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뒷담화의 위대함 속으로 [영화]

영향 아래 있는 남자
글 입력 2019.04.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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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국어국문학과 전공 수업에서 영화 ‘영향 아래 있는 남자’를 처음 접했다. 당시 영화를 봤을 땐 ‘병구’가 계속 식당 주인의 눈치를 보며, 파리가 들어 있는 볶음밥을 묵묵히 삼키는 모습이 답답해 보였다. 답답함이 전부인 영화였기에 언제 봤는지도 모르게 잊어버릴 줄 알았다.

하지만 가끔 작품의 어둡고 으스스한 배경이 머릿속을 스치곤 했다. 이처럼 특유의 분위기가 관객을 사로잡는 이 영화를, 이번 오피니언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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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으휴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먹은 꼬라지하고는... 개가 먹고 간 것 같네”



식당 주인은 한 손님이 밥을 다 먹고 나가자 위와 같이 험담한다. 이후 차례로 가게에 들어온 연인들에게도, 외국인 손님들에게도 그들이 밥을 먹고 나가자 혼잣말로 욕을 퍼붓는다. 이러한 주인의 모습은 밥을 먹고 있는 병구에게 은근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나 또한 밥을 남기고 간다면, 뒷담화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당 주인의 혼잣말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누군가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말았다. 왜 먹기 싫은 김치볶음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고 갈 만큼 주인의 눈치를 봐야 했을까. 사실 병구가 주인의 혼잣말에 지레 겁먹고 벌벌 떠는 모습은, 마치 한 대 맞은 것처럼 과도하게 표현돼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장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가해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람의 감정은 미묘하고 예민하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찰나에 하는 행동과 말에 따라 위안을 얻기도, 상처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미처 챙기지 못한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준다거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는 행동은, 상대로 하여금 고마움과 애정을 느끼게 한다. 반면 어떤 행동들은 상대에게 불신을 준다. 그중 대표적인 행동은 바로 뒷담화이다. 우리는 뒷담화로 겉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람의 속내를 솔직하게 알 수 있다. 이에 은밀해서 매력적이고, 거침없어서 잔인하다.

철없던 시절, 필자 또한 누군가를 뒷담화한 적이 있다. 그때는 뒷담화가 여자 친구들과의 우정을 끈끈하게 만들어 주는 매개물인 줄 알았다. 같은 반 아이들과 누군가에 대한 비난을 공유했고, 필자의 소원대로 여러 친구들이 생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안하고 불편했다. 친해지기 위해 어떤 아이를 잠깐 뒷담화한 것뿐인데, 뒷담화의 대상은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친구들과 있으면, 뒷담화의 대상이 내가 될까 봐 도중에 화장실을 가는 것도 속으로 무서워하곤 했다.

시간이 지난 후 그때 그 친구들과 함께했던 행동은 내가 겪은 사회의 일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인이 된 후 만난 사회는 늘 뒷말이 넘쳤다. 남모르게 욕하고 나도 모르게 욕을 먹는 이상한 세상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나도 모르게 욕먹지 않기 위해 늘 애쓰고 눈치 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순간의 말로 피해자가 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영화식당을 통해 만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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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영화식당은 조용한 골목의 지하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지하 통로는 마치 한밤의 아스팔트 도로를 연상케 해 식당으로 가기 전까지 위압감을 조성한다. 하지만 식당 안은 예상외로 평범하다. 메뉴판이 붙어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식사한다. 남들이 보기엔 별것 없는 식당은, 병구의 시점에서 음침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식당 안의 손님들이 나갈수록, 병구가 밥을 먹을수록 영화 속 긴장감은 더해지고 식당 주인은 무서운 존재로 비추어진다.

식당이 의도와는 다른 퇴폐 업소도 아니었으며 식당 주인들이 나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즉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병구 혼자서 만든 장면이었다. 이는 어쩌면 뒷담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의 기분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 어떻게 화살을 맞을지 모르는 일이기에, 공포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뒷담화의 힘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평범한 공간의 평범한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설령 내가 무관한 사람이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말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모두 말의 아래에서 느끼고 있는 찰나의 감정들을 영화식당에서 섬세하게 풀어낸다. 어쩌면 영화식당이라는, 평범하지만 미묘하게 무서운 공간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단편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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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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