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이 순간 남미로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남미히피로드 [도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남미 여행기
글 입력 2019.06.01 15:4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당신은 잘 지내나요? 800일간의 남미 방랑

남미 히피 로드



표지입체.jpg
 



페루, 파블로와 달의 사원



페루에 머무르는 동안 작가는 여러 사람과의 추억으로 일상의 양식을 더해나갔고 그가 독자에게 전한 이야기들 중 내게 인상 깊었던 추억 한 부분은 바로 파블로와의 기억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파블로의 직업은 레스토랑의 여리꾼, 일명 식당 앞에서 관광객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하는 일이다. 미국의 영화배우 벤 스틸러와 닮았고 말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그에 대한 소개를 읽어나가는 동안 파블로에 대한 내 첫인상은 ‘산만하다’로 굳혀지고 있었다.


그런 파블로가 작가에게 달의 사원에 가자고 권유했고 약속 하루 전날 그는 돈이 충분하지 않아 내일도 일하러 가야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후 작가의 반응은? 이미 중남피 친구들이 약속 시간을 어기는데 익숙해져 있었던 작가는 파블로가 괜히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으니까 그에 대한 핑계거리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속 당일 아침, 파블로는 자신에 대한 이런 생각이 친구의 머릿속에 있을 거라곤 짐작도 못한 채 약속장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시끌벅적한 이미지로 각인된 그는 달의 사원으로 가는 동안 잉카문화에 대한 고고학적 지식을 작가에게 불어넣어주는 아주 유능한 여행 가이드였다. 특히 그는 누군가 싼 똥이 가득히 얹혀있는 수풀을 맨손으로 걷어내며 500년 전 잉카의 수로를 보여주려고 했던, 자신의 한 몸을 사리지 않는 멋진 가이드이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부족한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일하러 가야했던 파블로는 작가에게 더 많은 곳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뱉으며, 그때까지도 낫지 않았던 다리를 절룩이며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크기변환_1maxresdefault.jpg
 


작가가 전하는 파블로와의 추억의 조각 속에서 나는 한번도 만나보지 않았던 파블로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던 잉카 문명이 담긴 세계를 간접적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점은 달의 사원으로 여행하던 중 그가 파블로를 통해 느꼈을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 가슴에도 뜀박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고 지낸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너무나 성급하게 자신만의 판단을 지어버린 자신에 대한 반성, 성하지 않은 몸을 이끌며 여행 내내 그에게 더 많은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친구 파블로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런 파블로의 한없이 맑은 순수한 마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에 대한 의심과 선입견. 저녁 시간부터 일을 시작해야할 파블로는 굳이 아침 일찍부터 무릎의 통증을 안고서까지 달의 사원에 갈 필요는 없었다. 누구보다 잉카문명의 역사를 아낄 줄 알았던 자신은 정작 구경할 여유조차 누리지 못했다. 작가와 함께 왔던 길을 홀로 되돌아가던 파블로의 뒷모습은 마치 잉카문명의 위대한 역사에 묻힌 숭고한 아름다움과도 같았다.




볼리비아, 무지개 모임의 터전과 체게바라



볼리비아의 사마이파타에 체류하던 중 작가는 한달에 한두 번 초콜릿 가게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러가는 길에 히피 무리를 만난다. 산타크루스에서 히치하이킹으로 방금 도착했다던 그들은 처음 들어보는 무지개 가족을 만나러 간다했다. 이 모임은 초승달이 뜰 때부터 그믐달이 질 때까지 한달 간 숲이나 강변에서 열리는 모임으로, 그 기원은 20세기의 유명한 음악 예술 축제, 우드스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흘이 아니라 한 달 동안 이런 시간을 보내면 전 세계가 가족이 될 거라고 믿었던 무지개가족(rainbow family)의 설립자들이 가졌던 믿음. 처음 미국 콜로라도 주 딸기호수에서 시작한 그 모임은 비록 아직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난 시간동안 유럽, 아시아, 중남미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무지개 모임에 특별히 요구되는 가입조건은 있는가? 무정부주의 성향을 띤 유랑자 집회의 무지개 모임은 참여하는 순간부터 누구나 가족으로 환영받는다. 다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수칙이 있을 뿐.



노 카르네 No Carne
노 알코올 No Alcohol

노 디네로 No Dinero



고기, 술, 돈거래 금지라는 뜻을 나타내는 이 수칙들만 준수하면 누구나 가족의 일원이 된다. 돈거래는 그렇다 치더라도 고기와 술이 금지되는 모임은 아직까진 친숙하지가 않다. 대부분의 모임은 고기와 술을 포함한 음식들과 함께였고 이것이 금지된 모임이라니, 이쯤되면 무지개가족이 이 수칙을 만든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느껴진다.



R720x0.jpg
 


첫째는, 모임의 구성원 다수를 이루고 있는 히피들 대부분이 채식주의자인 것에서 비롯되었고 둘째는 그들이 천연환각제는 약으로 여기는 것에 반해 술은 마약으로 여긴다는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마약으로 여기는 환각제와 대마가 아닌, 한국의 식문화 속에서 어느 순간 빠져서는 안 될 필수품이 돼버린 술을 마약으로 여기는 히피들. 우리에게 다소 아이러니한 그들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바로 이것이다.



"술 마시고 제 아내가 자식을 패는 인간은 있어도,

대마 피고 제 아내와 자식을 패는 인간은 없거든!"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공감해버린 나를 발견하며 술이 마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무지개 가족에서 그것을 금지하는 이유에 아주 충분히 설득당하고 말았다. 가족끼리 서로를 ‘자매’나 ‘형제’라고 부르는 그들은 옷과 음식, 담요와 체온,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기도 하고,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무지개 가족의 일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멋진 스승이 되기도 했다.



2321CE4E589857F417.jpg
 

작가는 무지개모임을 학교라고 표현했다. 배움의 터전으로 빛나야 할 곳이 어느새 폭력, 따돌림, 과열돼서 언제 식을지 모르는 경쟁의 불씨, 그 불씨 속에서 때론 까만 재가 돼버리기도 하는 우정, 자신만의 특별한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아가는 방향성을 상실한 학생들로 채워지며 교육의 순수함을 찾아보기는 힘든 시대가 찾아왔다.


특히나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경쟁의식이 투철한 한국의 교육을 경험한 나는 약간의 경쟁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으면서도 무지개 모임과 같은 학교에 부러움의 눈길을 차마 거둘수가 없다. 경쟁으로부터 비롯된 불신이 아닌,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진 장소, 전 세계의 문화권에서 온 서로가 따스한 정을 모닥불의 화기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곳, 사랑과 평화라는 주제로 귀결되는 토론의 장을 펼치며 서로에 대해 더욱 알아가고 배울 수 있는 순수한 교육이 존재하는 곳. 이곳이 바로 무지개모임이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엔 무지개 모임 말고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쿠바의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체게바라를 만날 수 있는 여러 장소들이 있다. 그가 쓰던 군모를 빼닮은 ‘보이나’라는 바위를 비롯해 정부군에게 쫒기던 중 그의 부대원을 도와주다가 총에 맞아 포로가 된 장소인 추로 계곡까지. 계곡의 오솔길을 지나며 체가 총에 맞아 쓰러진 자리를 본 순간 작가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고 한다.



쿠바 혁명에 성공한 후 그대로 남았다면 고통스럽게 죽는 일은 없지 않았겠냐고,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게릴라로 돌아간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냐고.



체게바라에게 물을 수 있다면 나도 묻고 싶다. 하지만 질문의 목적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이유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는 그의 내면에 자리한 또다른 생각들을 듣기 위하여이다. 삶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두고 체게바라가 더 편안한 삶 혹은 수명이 긴 삶에 대한 갈망을 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도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에. 다만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가슴속 이상과 이것들을 저울질 했을 때, 가치의 원동력을 ‘삶’자체의 가치보다 더 높이 여겼던 게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그가 쿠바로 떠나기 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과 같다.



크기변환_11.png


어머니, 마음만 먹으면 저는 과테말라에서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곳에서 병원을 차려 알레르기를 치료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내 안에서 싸우는 두명의 나. ‘사회개혁가’와 ‘여행자’ 둘 다 배신하는 끔찍한 일이 될 겁니다.



체게바라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렸다. 일제의 식민통치 하에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서 살아내야했을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더욱 오래 지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생명보다 더욱 소중히 여겼던 것은 바로 가슴 속에 늘 빛나고 있었던 독립이라는 꿈이자 당시엔 미래세대였을 지금의 우리에게 오늘과 같은 현재를 선물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남미 여행기를 통해 볼리비아를 만났고, 체게바라와 소통했으며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렸다. 무지개 모임이 암시하듯, 세계는 이처럼 둥글게 연결돼있는 듯 하다.



 

아르헨티나, 주인과 직원, 손님을 구별할 수 없는 회전목마 여관



크기변환_1015870319725204e863349a6cd8f9af1.jpg
 


작가는 아르헨티나 여행 중 카루셀이라는 여관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그에게 이곳은 과장되지 않은 웃음과 편한 사람들, 정겨운 아침 저녁인사 속의 따스함이 묻어나는 ‘내 집’ 같았던 장소였다. 남아메리카 여행을 떠나기 전 물건을 잃어버리더라도 너무 여의치 말자고 결심하고 온 작가였지만 실제로 배낭 속 깊이 넣어둔 3천페소(24만원)의 돈을 도둑 맞은 후 덤덤하기란 쉽지 않았다.


자신으로 인해 여관의 평화를 깨트리고 싶지 않았던 작가가 친구 프랑코의 설득에 못이겨 카루셀의 주인인 막시와 소피에게 분실 사건을 털어놓았다. 가지고 있는 돈이라곤 밀린 숙박비를 충당할 만큼밖에 되지 않았던 작가는 그들에게 우선 밀린 숙박비를 먼저 내겠다고 말했고 막시와 소피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돈이 사라진 건 작가의 책임도 있지만 여관 주인인 자신들의 책임도 있다고. 그래서 숙박비 걱정은 말고 며칠이든 몇 달이든 너가 지내고 싶은 만큼 같이 지내자. 잃어버린 돈에 대한 상실과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초조함은 카루셀의 따스함으로 완전히 상쇄되었다.



크기변환_100504174_20190502.jpg
 


작가의 여행기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인에게 ‘직업’이나 ‘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종사하는 일’ 대신 ‘자신이 마냥 좋아서 하는 일’ 을 말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막시의 친구인 니콜라스는 직업이 시인이라고 했지만 알고보니 동네의 복덕방 사장이었고, 혹은 레스토랑에서 주문을 받고 있는 카를로스라는 친구가 자신의 직업이 화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며 지금까진 별 관심이 없었던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정확히는 그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이 좋아졌다. 직업의 정의를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닌 자신의 열정과 애정이 담긴 일로 해석하는 그들의 사고는 아주 인상적이기도, 아름답기도 했다.


남미히피로드.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남미의 명소들과 그것에 관한 여행기로 가득한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은 몰랐던 남미의 매력과 어떤 여행지보다도 아름다운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며 언젠가 남미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다는 하나의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



크기변환_11547105407589_editor_image.jpg
 

[이소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