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직 베토벤! :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글 입력 2019.06.0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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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오직 베토벤!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글. 김해서



조명, 라이브 연기, 음악, 의상, 미술. 화려한 볼거리와 내공을 갖춘 무대 공연을 볼 때면 오감이 깨어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공연을 관람한다는 것은 제작자와 배우들의 의도를 실시간으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감사하고도 귀한 기회다. 관객은 문학이나 회화 작품을 접할 때처럼 온 정신과 상식을 동원하여 공부하듯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객석에 편히 앉아 앞을 지켜만 봐도 눈과 귀로 쏙쏙 감동이 꽂히니 말이다.

무대 공연의 '현장감'은 이처럼 의심할 여지 없이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 현장감 때문에 우리는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관객은 '거슬리는 게' 잘 보일 수밖에 없는 제3자들이다. 스토리든 연기든 음악이나 조명과 같은 부분이든, 몰입을 방해하는 연출이 한 번 감지되는 순간 불편해지는 건 순식간. '왜?'라는 의문을 품어도 극은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 독서처럼 일단 덮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피날레 때까지 잠자코 앉아 있어야 하고, 그 당혹감은 대개 실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양가적인 감정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카타르시스와 지루함이 촌각을 다투며 엎치락 뒤치락거려 정신이 얼얼했다. 분명 난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렸는데 눈물을 훔치면서 찜찜해 했다. 막이 내리고 배우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쳤는데 다시 앉으면서는 갸우뚱거렸다.



섬세한 연출

소극장 뮤지컬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조명과 배우들의 동선 그리고 음향 시스템은 나무랄 점이 없었던 것 같다.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수를 놓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특히, 조명 연출은 젊은 청년 베토벤이 깨달음을 얻거나 합창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아주 상징적인 장면을 묘사할 때 그 존재감이 대단했다. 빛으로 드라마틱하게 빚어낸 환희와 절규의 장면 앞에서 덩달아 숨을 죽이고 탄식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희미해지는 청력을 표현하기 위해 음향적인 효과를 준 부분에서도 세심함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저력이라고 한다면, 역시 '배우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뮤지컬을 찾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지 않을까. 다소 과장된 톤의 가사와 연기지만 뮤지컬 특유의 화려하고 시원한 노래가 주는 쾌감이 크다.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배우들 역시 누구 하나 가창력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그들끼리의 케미가 좋은 편이었다. 특히, 베토벤 역 김주호 님과 마리 역 김려원 님의 완급 조절은 너무 유려해서 목소리가 튀어나올 때마다 매번 소름이 돋았다. 베토벤의 곡들을 절묘하게 변주하는 피아니스트 강수영 님도, 관객이 작곡가로서의 베토벤 삶에 젖어 들도록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베토벤'을 '루드윅'이라는 신선하고 친근한 캐릭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열심히 공을 들였다. 문제는 그 외의 인물들이었다.



아쉬운 서브들

'베토벤'은 지극히 독선적이고 괴짜다. 그래서 외로운 캐릭터다. 그러나 그의 독선은 '너무 열정적이라서'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하다.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혹은 자신의 운명을 너무 사랑해서 혹은 조카 카를을 너무 사랑해서. 허튼 실수는 절대 용납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나약해지지 않기 위해 고집불통을 선택한다. 관객은 그러한 베토벤을 미워하면서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그는 잘 빚어진 입체적인 캐릭터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인물, '마리'를 만들 때엔 왜 그만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나 싶다. 마리는 이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청력을 잃고서 절망에 빠진 젊은 베토벤을 각성시키고, 조카 카를에 대한 베토벤의 훈육 방식을 지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여성으로서는 절대 꿈꿀 수 없던 영역인 '건축'에 대한 포부가 있는 당찬 캐릭터다. 그런데 이토록 혁명적인 캐릭터가 외치는 대사가 밋밋하기 그지없다면? 얼마나 낭비인가.

그녀의 노래와 꿈은 베토벤을 타이르고, 가르치고, 토닥이고, 북돋는 데에나 쓰이고 만다. 그래서 대사엔 온통 교조적이고 관념적인 얘기들 투성이다. 김려원 님의 목소리가 워낙 훌륭하고 곡조가 아름다워서 망정이지 사실 노래하는 장면을 빼고 나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인물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그녀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마리가 등장할 때마다 지루해지는 걸 참고 견뎌야 했다.

평면적인 캐릭터로 치자면 조카 '카를'도 뒤지지 않는다. 시종일관 '난 피아노가 싫고 재능도 없는데 억지로 시키다니, 삼촌 너무해!'라는 태도로 일관할 뿐이라,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 때조차 나는 '카를'이 한심하고 가엾기만 할 뿐, 그 사건이 베토벤의 운명을 뒤흔들 만큼의 비극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오직 베토벤!

촘촘하고 빈틈 없는 서사를 갖춘 작품은 애초에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그래도 준수한 편이지 않을까. 매력적인 주인공, 시원시원한 멜로디와 잘 가꿔진 무대. 작년 겨울에 이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무대로 복귀한 점을 보아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으니 충분히 주변에 추천해 볼만한 작품인 것 같다.

어쨌든 베토벤 한 명만큼은 잘 지켜냈다. 서브 캐릭터들에 대한 해석이 아쉬웠음에도 내가 눈물을 찔끔거릴 수 있었던 건, 인간 베토벤에 대한 제작진의 애정이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외로운 어느 삶을 다시 더듬고 진득하게 그려보겠다는 마음.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다. 베토벤에 대한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 분명 그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머쥐었는지 몰라도 개인적인 삶엔 굴곡이 많았던 베토벤.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를 보고 나서 다시 교향곡을 하나하나 찾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분명 조금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천재의 손에서 태어난 완벽한 음악은, 그 지난한 삶 속에서 어렵게 피어난 기적의 꽃송이와 같단 걸. 예술가에게도 예술 너머의 삶이 있단 걸. 너무 당연해서 잊지 쉽지만, 진부한 만큼 중요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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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 열정의 베토벤을 만나다 -


일자 : 2019.04.09 ~ 06.30

시간
화, 수, 목, 금 20시
토요일 15, 19시
일요일 및 공휴일 14, 18시

장소 : 드림아트센터 1관

티켓가격
R석 66,000원
S석 44,000원

기획/제작
과수원뮤지컬컴퍼니

관람연령
만 10세이상

공연시간
110분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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