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필로 FILO vol.8_영화만을 위한 사유 기록

FILO와의 첫 만남
글 입력 2019.07.0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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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평론의 올바른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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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도 <기생충>을 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언뜻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일명 ‘명징’사태로 불리는 논란은 이동진 평론가의 <기생충> 평으로 인해 발발했다.

명징과 직조. 이 단어들에 대해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로 굳이 아는 척을 하는 것이 평론이냐’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에 맞서 ‘그다지 어려운 단어도 아닌 점을 트집 잡는다’ 혹은 ‘비판할 시간에 모르면 찾아보라’와 같은 목소리도 나왔다. 이 논란 자체는 큰 사건이 아니지만, 그 속에는 대중이 ‘평론’과 ‘비평’을 바라보는 태도와 평론가의 역할에 대한 물음이 내재 되어 있다.

이 문장이 논란이 될 당시 나는 한창 ‘명징하다’라는 단어에 빠져 있었는데 (물론 이동진 작가의 평론 때문은 아니다) 내가 한창 곱씹던 단어가 논란의 중심이 되자 약간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그렇게 논란이 될 단어인가?,
이 단어를 썼다고 비판까지 받아야 하나?’

사실 ‘명징하다’라는 단어의 쉽고 어려움을 가리기에 앞서 우리는 이 논란을 통해 ‘대중이 바라는 평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이 논란의 쟁점 역시 ‘대중성과 전문성의 비중을 어떻게 두느냐’인데 (물론 ‘명징하다’라는 단어를 가지고 전문성을 논하는 건 엄청난 과장이다) 개인적으로 대중성보단 전문성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상적인 비율로는 6:4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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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해프닝을 지켜보면서 늘 손꼽았던 일 중 하나인 비평과 평론에 대해, 나는 얼마만큼 사유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고, 학부 내내 글을 써왔지만 정작 제대로 된 ‘비평’이라는 장르를 한 번이라도 써낸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3년 전에는 더더욱 ‘나를 위한 글’을 쓰면서 어렵고 현학적인 단어를 많이 쓰곤 했는데 요즘엔 점점 담백하면서 쉽게 읽히는 글을 추구하게 되면서 최대한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가끔씩 화려한 어휘로 점철된 글을 쏟아 내다보면 이상하게 해방감이 들 때가 있다. 굳이 어려운 단어를 찾아 쓰는 심리는 일종의 과시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FILO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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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비평은 전문적인 맛이 있어야 한다는 나의 손에 순수하게 비평만으로 이루어진 잡지 FILO가 들어왔다. FILO는 영화를 뜻하는 ‘film’과 ‘어떤 것을 좋아하는’이라는 뜻의 단어 philo-'가 합쳐진 격월간 잡지로, 영화 비평을 중심으로 다루는 비평 전문 잡지이다. 영어로 쓰인 문구 In search of Cinema, Language, and Love가 대번 눈에 띄었는데, 대략 영화에 대한 사랑을 언어와 활자로 풀어낸 기록물 정도로 의역해볼 수 있겠다.

사실 이전에도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이전 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영화판에 대한 관심도가 높지 않아 굳이 이 잡지를 받아보진 않았다. 학부 내내 나는 미디어 비평을 공부했지만 영화 작품 자체의 플롯과 미학적 가치에 대해서 주로 공부했고, 영화 산업에 대해선 그리 큰 관심이 없었기에 개봉 시의성과 관계없이 내가 원하는 작품들만을 골라보곤 했다. 결국 얕게 얕게 알음알음 알아가던 나의 조각난 영화사는 올해 지역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관객 프로그래머 활동을 하면서 약간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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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GV(guest visit)의 진행도 해보고, 매월 새로 개봉하는 독립영화의 미리보기 평을 쓰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면서 영화의 세계가 이렇게 다양하고 넓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가고 있다. 이번 FILO 8호의 문화초대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응하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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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받아든 FILO는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에 두툼한 두께를 자랑했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글의 길이였다. 장문 글쓰기를 사랑하는 나지만, 그런 나조차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많은 분량의 글들은 주로 한 영화나 한 감독을 다룬다. 이는 한 작품을 엄청나게 촘촘히 뜯어보는 동시에 감독과 배우, 영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통찰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직까지 주로 플롯과 스토리에 의존해 평을 쓰는 나와는 달리 다각적인 분석이 돋보이는 글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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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었던 글은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다룬 정한석 평론가의 글과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인생을 짧게 압축한 글이었다. 이 글들이 눈에 띈 이유는 단순했다. 조금이나마 ‘아는’ 혹은 한 번이라도 ‘들어본’ 영화를 다루고 있었기에, 이들은 다른 글들을 제치고 우선권을 가져갔다.

물론 <왕좌의 게임> 역시 익숙하다 못해 정주행이 두려울 정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가깝고도 먼 존재이기 때문에 글이 주는 첫인상은 다소 미약했다. (그나저나 왕좌의 게임 시즌이 정말로 끝나면 어떻게 정주행을 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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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들은 일종의 영화 지침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영화를 보기 전에 읽는 글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서 그 기억을 함께 되새기며 읽어 나가야하는 일종의 해설서나 교과서 전과와 비슷하다. 집약적인 해설과 지식이 들어간 글들을 보면서 내가 쓰는 글의 방향에 대해 다시 곱씹을 필요를 느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잡지 속에 소개된 영화들을 미처 보지 못했다는 점, 그래서 이 잡지의 진가를 아직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화는 역시 시의성이 중요한 매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짧게나마 마음에 담았던 문장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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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잘 보이지 않고 손이나 말로 정확히 가리킬 수도 없지만 도처와 불시에 만연해 있는 듯한 이 겨울은 곧 죽음의 시간을 가리킨다.

이후경, <왕좌의 게임>, “귀가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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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감독 이시이 유야와 <아사코>의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경력이나 성향이 다르고 완성물의 스타일도 달라서 <도쿄>와 <아사코> 역시 꼭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두 영화가 라스트씬에 이르러 문득 같은 지점에 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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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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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표현처럼 들리겠지만, <도쿄>와 <아사코>의 라스트씬에서, 우리를 실감케 하는 그 힘은, 그 실은, 다름 아니라, 안간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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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쳐도 될 법한 상황을 너무 과장해서 주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문도 들었지만, 결국에는 지나쳐도 될 법하다며 지나쳐버리고 마는 ‘구체적 사태’들이 나에게는 영화의 중요한 것들이므로, 오히려 이 호기심과 관심은 배가 되어도 좋겠다.

정한석, <아사코>와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두 개의 장면, 실력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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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는 영화감독이 될 것이고, 영화감독이 되고야 마는데, 그것은 바르다가 그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장미셀 프로동 “아녜스 바르다, 위대한 삶”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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