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원작을 삼키는 거장의 권위,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 [도서]

글 입력 2019.05.0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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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라도, <악의 꽃>이라는 시집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프랑스 근대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대표작 <악의 꽃>은 1857년 제 1판이 출간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전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작품이다. 약 160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번역본들이 원작 <악의 꽃>을 뒤따랐고, 수많은 출판사들이 제각기 다른 편집과 구성으로 <악의 꽃>을 펴내왔다. 현재 세상에 내놓아진 많은 <악의 꽃>들 중, 본 글은 2018년도에 한국에서 출간되어 꽤나 큰 인기를 누린, 문예출판사의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은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가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수록된 시들을 직접 선별하여, 선별된 시 각각에 걸맞게 그린 일러스트와 함께 엮은 책이다.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은 출간 이후 제법 높은 판매 부수를 기록하면서 원작 <악의 꽃>의 이름에 명성을 더했다.


출간 당시, <이카루스>나 <왕의 슬픔>과 같은 작품으로 일반 대중에게도 유명한 대가(大家) 앙리 마티스가 또 한 명의 거장 샤를 보들레르의 시를 향유하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는 점은 독자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특히 해당 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문학계와 미술계, 서로 다른 두 예술 영역의 시선 교환은 독자에게 강렬한 매력 요소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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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해당 책을 통해 앙리 마티스라는 거장의 권위가 원시(原詩)의 문학성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이 마티스가 엮은 일종의 시선집이라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앙리 마티스라는 예술가의 권위는 독자의 무의식과 작품의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더 현실적으로는 책의 구입 여부를 결정할 여지가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이 앙리 마티스의 그림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주목을 받고, 그의 예술 세계가 2-30대 층의 현대적 감성과 맞아떨어질 때에는 더더욱 그러한 영향력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의 판촉 방안에도 반영된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앙리 마티스가 직접 그려 책에 삽입한 일러스트들이 독자에게 독서 방향을 지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러스트는 시 텍스트를 읽기 전 독자의 눈에 포착되어, 시 자체보다 먼저 독자에게 일정한 정서를 전달한다. 그림은 시각 예술이라, 글보다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시 텍스트를 일러스트의 정서에 결부시켜 해석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가 시와 독자의 상호 소통에 개입하여 시 자체가 본래 환기하는 심상을 왜곡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시 텍스트만 존재하는 <악의 꽃>을 읽을 때와, 일러스트가 삽입된 시집을 읽을 때 독자가 생성하는 의미망은 분명 상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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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티스의 일러스트가 함축하는 일관된 주제를 고려할 때, 일러스트의 이러한 의미 작용 방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마티스의 일러스트는 주로, 작가에게 포착된 관능적 여성의 모습을 소재로 한다. 이는 원작 <악의 꽃>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이미지이지만, 마티스의 시선집이 위의 주제에서 벗어난 시에는 배타적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령 <만물조응Correspondences>등의 작품들은 해당 책에 수록되어 있기는 하나, 이는 마티스가 아닌 역자가 보들레르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집의 끝머리에 사후적으로 추가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책에 적혀있다.) <만물조응> 등의 시들은 보들레르의 시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마티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는 마티스라는 거장의 권위가 <악의 꽃>이라는 한 시집의 문학성에 개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보들레르를 해석하는 마티스 개인의 시선은 그의 일러스트를 통해 <악의 꽃>이라는 시집과, 보들레르라는 시인 모두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예술가의 눈에 포착된 관능이 사회적 여성성 및 그의 내면적 쾌락, 욕망과 뒤섞인 강렬한 정서의 혼합체 말이다.


이는 마티스의 삽화에 그려진 여성들은 화자의 시선 아래에 있을 때, 언제나 고양이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는 점과 연관이 깊다. 삽화마다 여성의 외형은 조금씩 다르지만, 곡선으로 올라간 입매만은 다르지 않다. 마티스의 일러스트에서 여성은 완벽히 대상화되며, 이는 시선의 권력, 그리고 마티스라는 거장의 권력을 절대적으로 표상한다. 그리고 언급한 바와 같이, 그러한 일러스트들은 독자로 하여금 보들레르라는 시인에게 관능적 여성 및 추상화, 대상화된 여성을 그린 시인이라는 배타적 이미지를 부여하게 만든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다른 판본의 <악의 꽃>을 읽어보면,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을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보들레르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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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이 보들레르의 작품 세계를 왜곡하려는 의도 하에 출간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책 속에서 단행되는 여성의 대상화에 대한 책임을 마티스에게만 물 수 없다. 보들레르의 시 자체에도 상당 부분 그러한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책은 두 예술가의 세계관이 맞닿는 지점을 실재화, 시각화한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마티스라는 대가의 일러스트와, 일러스트에 표상된 그의 권위가 위의 주제를 강화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독자에게 독서 방향을 지시하는 이 책은 모종의 사회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악의 꽃>의 명작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하고 정전(正傳)이라는 이름 하에 소수자 혐오적 시선을 강화 및 재생산한다면, 이는 분명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거장의 시선은 그 자체로 권력을 갖는다. 그렇기에 거장에 의한 텍스트의 재해석은 신중함을 전제해야 할 것이며, 독자는 책의 생산과 수용 과정에 내재된 권력 관계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독자는 거장의 권위에서 벗어나 작품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고, 사회적 권위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정전 개념이 신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주체적 독자로서, 우리가 향유하는 문학이 소수자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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