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잡힐 듯한 꿈, 선택하는 삶 [공연예술]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글 입력 2019.05.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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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생각만 해도 벅차오르고 비판할 점이 있다 하여도 못내 좋은 점만 눈에 밟히는 그런 작품이 있을 텐데 나의 경우에는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그렇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무대 위 벤치에 놓인 라디오에서 들리던 오래된 음악소리, 눈앞을 가득 메우며 천천히 변화하던 하늘의 빛깔들, 부드럽고 고소한 버터 냄새를 떠올리면 극장에 앉아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이야기를 듣던 그때로 간절히 돌아가고 싶어진다.

 

1992년 출간된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1995년 영화로 제작되었고, 뮤지컬로는 2014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초연, 2018년 재연을 공연하였는데, 아직도 두 해 전, 처음 이 공연을 본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공연은 내내 서정적이고 감미로웠고, 공연장을 걸어 나오며 멍하니 정말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뒤로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울었다.


기다리던 재연이 올라오며 바뀐 부분도 있었지만 바뀐 것도 바뀌기 전의 것도 마냥 좋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어쩌면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작품의 좋았던 점만을 한가득 늘어놓는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다. 이 작품은 2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인생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작품인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만 더 커질 거라고 거의 확신을 하는 탓이다.

 

*

 

이야기의 구조는 복잡하지 않다. 1965년 아들과 딸을 둔 아이오와의 평범한 주부 프란체스카는 가족들이 딸(캐롤린)의 송아지를 박람회에 출품하러 집을 비운 나흘간 아이오와에 로즈먼 다리를 찍기 위해 방문한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와 사랑에 빠진다. 나흘 뒤 가족들이 돌아오고, 프란체스카는 가족들의 곁에 남기를 선택하며 둘은 그 뒤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한다.


줄거리만 보자면 언뜻 평범한 불륜 로맨스로 보이겠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프란체스카가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여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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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미국의 평범한 중년의 주부인 프란체스카가 주인공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특별하다.


프란체스카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프란체스카가 그간 일구어 온 삶이 가치가 없어 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현재는 그녀가 바라던 미래가 아니며 전쟁 이후 자신의 고향 땅으로부터 도피하며 시작되었고, 그녀는 자신의 꿈과 열정을 잊은 채 살고 있다. 영화의 경우에는 교사로 일했었으나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남편의 반대로 그만둔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 프란체스카 앞에 나타난 로버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자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자기 꿈도 사라지고,

이름도 사라지고."



극 중 모두가 프란체스카를 ‘여보’, ‘엄마’, ‘프란’ 이라고 부르는 와중 유일하게 그녀의 이름 ‘프란체스카’ 전부를 명확히 불러주는 인물이 로버트뿐인 것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로버트는 계속해서 프란체스카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게 해준다. 그가 프란체스카에게 그녀의 고향인 나폴리를 찍은 사진을 주었을 때 그녀는 울며 자신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로버트에게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어떻게 해서 나폴리에서 미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곡 ‘잡힐듯한 꿈 (Almost dream)’은 프란체스카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동시에 가장 많이 울게 되는 곡이다.

   




소녀의 고향은 나폴리 전쟁 나기 전

그 시절 노을진 바다를 그리던

소녀가 있었죠


곱고 예쁜 마을 아가씨

다들 바라는게 많죠

얌전하고 착한 딸로 말 잘듣는 애인으로

살면 그만이라 하죠.

다른 선택은 없어.


(...)


나는 꿈꿨어 두눈을 감고 자유로운 곳

종이와 연필 푹신한 의자 햇살 가득한

여길 떠나 벗어나는 그런 꿈


  

마침내 극의 후반부에 그녀는 남편에게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자신이 요리나 빨래를 하려고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심정을 털어놓게 된다. 비록 그 뒤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 대화는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지만, 그 말을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프란체스카와 그 말을 꺼낸 이후의 프란체스카는 분명 다른 사람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로버트와의 만남은 사랑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오롯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장면 보다도 프란체스카가 남편 리처드에게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이 가장 긴장되면서도 또한 중요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그리고 뮤지컬에서도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와 떠나는 대신 가족들 곁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생의 끝자락에서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지 가정해보지만 사실 둘 중 어느 쪽이 더 가치있는 삶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프란체스카가 그 갈림길에서 스스로 선택을 했기에 그 선택이 더 가치 있어졌다는 점이다. 영화 속의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만났었기 때문에 도리어 자신이 아이오와 농촌에서 계속해서 머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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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부둣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던 소녀 프란체스카는 아이들이 독립하고 남편이 죽은 뒤에 다시 그림을 그린다. 아름다운 옥수수밭과 지붕이 있는 다리 너머에서 젊은 시절의 로버트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하늘과 거꾸로 늘어선 옥수수들은 모두 황금빛으로 빛이 난다. 그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이 그렇게 사진처럼 담긴다.


공연이 끝난 뒤 마지막으로 무대를 채우는 것이 로버트의 사진이 아닌 프란체스카의 그림이라는 점마저도 뭉클한 감동으로 남는다. 뮤지컬<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프란체스카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게는 그렇다.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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