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리의 만찬',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들린다 [TV]

세 여성 MC가 찾아낸 목소리
글 입력 2019.05.0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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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만찬3.JPG
 


세 명의 여성 MC가 나타났다


국가인권회(이하 인권위)가 발표한 「미디어에 의한 성차별 모니터링(2017)」에 따르면, 7개 채널(KBS1, SBS, MBC, JTBC, 채널A, TV조선, MBN) 저녁종합뉴스 중 여성 앵커는 10명중 8명이 30대 이하(80%)이고, 남성앵커는 10명중 9명이 40대 이상(87.7%)이다. 남성앵커는 주로 정치·국방 뉴스와 같은 무거운 아이템을 소개하는 반면, 여성앵커는 경제· 사회· 생활정보· 날씨 뉴스와 같은 소프트한 아이템을 소개한다.

시사토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2017년 시사토크 프로그램 38개 중, 36개 프로그램을 남성이 진행했고, 4개 프로그램에서만 여성이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은 90% 대 10%였는데, 이는 진행자 뿐만이 아니라 출연하는 사람 또한 비슷한 비율을 유지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난 설날즈음에 어이가 없어서 웃었던 이 장면이 우리의 현실이었던 셈이다.

참고로 오락프로그램 또한 시사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남성출연자 수가 여성보다 더 많고, 나이도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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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이없는 숫자의 비율이 맞춰지는 순간은 그나마 젠더관련 이슈가 나왔을 때다. EBS '까칠남녀'는 남성과 여성 출연자의 성비를 맞추며, 젠더 이슈를 좀 더 균형감 있게 보려고 애썼다. 아쉽게도 차별에 반대하는 발언권을 쥐어 준다는 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 지를 알려줬지만 말이다.

남성만 나오거나 '중립'이라는 환상으로 기존 권력을 공고히 하는 시사 프로그램이 계속 나올 무렵, 공정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 프로그램이 나타났다. 박상욱 피디와 이승문 피디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형식과 함께 내용의 신선함을 불러왔다.


"(중략) 개인적으로, 미디어에서 소외되는 목소리에 집중하는 게 ‘공영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승문 PD)

“소위 ‘각’이 서지 않은 채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 이를 테면 명백하게 틀린 말인데도 중립을 지켜야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키워주는 것. 그건 몸을 사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우선 만날 분들은 자기 목소리를 전할 방법이 없던 사람들이다. 무조건 '중심의 한가운데'에 서는 게 아닌, 기울어진 무게중심을 옮길 수 있는 생각을 던지고 싶다." (박상욱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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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중심으로 되돌아가려면, 기울어진 쪽을 찾아내서 알려야 한다. 기울어진 쪽은 보통 질문만을 받는다. 정해진 틀 안에서만 답한다. '거리의 만찬'은 이를 과감히 깬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일을, 전문가들만을 통해서 혹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해석되는 것을 버린다. 직접 찾아가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고, 당신의 마음을 묻는다. 따라서 시청자는 수도 없이 보았던 뉴스임에도 불구하고, '팩트체크'라는 말로 차갑게 해석되던 사건을 생생한 목소리로 느끼게 된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황유미씨 아버지는, 당신의 목소리로 언론에 고했다. 고 황유미씨가 사망할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삼성은 끊임없이 회유만 했다. 투쟁해서라도 당신의 자식이 죽은 이유를 밝혀내고자 했지만, 언론은 피해자 가족을 '돈 독이 오른 사람'으로 묘사했다.

삼성에게 돈을 뜯어 내려 합의를 하지 않는다는 악질적인 말이 흘린 언론을 향해, 아버지는 언론의 존재목적을 환기했다. 사무친 원한에 말이 날 설 법한데도, 10년이 지나서야 말한다는 것에 복잡한 감정을 느낄 법한데도, 아버지는 공적인 가치를 힘있게 전달했다. 어떤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들려주지 않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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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토론형식으로만 다루던 '낙태죄' 또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논의되었다. 30년 전에 낙태를 경험한 중년 여성, 20살 즈음에 낙태를 경험한 여성 등이 나왔다. 인구조절정책으로 낙태가 자연스럽던 시절과 국가권력을 통해 낙태를 저지하는 것 사이에 놓인 기만이 드러났다.

산부인과 의사가 밝힌 법의 허구성, 낙태죄라는 낙인으로 고통받거나 음지화된 정보로 낙태를 한 경험들이 쏟아져 나왔다. 올바르고 제 때 이루어지는 피임교육과, 여성이 피임에 주도권을 가져야 낙태를 줄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낙태죄'를 논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함을 환기시켰다.

잡지 「빅이슈」를 파는 홈리스 판매원의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주로 장애나 질병으로 홈리스가 되지만, 이를 보호해줄 복지 시스템은 미비하다. 빚더미에 앉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누구 하나 손 잡아 줄 끈이 필요하지만, 각자도생의 사회에선 쉽지 않다. 「빅이슈」는 홈리스의 자립을 도우는 잡지로, 판매 수익금이 50%가 판매원에게 돌아간다.

판매원은 잡지 판매 수익을 통해 저축을 해 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취업 준비도 하고 「빅이슈」 소비자가 될 생각도 한다. 삶에 희망이 생긴다. 가난하면 게으를 것이라는 편견이 얼마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사회공동체가 서로를 도우면 선순환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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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간 권력에 배제당한 사람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날 것은 커녕, 자신의 의견조차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저널리즘이다. 수 백건씩 쏟아지는 기사 속에, 소수자의 관점을 견지한 채 올라오는 글이 얼마나 될까. 직접 그들이 쓴 글을 읽거나 다큐로 보지 않는 이상, 시사프로그램에선 이와 같은 태도와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거리의 만찬'이 시도한 방식은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감히 '공영방송'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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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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