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미지의 운명을 무색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들 [시각예술]

작가 Ren Hang의 사진
글 입력 2019.05.1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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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은 총 몇 장의 사진을 찍었을까.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 셀피부터 오늘 먹은 음식 사진 등 최소 1장 이상은 찍었을 것이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이제 새로 출시될 아이폰에는 카메라만 5개가 내장되어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이제 사진이란, 크게는 이미지 자체란 너무나도 쉽게 탄생하고 복제되면서 소장마저 쉬워졌다. 어쩌면 소장이 안 되는 사진은 설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세계적인 흐름 가운데에서도 한국이 유튜브 시청 시간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영상물의 영향까지 가세해 이제 정적인 사진은 더욱 존재감을 잃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항(Ren Hang)의 사진을 보면, 사진이란 포맷의 포지셔닝이나 이미지의 운명 따위에서 벗어나 사진의 존재 이유를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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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 Hang




노출된 신체와 강한 색채 대비



렌항은 1987년생인 중국의 사진작가로, 노출된 신체와 강한 색채 대비를 자아내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사진은 친절히 설명적인 영상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context에 대해 상상을 하도록 만든다. 이 작가가 신체를 찍고 소품을 배치하기 전의 상황, 혹은 그 전의 기획단계부터 어떤 생각과 감성에 의해 사진을 촬영하게 되었는지 등등. 그리고 그의 사진 자체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 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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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 Hang



쉽게 소비되는 현재의 사진들처럼 보이는 그대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채 대비와 성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진 속 객체 너머에는 네러티브와 의미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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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 Hang



단순히 적나라한 신체를 묘사한 것에 대해 소프트 코어 포르노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진 속 신체의 일부들은 모델들의 무표정과 더해져, 성적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노출된 대상이기보다는 그 자체로 존재해 왔고, 나아가 그 역할마저도 퇴색되어버린 것 같은 무생물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그가 종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히는 것처럼, 본인의 작업이 철저히 계산된 연출과 의미의 점철 속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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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 Hang




이미지 너머의 의미



하지만, 성별이 모호하게 연출된 이미지들, 이를테면 벌거벗은 몸이 겹쳐져 있고, 신체의 색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며, 실크 스타킹을 착용하고 립스틱을 바른 사진 속 남자모델을 바라보다 보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성적 경계를 허물도록 만든다.


실제로도 그는 중국 사회에서 성 정체성으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작업을 했다. 그래서 성적 자유의지와 누드 자체로, 그의 작품에 대해 당국의 압박은 매우 심했으며 전시를 통제하거나 그의 사진이 훼손되고 압수된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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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 Hang


‘우리는 누드로 태어났다. 나는 그저 자연 상태로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종종 전시를 통제하는 것은 물론 그의 사진이 훼손되거나 압수되는 일이 드문 것이 아니었다. 또 그의 웹사이트마저 오프라인으로 전환되고 풀리기를 반복했다. 그의 웹사이트는 그의 사진을 비롯해 그가 직접 쓴 시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에는 성적 자유와 욕망, 그리고 우울이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은 철저히 계획 속에 진행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를 쓰며 했을 법한 생각들과 그 모든 감정이 응축되어있는 것 같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작가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가 늘 하는 생각들을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기에 즉흥 속에서도 이런 사진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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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 Hang 작가



자유로운 찰나의 감성



또, 그의 사진엔 실제 그가 셔터를 누를 때의 억압과 통제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움이 담겨있다.


그의 사진이 자유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건 사진 속 모델이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모델들의 포즈는 누드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힘을 빼서 유연하기도 하고, 쉽게 할 수 없는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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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 Hang


이는 사진을 찍는 대상과 모델 간의 신뢰감이 형성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결과물인데, 실제로 렌항의 사진 속 모델들은 그의 친구들이 대부분이거나, 인터넷으로 지원한 그의 팬들이다. 그래서 흔히 떠올리는 모델들의 프로 느낌이 없다. 아마추어만이 낼 수 있는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보통 낯선 사람들이 나를 긴장시키기 때문에 친구들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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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 Hang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사진을 찍게 된 이유인데, 원래 커뮤니케이션 (광고계열)과 마케팅을 공부했고 심지어 정식 예술 학교에서 공부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학교 공부가 지루했기 때문에 친구들을 찍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오히려 전례 없는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자유로움과 신선함은 그의 사진이 암스테르담, 스톡홀름 등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전시를 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고, 작품 이외에 패션계에서도 협업을 진행하며 더욱 명성을 얻었다. 결국 그의 작품이 트렌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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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 Hang



사진만이 할 수 있는 것



렌항의 작업들엔 영상과 쉽게 소비되는 사진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사진의 정적인 특성을 제대로 담아냈다. 찰나를 포착해 모든 감각과 의미를 응축하는 것. 그래서 사진이 변화하는 본래의 역할과 영상물의 범람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는 방법은, 사진만이 할 수 있는 걸 가장 잘 해내는 게 아닐까.


친절한 영상의 세계에서 조금 불친절한 사진이 매력적인 건 그래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본다.


어쨌든 렌 항은 몹시 어려운 것을 해냈다. 그가 하는 것은 자연스레 주류가 되며 소장의 가치를 더하면서도, 그 안에서도 자기만의 색을 내고, 그에 더해 본인만의 생각과 추구하는 바를 분명히 담아낸다는 것.


2017년 2월, 30살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렌항이 살아있었다면 더욱 어려운 것을 해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남기고 간 사진들이 더욱 생각나는지도 모른다.



출처-kaltblut-magazine.jpg
이미지 출처 Kaltbult magazine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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