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임머신을 타고 새내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3.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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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가면 길이 보일 줄 알았고,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졸업할 쯤엔 조금 더 삶에 능숙해져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졸업은 했지만 하던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고, 백수가 된 나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여전히 무중력의 상태로 진공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남들은 다 피어난 꽃인데, 나 혼자 완연한 봄기운에도 여전히 봉우리로 남은 채 피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은 불안함에 휩싸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허투루 대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요즘, 5년전 처음 대학을 입학하던 그 때가 왕왕 생각이 난다. 내가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새내기 시절로 돌아가, 바쁘게 밥 약속을 잡으며 캠퍼스를 누비던 그 때의 내 모습을 다시금 살 수 있다면 - 그리고 그 새내기가 지금의 졸업생 '나'를 만나서 혹여나 작은 조언을 구하려 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1. 외향적인 척 하지 않아도 돼, 너는 너일 뿐


MBTI 검사의 항목 중, 외향과 내향을 판단하는 항목이 있다. 그 기준은, 바깥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에너지를 얻는지, 아니면 오히려 사람들과 있으면 에너지를 방출하기에 혼자서의 재충전 시간이 필요한지의 기준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극심한 I(introvert), 내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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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새내기로 입학한 후 대학생의 삶을 살면서, 나는 늘 다수의 사람들과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한다던가, 여러 단톡방에 속해 있어야 한다던가, 일주일에 서너개는 약속이 잡혀있어야 한다는 등의 자기암시를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의 집밥도 마다한 채, 매일 저녁을 술자리와 밥약속, 혹은 동아리 활동으로 꽉꽉 채우며 보냈다.

사실 '대학교'라는 공간의 설레임이 그 외향성을 만들어냈던 것 같기도 하다. 한 학년의 정원도 정해져 있고, 같은 반끼리의 결속력이 강하기에 굳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욕구도 느끼지 못했던 고등학생과는 달리, 몇천명의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시시각각 다른 수업에서 만나고 흩어지는 그 공간이 처음엔 참 신기했다. 늘 마음 속에 외로움의 구멍을 간직하고 있던 나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끝없이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하지만 그 구멍은 쉬이 메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커졌다. 분명 방금 술자리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게임을 하고, 정신을 놓은 채 즐기다 온 것 같은데도 방에 오면 고독에 휩싸였다. 외로움을 달래지 못해 새벽 서너시까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들을 '눈팅'하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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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마도,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서 좋은 영화나 소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때로는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서로의 외로움을 위로하는 담소를 나누며 메꾸어야 하는 공간이었다. 졸업하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다. 대학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도서관과 집의 짧은 행동반경만을 유지하며 지내며, 일주일 7일 중 적어도 5일은 집에 와 저녁을 먹는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참 행복했다. 오히려 대학교를 입학한 후 처음으로 진정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다시 새내기가 된 나에게, '혼자서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다. 약속이 몇 개 없어도, 카톡이 하루종일 울리지 않아도,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아도, 정말 괜찮아.


네가 행복한 방식을 택하렴. 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너야.





2. 공부의 '쓸데 있음'을 느껴보았으면 해


솔직히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공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우리 아빠는 내가 거의 8살이었을 때부터 '대학 입학까지 12년 남았다'에서 년수만 바꿔가며 나를 세뇌시켰는데, 그것은 좋은 대학에의 입학이 내 행복한 삶을 보장해줄 거라 생각하셨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열성 탓인지 공부를 손에서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결국 나는 특목고를 거쳐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입학을 하긴 했다.

그렇게 대학을 입학했으니, 수업을 듣고 싶을리가 없었다. 성적에 대한 예민함이 아직 몸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최소한도'의 출결과 시험 공부, 과제 제출을 꾸역꾸역 해낸 덕에 학점은 평균 이상 정도로는 유지했지만, 사실 '듣고 싶어서' 그 강의를 선택한 적은 드물었다.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않았고, (대학교 시험은 족보가 있어서 수업이 성적에 필수적이지 않았다) 출석체크를 하지 않는 수업이면 결석을 밥먹듯이 했으며 과제 제출로 글을 쓸 때도 한 페이지에 30분을 넘기지 않았다. (4학년쯤 되었을 때는, 한 페이지짜리 글을 15분만에도 쓸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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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수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걸 이토록 후회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졸업한 뒤 학교 커뮤니티의 '강의평' 게시판에 다시 들어가 봤다. 재밌어 보이는 강좌가 많았다. 왜 학부생 때는 이 강의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과학철학에 대해서도, 법학, 논리학, 미학, 심지어는 연극 수업까지, 정말 다양한 학문 영역의 지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왜, 나는 그들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수업을 찾아 듣고 관심 영역을 넓히는 데까지 가지 않더라도, 전공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들에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까?

그 때는 과제들이 그저 귀찮았다. 교육이 사회 불평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법교육과 법학의 차이는 뭔지, 정치학을 게임이론 관점에서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보고서를 쓰는 일이 내 삶과 어떤 큰 연관성이 있는지 속으로 불평했다. 제대로 논문과 기사, 출판 자료들을 찾아보지도 않은 채 엉터리 보고서를 얼렁뚱땅 제출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 시기야 말로 기회였다. 내 삶과, 그 삶을 이루는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파헤쳐보고 그 속에서 앞으로의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가치관을 발굴해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참 아쉽다. 물론 지금부터도 할 수 있는 공부다. 혼자서 관련 개론서 및 실용 서적들을 찾아 읽으면 되고, 토론을 하고 싶으면 모임을 만들어도 된다. 하지만 대학생일 때부터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때야말로 공부의 '쓸데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시기였는데.


더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했는데. 왜 나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30분도 채 고민하지 않고 늘 '제출' 버튼을 클릭해 버렸었는지.


다시 새내기가 된 나에게, '책과 함께 하는 고민이 네 사고의 폭을 넓혀줄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학문은 탁상공론이 아니라고. 학문에 대한 탐구는,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과거의 저명한 학자들과의 만남이며 그들과의 만남은 너의 삶도 더 풍요롭게 해줄거라고!



3. 진로에 대한 고민은 1학년부터 해도 빠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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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최대한 뒤로 미루려 했는데, 그건 아마도 진로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마치 어떤 성취를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탓에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고민을 시작했고, 교생을 다녀와 학생들과 친밀함을 나누는 것에 매료되어 교사의 꿈을 꾸게 되었으나 - 경험을 해본 뒤 안 맞음을 느끼고 좌절감에 빠졌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일찍 해도 빠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더 그런 것이, 원래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야 할 고민을 우리 사회에서는 20대로 유예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로 수업과 체험 교육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입시 중심의 교육 구조에서 학생들이 진지하게 본인의 미래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다. 그리고 사실 진로에 대한 희망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필연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치므로,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새로운 진로 탐색이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업시장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등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봐도, 일찍 고민을 시작하는 건 절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만일 고시 류의 시험을 배제하고 취업을 하기로 결심한다면, 적어도 2-3학년부터는 복수전공을 한다던가, 학회, 대외활동 등을 통해 유관 경험을 쌓는 등의 활동을 해야 한다. 4학년 때는 관심 있는 분야로의 인턴도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1학년부터, 본격적 준비를 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어떤 직무, 어떤 산업에 관심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고민해보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

다시 새내기가 된 나에게, '진로에 대해 일찍부터 고민한다고 해서, 목표에 치중된 성취지향적 인간이 되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히려 나의 진정한 욕구와 유리된 채 학창 시절을 보내왔던 나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그 과정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혀 머리가 뽀개질 때까지 고민해 보라고.





글을 쓰는 동안, 마치 정말 5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설레고 즐거웠다.

물론 이 세상에 타임머신은 없지만, 가끔 이렇게 과거를 반추하면서 후회하는 일은 내 기억들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 같다. 부분으로만 남아 있던 기억을 전체로 합쳐주고, 그를 통해 평생 잊고 싶지 않았으나 살면서 놓아버렸던 기억을 되찾게 되기도 하며,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갈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

새내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듯이, 30살의 나도 결코 25살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기에 - 더 적은 후회를 남기고 더 많은 보람을 얻기 위해, 오늘도 허투루 살지 말아야 겠다.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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