의 쪼그라든 난자는 곧 그것의 주인인 자신까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의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겁을 먹고 이별을 통보할 정도로 첫 째는 순진하다. 그 다음은 ‘가진’인데, 사실 가진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기에 명명이 잘 되었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둘째 가진은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것을 가졌다. 순진이 졸업식날 입고 싶었다고 했던 ‘분홍색 원피스’를 할아버지는 순진이 아닌 가진에게 사줬고, 수많은 남자들을 가졌고, 순진의 짧은 대사에 의하자면 가진은 그동안 많은 수혜를 받고 산 인물로 보인다. 그녀가 가지지 못한 것에 관해는 글의 나중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은, 막내 ‘아진’이다. 아진의 이름은 극 중에서 뒷부분이라기보다는 앞부분으로 많이 불리우는데 유독 막내에게만 그런 호명이 이루어지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유아진을 이름으로 하는 막내는 연극 내내, ‘유아’로 불린다. 이 이름이 의미를 갖는 순간은, 연극에서 세 자매가 모이게 되는 계기를 유아진이 제공했음을 인지했을때 발생한다. 세 자매를 모은 것은, 동생 ‘유아’이자 자신의 ‘유아기’였다. 인물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그들을 부른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해결하지 못한 유아기의 상처들이었다.




세가지 갈등



세 자매는 막내 유아가 남편에게 총을 쏜 일로 모여 각종 말싸움과 위로와 추억을 나눈다. 작품 속의 갈등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이 갈등의 양상을 자세히 정리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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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아와 남편의 갈등’이다. 이 갈등의 시작은 유아가 남편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졸았던 것에서부터다. 남편은 시의원으로서 좋은 위치, 권력과 돈을 가진 인물이었고, 그런 남자와 결혼한 유아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부러움을 받는다. 하지만 그 결혼 속에서 유아에게 주어진 것은 ‘농담에 웃어야만 하는 의무’와 그 의무를 지지 않았을 때 돌아오는 ‘폭력’이었다. 이 폭력의 앞에 ‘가부장적’이라는 단어는 아주 자연스럽게 붙는다. 아진은 ‘가부장적 폭력’을 겪는 자다. 그 속에서 아진은 사랑을 찾고 갈구한다. 그래서 개와, 어린 미성년자와 사랑을 나누기로 한다. 모두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것들이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 기대어 겪은 폭력이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작고 약한 것에서 애정을 느낀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이 갈등이 중요한 것은, 모두 ‘어머니’와 ‘죽음’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세 자매는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가 고양이와 함께 자살하여 불우한 유아기를 보냈다. 이에 관해 막내 유아는 ‘엄마는 그 때 왜 죽었을까?’ 등의 근본적인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진다. 그녀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은, 남편에 의해 미성년자가 떠나고 개가 떠났을 때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서 총을 자신에게 겨누고 생각한다. ‘죽고 싶지 않아’ 그리고 이해한다. '엄마는 나처럼 자살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사실은 아빠를 죽이고 싶었던 거구나' 단절되었던 엄마와 아진의 관계는 다시 한 번 연결되고, 윗세대의 피해자 여성과 현 세대의 피해자 여성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된다.




사회적 차원의 ‘불평등’에 엮여있는 문제를 겪은 피해자들은 자신의 탓을 하게 되는 편이 쉽다. 성폭력이나 성희롱 피해자들은 ‘옷을 그렇게 입고다니는 게 잘못이지’, ‘왜 제대로 저항하지 않았어’라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법원은 L교감에게 성추행을 당한 아이의 말의 신빙성을 믿어주지 않았고, 법원은 피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보호자에게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 진정한 화해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었다. 유아도 마찬가지다. 가해자의 폭력과 압박, 자신의 희망까지 잃어버린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을 해하려고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죽어야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그렇게 만든 ‘남편’이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아진은 피해자로서, 가해자가 자신에게 가한 폭력을 마주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총을 쏘는데 그녀가 나중에 전하기를 그를 해한 것은 ‘그냥 얼굴이 꼴보기 싫었기 때문’이랬다. 아진이 남편에게 총을 쏘고 갈증을 느껴 택한 것이 '레모네이드'라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레몬즙과 물과 많은 설탕으로 이루어지는 간단한 음료. 그 중 레몬이 해독과 살균에 탁월하다는 것이 꽤 의미심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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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순진과 가진의 갈등’이다. 이는 단순히 첫째와 둘째의 갈등으로도 정리 가능하지만, 사실 이 갈등은 성격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책임의 차이에서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순진은 제주도에 남아 아픈 할아버지를 돌보며, 집에 혼자 남아 할머니의 뒷모습으로 밭을 매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는 가부장제에서 주어진 여성의 입지와 책임을 묵묵히 수행한다. 이에 비해 가진은 일찍이 서울로 떠나, 하고 싶던 노래를 하고 꿈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는 마치 ‘마녀’처럼 부정적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모두 가진이 자신을 사랑했던, 그래서 자신의 다리를 잃으면서까지 그녀의 곁을 지켰던 남자를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후에 떠난 이유를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라고 묘사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가진은 제주도와 할아버지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의 품을 답답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그렇게 가부장제를 져버리고 떠난 여성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나쁜 여자, 상징적 ‘마녀’처럼 그려지게 된다.


할아버지는 가부장제의 표상이다.


순진은 가진에게 할아버지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순진은 가진보다 할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고, 그래서 슬펐지만 꿋꿋히 할아버지를 옆에서 보필했기에 가진을 미워한다. 가진은 순진에게 할아버지 때문에 묶여서 남자 한명도 못만나는게 자신의 탓이냐며 반문한다. 가진은 가부장제를 떠났고, 가부장제 속에 묶여 있는 순진이 그녀에게 가하는 비판이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녀들의 싸움엔 성격 차이 그 이상의 ‘가부장제’의 피해자들이 받은 입장 차이가 있다.


가부장제에는 수혜자가 있다. 물론 가장 큰 수혜자는 남성이며, 그 다음의 수혜자는 남성에게 채택된 여성이다. 마지막이 채택되지 못한 여성이다. 그렇기에 인터넷 싸움에서조차 남성들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이미지를 ‘남성에게 관심 한 번 받지 못한’ 것으로 고착시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순진에게 가진은 가부장제의 수혜자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도 못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롭게 떠나간 가진이기에 순진은 가진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움은 커져간다. 가진은 자신이 받은 수혜의 본질을 안다. 그 불평등에서 발생한 수혜와, 그것의 답답함을 인식한 인물이다. 이는 그녀가 탁월해서가 아니다. 그저 가부장제 속에서 죽어간 엄마의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했고, 그 실상을 가장 어릴때부터 마주친 뒤 강해지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그렇게 문제 없는 이들을 싸움을 붙여, 존속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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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유씨 세자매와 양영반의 갈등’이다. 이 갈등 구도는 양영반이 유씨 세 자매의 계속 심기를 건드리며 발생한다. 관객들은 양영반의 무례한 언변을 들으며, 저런 말은 하면 안되는데 하고 지속적으로 의식한다.



순진 : 가진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

영반 : 왜 이래, 나는 언니가 가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아니, 가진은 저질 쓰레기고 언니는 걔나 걔의 역겨운 행동에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잖아.


순진 : 여기서 나가

영반 : 나한테 나가라는 소리 하지마! 도대체 어떻게 언니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나는 너희 쓰레기같은 집안과 쓰레기같은 생활에 넌더리가 났어. 지하실에서 목을 매질 않나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질 않나, 자기 남편을 총으로 쏘지를 않나!


(각색 대본을 구하지 못해, 원문 해석본에 이름을 바꿔 인용하였습니다)



영반은 유씨 집안을 무시하고, 그녀들을 감시하며 비판한다. 하지만 이 갈등은 결국 영반이 쫓겨 난 후 방망이를 챙겨 들고 복수를 하러 왔다가 자살하려던 아진을 구하고 해소된다. 영반은 정신을 차린 아진에게 “못된 짓 좀 하지마. 사골국 먹으려면 냄비 들고 오던가”하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영반과 세 자매는 서로에게 타인이고, 가부장제의 감시자라고도 할 수 있는 영반은 세 자매에게 적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네 여자는 화해한다.


서로를 구하고, 치료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건네는 것이다. 아마 영반에게 세 자매도 그럴 것이다. 큰 갈등은 아니었지만, 영반과 세 자매의 화해는 여성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재수 없는 날’에 여성들은 서로에게 손을 건네며 서로를 구할 것임을 이 갈등의 해소는 드러내고 있다.




옆에 있을 것, <마음의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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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뭘 말하고자 하는 건데?'를 알기 위해선 제목을 볼 수 밖에 없다. 마음의 범죄, 마음의 범죄, 잘은 모르지만 첫 번째 해석은 이것이다. 자신을 마주하지 않는 건 마음에게 짓는 범죄일 수 있다는 것. 두번째 해석은, 자신이 받은 상처는 결국 마음에서 범죄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 아진의 경우처럼 말이다.


제목이 드러내는 바는 이정도이고, 결국에 우리가 이 연극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그렇지 않아도 되지만 페미니즘 연극제의 상영작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였을 때- '연대' 일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순진은 ‘아기공룡 둘째’에게 다시 한번 전화를 걸고, 가진은 사랑했지만 떠나갔던 이와 완벽히 이별하고, 아진은 재수 없는 날들을 살아갈 힘을 부여받은 것 만으로 그렇다. 이런 점에서 그들이 극의 마지막에서 다같이 불었던 것은 '생일 기념의 초'였으니까, 그녀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나 다시 한 번 태어났다고 보아도 좋을까. 진부하지만, 필자는 그러고 싶은 것 같다.


나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사실 만나면, 상처받고 찢어진 곳이 있어 화도 난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마주하면, 그리고 그것을 건드리고 레몬으로 치료할 생각이라면, 그 옆에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그린 것이 바로 <마음의 범죄>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 모두의 주변엔 순진과 가진과 아진, 그리고 영반이 있을 것이라는 것. - 필자도 - 우여곡절은 있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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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A Day Late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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