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만 가능한 외침에 대해, 7번 국도 [공연]

아직도 거기 있는 자들이 말하는 소리
글 입력 2019.04.2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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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보면 내용이 파악되는 공연, 보다 보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만화와 같이 가만히 있으면 그냥 알게 되는 것과는 다소 다른 공연을 보여주는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이번에 보게 된 공연 <7번 국도>.




7번 국도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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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들어가면 처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뒤쪽엔 부서진 것처럼 보이는 자동차와 그 파편들, 그리고 목공 도구들이 공연장을 규칙적인 거리를 유지한 채 널브러져 있다. 매우 황량한 분위기였다. 마치 자동차 충돌사고로 자동차 내부에 있던 모든 것들이 무대 밖으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그러나 튀어나온 물체들은 가로와 세로가 일정한 길이로 그리드 형태로 배열된 기이한 형태다.


등장인물들은 도구와 도구가 만드는 명확하지 않은 정사각형 내부에 서 있게 된다. 어떤 규칙에 따라서 그들은 움직인다. 기계처럼 걸어 다니고 서로를 바라보거나 관객을 바라본다. 그들은 가까이 있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있다. 한 사람만 앞에 있을 때도 있고, 둘 다 앞으로 나와 있기도 한다. 한마디로 굉장히 난해한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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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들의 대화



7번 국도는 죽은 군인이 많은 도로다. 7번 국도 위를 달리던 택시 기사의 택시에 군인이 탄다. 둘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관객만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대학을 어디를 다니느냐, 어릴 때 공부를 잘 했다는 것과 같은 그런 이야기. 상대방을 알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일지, 아니면 그저 말을 하고 싶은데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모르니 경계심을 풀게 하려고 하는 이야기인지 모를 그런 이야기. 그런 이야기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군인은 무심하게도 초등학교 동창이 공장에서 죽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동창은 택시기사의 딸이었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가끔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아주 큰 고정관념이고, 누군가에겐 인생을 건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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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두 사람의 대화 방식


두 사람이 말하는 방식은 정말 이상하다. 공연이라고 하면 예상하는 것 같은 두 사람이 극적인 과정을 통해서 갈등을 일으키고 싸우고, 연기하는 방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관객을 보면서 공허하게 외친다. 마치 사람들에게 더 잘 들으라는 듯이 아주 분명하고 또렷하게 소리 지르다시피 말을 한다.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채, 목소리의 볼륨만 높여서 말하는 그 울림에는 낯선 사람들의 대화라는 것이 담겨있다. 배경음악도 없이 아주 조용한 무대에, 공허한 그들의 외침만이 남아서 더 공허해진다.


만약 서울로 대학을 갔다면 죽지 않았을까? 돈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공부를 더 시켜줄 수 있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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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황 다른 선택


시위하러 가려는 택시기사를 말리는 남편. 딸이 병원에서 죽어갈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는 남편의 말에 택시 기사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러 갔다고 말한다.


남편은 사회가 어떻든, 눈앞에 놓인 딸을 하루라도 더 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택시기사는 딸을 그렇게 만든 사회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고,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뭐라도 하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만약 딸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삶은 그렇게 분열되지 않았을까? 또는, 사고를 당한 뒤 택시기사와 남편이 같은 방식으로 사회에 저항했다면, 그들은 각자의 아픔만을 안고 살지는 않았을까. 왜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을까.


처음부터 안 될 거라는 것을 알고 말리는 것과, 그래도 시도해보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결국 똑같아지는 걸까. 아니면 그래도 조금은 달라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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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겨지는 것



사고로 죽은 딸과 같은 공장에 다니던 용선. 그녀도 1인 시위에 참여했었지만, 자신의 삶을 위해 중간에 포기한다. 그러고 택시기사에게 그만두라고 조언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걸 보며 자기만 혼자 남겨지는 건 아닐까 두려워했다는 그 말이 너무나 솔직했다. 그래서 더욱 그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다 같이하게 되면 의미가 있지만, 자기 혼자 남겨지면 결국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던져지는 말, "아직도".


사회는 참 모질게도 아픔을 승화시킬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지도 않고 다시 일어서서 가라고 한다.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해주지 않고서는 "아직도" 거기 있었느냐고 말한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만류 끝에 택시 기사도 1인 시위를 그만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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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죽음


택시기사의 택시에 탔던 군인이 군 내에서 폭행으로 결국 숨을 거두게 되고, 그의 여자친구가 매일같이 군대 앞에 서서 1인 시위를 한다. 택시기사는 그녀를 말리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 과정을 연극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나는 딸이라서 그렇게 했다고, 가족도 아니고 남자친구인데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는 택시기사에게 군인의 여자친구는 화를 낸다. 아픔을 안다고 동질감을 느끼는 택시기사마저도,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좋고, 더 행복한 것만 누려도 좋을 나이, 좋을 상황, 모든 걸 잊어버리고 그냥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도 될 사람이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 서서 항의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정말로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스스로 위선을 깨달을 수 있어 씁쓸해진다.

군인의 여자친구는 후회했다. 죽은 군인이 아무 말도 못 할 때 그렇게 말하면 안 됐었다고. 제대하기까지 금방이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서울 오면 같이 도서관도 다니고, 같이 술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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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군인이 죽은 사람이었다면

처음에는 아무런 음악도 없는 공허한 무대가, 시간이 지날수록 잡음이 끼어든다. 신나고 긍정적인 분위기에서는 유쾌한 음악이 흐르기도 하고, 바닷가가 무대에서는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유독 군인이 등장할 때만 아무런 소리도 없이 정적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7번 국도에서 택시를 탔던 군인이 처음부터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는 추측을 해봤다. 연극에서는 7번 국도에 죽은 군인이 택시에 많이 탄다는 전제가 깔렸기도 하다. 택시 기사가 1인 시위를 그만둘 때쯤, 군 내에서 폭행 사건으로 군인이 죽은 사건이 있었고 그 부당함을 알리려는 군인의 여자친구가 시위하는 모습을 봤다면 아마 말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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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서울로 대학을 갔다면 죽지 않았을까? 돈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공부를 더 시켜줄 수 있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군인은 공부도 그럭저럭 잘했고, 서울에서 대학도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을 당했다. 아무 대답 없는 그 물음에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 그들의 딸이 서울로 대학을 갔었더라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꼭 그들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도 피해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사실 여전히 이런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게 조금 두렵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의 편을 들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다. 사회 비판 극에 대해서도 공연이 얼마나 완성도가 있고, 공연의 짜임새가 어떻고에 대해 말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좀 더 본질적인 것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한 사람의 억울함은 아니지만, 한 사람만의 억울함이 되어버린 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데, 발전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그리고 언제나 희생당하는 소수로 보이는 다수. 그리고 소수를 희생시키는 다수. 이제는 내가 속한 구역은 어느 쪽인가를 따지는 게 의미 없을 만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 사회. 이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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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프로그램 -


일자 : 2019.04.17 ~ 04.28

시간
화, 수, 목, 금 19시 30분
토, 일 15시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서울특별시

주관
서울문화재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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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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