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베르나르 뷔페가 좋아졌다 [전시]

내면이 단단해서 더욱 멋진 화가, 베르나르 뷔페
글 입력 2019.07.07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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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대다. 천재의 캔버스

베르나르 뷔페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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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뷔페를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에 대한 적잖은 회의감이 거센 폭풍우처럼 몰려왔다. 피카소나 마티스 등 다른 유명화가에 비해 왜 그가 대중에게 덜 알려졌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지 않았던 화가라서 전시 전 설렘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전시였다. 비록 전시 하나만으로 한 예술가의 삶 전체를 조명할 수 없긴 하지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베르나르 뷔페전은 적어도 그의 작품들과 작품에 담긴 그의 내면을 들여볼 수 있었던 것 같다.




Section 1. 스타의 탄생



Section 1에서 본 뷔페의 작품들은 대부분 정물화나 인물의 초상화로 절제된 색채감이 잘 느껴졌다. 이젤과 초상화를 비롯한 몇몇 작품에선 거의 무채색만을 사용하기도 했고 다른 작품들에서도 몇 되지 않는 채도 낮은 색으로 이야기를 표현했다. 어떻게 같은 회색이 저렇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감탄하기도 했고, 캔버스에서 같은 색채에 대한 지루함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그의 작품은 세밀함의 대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듯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이 남긴 폐허의 세상 속에서 이 같은 멋진 작품들이 탄생했다는 건 아주 놀라웠고 예술에 대한 그의 천부적인 사랑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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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Autoportrait au chevalet, 1948, huile sur toile, 200x94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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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2. 새로운 시작



프리뷰를 작성하며 미리 감상하고 갔던 그의 작품 <와인 한 잔 그리고 여인>, <실내에 앉아있는 남자>, <여장 남자> 등을 실제 캔버스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뜻깊은 일이었다. 사진이 묘사하는 작품의 대략적 이미지와는 절대 비교 불가한 작품들이었다.


<와인 한 잔 그리고 여인>에서 여인이 입고 있는 재킷은 한번도 본 적 없는 아주 특별한 색으로 표현되어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에 담긴 섬세함은 그의 예술혼을 잘 드러내 주었다. 갈색의 테이블과 대비를 이루는 에메랄드 빛이 약간 도는 초록계열의 벽도 정말 아름다웠다. 벽을 가득 수놓은 붉은 꽃의 벽지가 유독 인상 깊었는데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베르나르의 뛰어난 관찰력이었다.


이 작품을 그려내기까지 그림 속 인물을 얼마나 수도 없이 관찰했을까 생각하며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혹은 단 몇 번의 관찰로 탄생한 그림이었다 가정해도 그는 천재적 화가인 것 같았다. 그림 속에 구현된 섬세함까지도 아름다움이라는 피사체로 자신의 두 눈에 담을 수 있고, 그 아름다움은 그의 손끝에서 다시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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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Interieurs - Homme assis, 1953, huile sur toile, 218x195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실내에 앉아있는 남자>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비쩍 마른 남자의 몸과 그를 더욱 부각시키는 원색의 다홍색 쇼파, 그리고 디테일한 테이블보가 인상 깊었다. 또한, 여장남자를 직접 보니 인물의 슬픈 표정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 것 같았다. 정적인 이미지의 슬픔이 그가 표현한 색들과 거침없는 붓놀림을 통해 역동적이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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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Travesti, 1953, huile sur toile, 81x65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Section 2의 제목이 새로운 시작이었던 이유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베르나르가 Section 1에서 보여주었던 절제된 색채는 새로운 시작과 함께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이전까진 잘 사용하지 않았던 원색의 과감한 색채를 흩날리며.




Section 3.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전시 중 제일 볼거리가 풍부했던 코너가 아니었나 싶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했던 반면 베르나르가 기획했던 <미친사람들> 시리즈를 여럿 감상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여행한 여러 나라들을 담은 멋진 작품들과 그의 영원한 뮤즈이자 사랑스러운 아내 애나벨 뷔페를 만나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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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L'Odyssee - Les Sirenes, 1993, huile sur toile, 230x455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우선 초등학교 때 읽고 한번도 다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사실 오디세이가 어떤 내용인지도 정확히 몰랐던 나에게 이번 전시는 추억의 상기와 더불어 유익한 공부가 되었다.


영웅 오디세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모험담으로 고국 이타카를 떠난 그가 귀국하기까지 님프 칼립소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해상에서 사이렌의 유혹에 방해받기도 하는 등 오랜만에 반가운 그리스 신화를 다시 만났다. 이타카에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수많은 구원자들의 집착을 계속 뿌리쳐야했던 아내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만이 지녔던 뛰어난 활 솜씨. 만화로만 접했던 이야기들을 베르나르의 작품으로 감상하니 아주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베르나르가 우리를 데려가고자 한 곳은 그리스에 대한 그의 사랑일까?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복일까? 아니면 불안을 이기고 승리한 삶에 대한 기쁨일까?



그래, 무엇일까? 그가 이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 벽면에 쓰여진 이 문구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길 순 있었지만 정해진 하나의 답을 찾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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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Les folles, le repas II, 1970, huile sur toile, 200x195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이어 미친 사람들 시리즈는 이때까지 봐왔던 작품들보다는 확실히 거침없는 강렬함이 느껴졌다. 그들의 표정은 실제로 섬뜩하기까지 했다. 계속 보고 있으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한 냉기가 나를 휘감아도 이 작품들을 쉬이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단지 그림에 국한돼 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사람들로만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이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햇살과 무지개 같은 천국에 당도하는 것은 너무나 이상적인 일이 돼버렸다. 방향성을 예측할 수 없는 보트는 인간을 지옥에나 있을 법한 암흑에 데려다 놓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느낄 때가 있는 한편 그 사람이 제일 무서워지기도 하는 동전의 양면 같은 세상이다. 현실의 불편한 모습들까지도 숨김없이 그의 캔버스에 그려낸 베르나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게 거만하다 할지 모르지만, 이 캔버스를 한 번 보세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에요.



전시 중 그가 한 말 중에 인상 깊었던 문구였다. 그의 말처럼 이 작품들을 보면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나르는 용기있는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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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러시아의 여러 교회와 브르타뉴 섬, 이탈리아, 프랑스, 뉴욕 등 세계 곳곳을 담은 작품들도 정말 멋졌다. 이전 섹션에선 잘 볼 수 없었던 풍경화였던 점도 특별했지만, 그 풍경들을 아름답게 재현한 베르나르의 표현기법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록펠러센터 등을 표현한 작품들을 보며 그의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한 편의 추억을 회상시킬 수 있는 반가운 선물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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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Annabel en robe du soir, 1960, huile sur toile, 130x81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그의 아내 애나벨을 그린 작품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코랄색을 배경색으로 한 이 작품은 정말 사랑스럽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나의 모든 것을 나의 부인 애나벨 뷔페에게 남긴다는 내용의 유언장 정물화를 보며, 전시장 곳곳의 애나벨이 들려주는 베르나르의 작품세계와 그의 생각들을 보며, 기념품 코너에서 그들이 담긴 흑백의 엽서들을 보는 동안, 내게도 전해져 왔다.


그들의 서로에 대한 견고한 믿음과 아름다운 사랑이. 서로를 이렇게 아끼고 존중하며 사랑이라는 가장 따뜻한 컬러로 매일을 칠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나도 언젠가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Section 4. 찬란한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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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Buffet, La mort 10, 1999, huile sur toile, 195x114cm,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말년에 파킨슨병을 앓았던 베르나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었던 섹션이었다. 그릴 수 있는 행위를 제일 좋아하던 그가 건강의 악화로 인해 붓을 들기조차 힘들어진 상황을 마주해야했을 매일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베르나르를 상징하는 주제인 광대를 표현한 여러 작품들과 죽음을 모티브로 한 해골을 표현한 작품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어둠만을 드러내고 있진 않았다. 광대들을 표현한 밝은 색채들의 조화나 장기를 가지고 있는 해골들은 어둠을 이겨내고자 한 희망을 그려내고 있었다.



작품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필요는 없다. 과학이 발전해서 달나라 여행이 가능해지고, 추상미술이 도래하더라도 내가 ‘페인팅’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 베르나르 뷔페


그가 말하고 있듯 기술의 발전이 세상의 여러 면모를 바꿔놓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절대 바꿀 수 없는 한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예술이 아닐까싶다. 제아무리 수심이 깊은 바다일지라도 깊이의 정도를 이길 수 없는 사람의 마음. 그 마음에서,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운 손 끝에서 피어나는 예술은 과학이 바꿔놓을 수 없는 꽃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꽃말로 가진 리시안셔스(Lisianthus)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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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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