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스승은 어디까지 자비로울 수 있는가 - 연극 '단편소설집'

그리고, 예술은 어디까지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글 입력 2019.04.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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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지나치게 수직적이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친구처럼 수평적인 관계로 남아서도 안 되는 애매한 사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특별한 관계성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차이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이가 바로 사제관계다.

사실 이 모든 성질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내 삶에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선생님들은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이론적 지식뿐 아니라 삶의 태도, 윤리, 지혜까지 모든 분야에서 길잡이가 되어 주셨던 것 같다. 선생님의 언어를 어디까지 삶의 규율로 삼아야 하는지만 빼고.

연극 ‘단편소설집’은 스승과 제자로 이루어진 여성 2인극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어디까지 자비로워야 하는지, 제자는 어디까지 스승의 몫을 가져가도 되는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작품은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을 조명한다.

스승을 넘어서는 제자 리사와 제자를 붙잡는 스승 루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사제관계를 넘어 세대 사이의 갈등으로까지 확장된다. 젊은 세대의 제자와 기성세대의 스승이 벌이는 첨예한 갈등 속에서 어떤 가치에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는 극이 바로 ‘단편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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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윤리, 그 해묵은 논쟁


리사와 루스의 갈등은 예술로부터 비롯된다. 존경받는 단편소설 작가이자 문예창작과 교수인 루스는 자신을 존경하던 대학원생 리사가 발표한 장편소설을 보고 분노한다. 그 소설의 소재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즉 루스였던 것이다.

예술은 어디까지 윤리적이어야 하는가를 중심에 두고 두 인물의 갈등은 점점 거세진다. 예술이 과연 타인의 생을 침범해도 되는가, 된다면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는가,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예술과 윤리에서 파생한 수많은 질문을 가운데 두고 대립하는 두 인물을 보며 관객들도 예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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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윤리에 대한 논쟁은 늘 뜨겁게 이어졌다. 윤리 위에 예술이 있다고 주장하며 문학의 가치는 오롯이 그 작품 속 담긴 작가의 정신과 창조성에 기인한다고 이야기하던 작가도 있었다. 이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에서도 예술가의 윤리성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만큼 예술과 윤리성 사이의 논쟁은 끝없이 이어져 왔고, 시대가 흐르며 사람들의 생각도 조금씩 변했다. 아마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술이 윤리 위에 위치한다는 논리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래도 도덕이 먼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예술과 윤리 사이에서 승자는 윤리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정도에 관해서는, 사실 어렵다. 예술이 창조되는 과정, 그리고 작품으로 대표되는 예술의 결과에서 윤리성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하는지 정해진 답은 없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 리사와 루스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의 윤리성에 대하여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 만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예술가라면 자신의 작품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사실만 명확히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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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그리고 세대, 이들은 화합할 수 있을까


두 인물은 스승과 제자 관계에 위치하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관계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과연 세대 간의 갈등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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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는 리사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성장과 고난을 겪은 기성세대다. 리사는 루스가 젊은 시절 겪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지나치는 젊은 세대다. 그렇기에 이들의 갈등은 비단 예술과 윤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두 세대 사이의 논쟁으로 확장된다.

과연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에 이를 수 있을까. 경험해 본 바가 확연히 다를 두 세대가 서로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하나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극이 진행되는 동안 눈여겨 볼만한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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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의 갈등은 서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세대 갈등은 언제나 화두였지만 요즘처럼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시대에서는 더더욱 큰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서로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현재와 과거의 상황이 확연히 차이가 있기에 한 걸음 물러나 상대를 바라보는 태도가 필수적이지만 우리는 꽤 자주 그 사실을 잊곤 한다.

연극 ‘단편소설집’에서 그리는 갈등을 통해, 잠시 타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공연 정보

공연명: 단편소설집
일시: 2019. 5. 3 ~ 5. 12 / 평일 7시 30분, 토 3시, 7시, 일 3시
장소: SH아트홀
작: 도널드 마굴리스
연출: 이곤
번역: 드라마터그 마정화
출연 : 전국향, 김소진
관람료: 30,000원
관람연령: 13세 이상
소요시간: 150분(인터미션 15분 포함)



시놉시스

문예창작과 교수 루스 스타이너는 존경받는 단편소설 작가다. 루스를 숭배하던 대학원생 리사 모리슨은 6년 동안 루스의 지도를 받으며 인정받는 작가로 성장한다. 단편소설집 출간 후 호평을 받은 리사는 ‘루스와 시인 델모어 슈워츠의 사적인 관계’를 담은 장편 소설을 발표한다. 자신의 인생이 제자의 소설 소재로 쓰이자 루스는 분노한다. 예술가가 했어야 하는 선택을 했다고 주장하는 리사를 용서할 수 없는 루스. 가까운 스승 제자 사이였던 루스와 리사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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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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