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로 물든 방 [도서]

사실 그 인간은 틀렸네 내가 진실을 말해 주지
글 입력 2019.04.1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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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함.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잃어버린 건강함을 되찾아준다. 작고, 여리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선하고, 문란하고, 불안하고, 불행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묘사되는 여성으로부터 벗어나,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것은 여성으로 하여금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다. 악몽에서 깨어나서, 더 좋은 꿈을 지향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안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 또한 이러한 페미니즘 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안젤라 카터는 이 책에서 동화를 바꾼다. 어린 시절 머릿속에 생생히 각인된 동화의 구조와 서사를 바꾼다. 이는 우리의 머릿속으로 다시 들어가 우리들로 하여금 또 다른 꿈을 꾸게 한다. 신화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가스라이팅에 대한 책인 로빈 스턴의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나는 동화 '푸른 수염'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전복되는 동화라고 생각한다. 동화 '푸른 수염'은 가스라이팅의 현장을 가스라이터의 편에서 묘사한다. 그 이야기에서 가스라이티는 어떤 방식으로든 교화가 필요하고 멍청한 어린아이로 묘사된다.

목숨을 걸고 '푸른 수염의 마지막 아내'를 독차지하기 위해 푸른 수염의 아내들끼리 싸우는 이야기도 있다. 푸른 수염은 이 모든 비극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여버리는 것은 선택지에 없다. 그만큼 '푸른 수염'은 전복되는 이야기가 절실하다.

'네가 나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은 깨진 거야'라고 말하는 푸른 수염의 사랑방식은 폭력적이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착취하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이 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른다.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더 약하고 한 쪽으로 쏠려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한 쪽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관계에서 더 강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어떤 거짓말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상대방을 착취할 목적(그것이 명확히 그것을 가리키고 있지 않더라도)의 거짓말은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더더욱 공고히 하며 약자를 더더욱 약하게 만든다. 강자가 주입한 약자의 세계에서 약자는 취약하지만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상냥하고 아름답다. 약자의 자유 의지를 잘라내 버린, 강자가 만든 약자의 세상이다.

작가 안젤라 카터가 동화 푸른 수염을 전복하여 쓴 소설 피로 물든 방은 이러한 가스라이팅을 전복하며, 동시에 오래 전 잃어버린 언어를 여성에게 돌려준다.


'푸른 수염의 목을 따버려'



이것은 어떤 현실성을 잃어버린 발화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발화는 종종 약자의 언어인 농담으로 슬며시 기어나올 뿐, 어떤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약자의 위험을 나타낸다. 어떤 위험, 혹은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농담이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인은 그대로 과거에 머물러 있으나 결과는 농담 이외로는 침묵되기 때문이다. 침묵은, 분노의 입막음은 우울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힘을 빼앗는다.

왜 침묵되는가, 그것은 불행한 미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푸른 수염을 목을 따고 나서 행복하게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는 듣기 어려웠다. 먼저 푸른 수염의 목을 딴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푸른 수염의 목을 딴 사람은 불행하게 묘사되었다. 이러한 여성의 불행에 대한 폭력적인 묘사는 푸른 수염의 발화와 비슷한 점이 있다.

'네가 나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은 깨진 거야', '결국 너 때문에 너 스스로 불행해진 거야'라는 가스라이팅. 불행한 미래는 가스라이팅으로 만들어진, 약자의 자유 의지가 사라진 약자의 세상이다. 안젤라 카터는 이 끔찍한 악몽을 깨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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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쏟아진 우유를 두고 울어봤자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되며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앞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작정이라고


피로 물든 방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었다. 가수이자 감독 장혜영의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아니야' 라는 음악이 생각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쯤 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푸른 수염의 비밀을 알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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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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