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트토이, 그것이 알고싶다 [문화 전반]

키치와 키덜티즘의 상관관계
글 입력 2019.06.2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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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키덜트’는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2015년 이후 온라인에서 매해 만 번 이상 언급되고 있다. 2018년 기준 키덜트 시장 규모는 1조 원을 넘어섰고, 연평균 8.7%라는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17년 기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장난감 매출은 감소하는 반면, 키덜트를 대상으로 한 피겨, 프라모델 등의 매출은 5% 정도 증가해, 백화점 및 대형마트에서 어린이 장난감 코너를 축소하고 키덜트들이 선호하는 제품 위주로 매장을 개편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징적인 것은 ‘아트토이’ 시장의 성장이다. 아트토이란 디자이너나 예술가에 의해 창조된 장난감으로 50개에서 2000개 한정으로 만들어진 수집 가능한 토이를 말한다. 아트토이는 단순히 장난감 매장에 전시된 상품을 벗어나 미술관과 명품관을 넘나들며 그 입지를 넓혀 나가고 있다.




Ⅰ. 모방과 과장을 통한 아트토이의 유희성


    

겉으로는 고급문화를 표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속은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아트토이는 ‘키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전적으로 키치는 '고급문화의 미적 기준을 부적절하게 모방한 대량 생산된 예술이나 사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키치의 사전적 정의와는 달리 키치의 사회성을 강조한 아브라함 몰르는 '키치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일상생활 속에서 구상하고 증명하는 유희이자 일종의 특수한 사회적 기능'이라며 현대 사회에서 키치의 위치를 달리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키치는 고급문화를 모방함으로써 대중들의 감성을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 방식의 한 부분으로서의 대중의 삶 한 부분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키치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많은 아트토이들은 영화부터 국기까지 다양한 디자인을 차용함으로써 모방성을 지닌다. 그러나 아트토이가 단순히 디자인을 베끼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트토이 디자이너인 ‘Ron English’는 ‘헬로키티’, ‘미키마우스’, ‘로널드 맥도널드’ 등의 디자인을 차용하여 아트토이를 만들지만 이를 변형하고 왜곡하여 사회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시선을 반영한다.


이러한 형태의 아트토이는 마치 대중문화를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팝아트를 연상하게 하며 이를 장난감에 투영함으로써 유희성을 한층 강화한다. 가장 유명한 아트토이인 ‘베어브릭’ 또한 디자인의 모방 및 변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트토이 중 하나다.


베어브릭은 2014년 디즈니와 손잡고 ‘미키마우스’나 ‘도날드 덕’의 얼굴을 한 핼러윈 에디션; 고스트 시리즈를 출시했다. 그러나 기존의 캐릭터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핼러윈 에디션에 맞게 각 캐릭터는 미라나 호박 옷을 입는 등 독특한 디자인으로 독창성은 물론 유희성까지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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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 English와 그가 만든 장난감들



그러나 아트토이가 선사하는 유희는 일반 장난감을 통해서 얻는 유희와는 다르다. 아트토이는 과거의 어떤 가치 또는 과거 그 자체를 모방함으로써 과거를 그리워하는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고 이를 통해 대중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즐거움을 얻는다.


즉, 성인이 아트토이를 수집함으로써 얻는 유희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은 물론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앞서 아브라함 몰르가 말한 키치의 사회적 역할과도 일맥상통하는데, 다시 말해 아트토이는 성인들의 유희적 감성을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유희를 즐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는 문화인 것이다.


다른 디자인을 모방하지 않은 아트토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아트토이들은 과장된 표현으로 어딘가 비율이 맞지 않고 괴상한 형태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유명 아트토이 디자이너인 ‘쿨레인’은 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아트토이들을 만든다. 그의 작품은 모두 비정상적으로 머리와 손이 크고 다리가 짧게 표현되어 마치 캐리커처를 장난감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국내 유명 아트토이 회사인 ‘스티키 몬스터랩’ 또한 조롱박 모양의 몸통에 다리만 붙어있는 형태의 아트토이를 제작한다.


이는 형태를 지나치게 단순화, 추상화하는 과장을 통해 장난감 특유의 유희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다른 아트토이들 또한 일반 장난감들 보다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아트토이의 익살스러움과 유희성을 강조한다. 대중들은 현실을 왜곡하여 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강력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최근의 키덜티즘 열풍은 이러한 욕구의 반영이며 아트토이는 과장과 왜곡을 통해 성인들의 유희성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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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아트토이 디자이너, 쿨레인의 작품




Ⅱ. 아트토이의 자기 기만성과 고급문화로서의 키덜티즘



과장을 통해 유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키치는 과장성을 지니고 있다. 과장성은 사물의 확대와 축소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또한 과장되게 부풀린 사물의 표현은 마치 그 세계 자체를 소유한 것만 같은 느낌을 선사하기 때문에 대중은 사물의 크기와 자신의 존재적 크기를 동일시하게 된다.


이러한 '더 많이'라는 수집 욕구와 더불어 '키덜트' 또는 '마니아'로서의 자기 정체감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아트토이는 키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트토이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일종의 전문적인, 고급문화의 영역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자기기만적인 속성도 가지고 있다. 이는 아트토이가 플라스틱 장난감이라는 제품 자체의 가치보다는 장난감의 브랜드나 희소성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트토이의 이러한 두 가지 속성은 현대인들에게 아트토이가 사랑받는 주요한 이유다.


앞서 언급한 베어브릭은 이러한 소비심리를 가장 잘 공략한 아트토이다. 베어브릭은 다양한 명품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왔는데, 2007년에는 고급 패션 브랜드 샤넬(Chanel)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으며 2008년에는 중국의 팝아트 거장 위에민쥔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의 컬래버레이션은 구매자에게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닌 예술품을 구매한다는 느낌을 주게 하며, 실제로 베어브릭이 미술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기기만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과시욕과 결부되어 키덜트 수집가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 많은 수집가들이 아트토이들을 마치 고가의 미술품처럼 전시해두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를 입증하는 증거이다. 베어브릭의 판매 전략은 성인이 장난감을 구매한다는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것은 물론 개성이 중요한 현대인에게 키덜트라는 독특한 자기 정체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아트토이의 역할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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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팝아트 작가,
위에민준과 베어브릭의 콜라보 작품
약 1억 8천만 원에 낙찰됐다


베어브릭의 또 다른 전략은 바로 한정 판매이다. 아트토이의 정의 자체가 한정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 번 구매 시기를 놓치면 경매나 중고거래를 통해서만 원하는 제품을 구할 수 있다. 베어브릭의 경우 스페셜 에디션을 제외하고는 1년에 2번 24개의 정기시리즈를 발매한다.


이 정기시리즈는 모두 랜덤으로만 구매할 수 있으며 구매 후 포장을 뜯고 나서야 어떤 디자인의 베어브릭을 샀는지 알 수 있다. 독특한 점은 24개의 디자인이 모두 같은 확률로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확률로 들어있어 희귀한 제품의 경우에는 그 가격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희소성은 고급문화로서의 아트토이의 정체성을 강화해주는 좋은 장치이다.


산업사회 이후 등장한 대량생산 제품이 아닌 아트토이는 일종의 미술품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진짜 미술품은 아니지만, 미술품으로서의 키치적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아트토이는 자기기만적이다. 또한 세상에 몇 없는 ‘나만이’ 가진 제품이라는 점에서 아트토이는 개성을 추구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현대인에게 큰 의미가 있다.


베어브릭 이외에도 대부분의 아트토이는 한정 판매라는 희소성을 강조한 판매 전략을 사용하며 ‘루이까또즈’, ‘나이키’와 같은 세계 유명 기업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고급문화를 표방한다. 아트토이가 인기를 얻으면서 최근에는 아동을 대상으로 하던 장난감 브랜드들도 키치적 속성을 강조한 스페셜 에디션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레고’이다. 레고는 최근 레고와 재테크를 결합한 ‘레테크’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한정판 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85년부터 판매되었던 장난감인 ‘실바니안’ 또한 각종 한정판 에디션을 출시하고 배타적인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키덜트들의 마음을 공략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정 판매라는 자기기만적 속성이 아트토이의 인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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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설계가 필요한
레고 테크닉 포르셰 911 RSR



기존의 장난감들은 마니아 사이에서만 소비되었고 성인이 장난감을 수집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트토이의 키치적 속성은 아트토이를 하나의 문화로서 새로운 위계에 자리하게 했으며 이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다. 대중은 다양한 방식으로 유희를 추구하며 이를 충족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아트토이를 선택했다. 그러니 키치한 매력의 아트토이와 함께 오늘은 네버랜드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수많은 피터팬과 팅커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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