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매혹적인 실패 <호밀밭의 반항아> [영화]

글 입력 2019.03.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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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귀가 심심하면
줄곧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놓는다.

기준은 이미 여러 번 봐서 소리만 들어도
어느 장면인지 아는 영화.
그리고 음악이 좋고 여운이
선명하게 남은 것으로 한다.

이에 충족하는 영화 중
가장 많이 재생한 것은 '호밀밭의 반항아'다.



익숙한 문장에 불시착한 호기로운 단어


'호밀밭의 반항아'. 누구에게나 다소 익숙하면서도 낯선 낱말 조합으로 느껴질 것 같다. 동시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자동 연상될 것이라 생각한다. 호밀밭의 반항아는 문학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저자 제롬 데이빗 샐린저(J.D.샐린저)의 생애를 그린 영화로, 그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호밀밭의 파수꾼을 집필하는 과정이 전반적인 극의 흐름이다.

영화를 재생하기 전엔, 그를 왜 호밀밭의 반항아라고 표현했을까 궁금했다. 대를 이은 육류 유통업으로 부를 쌓은 유대인인 그의 아버지는 그가 가업을 이으며 평탄한 삶을 보내길 바란다. 하지만 이를 적대시하던 샐린저는 공부에 대한 의욕 또한 상실하며 명문 사립 학교에서 낙제해 쫓겨난다. 그리고 그는 소설 쓰는 일을 삶의 방출구이자 흥미로 여긴다.

"매혹적으로 지루한 내 일상 속에서 내겐 현실보다 허구가 더 현실적이었다." 샐린저의 첫 독백이다. 이 전까진 그의 일상을 관찰하는 형식으로 영상이 흘러간다. 그리고 그의 첫 독백을 시작으로 주인공 시점으로 변화하며 그의 상황과 내면에 관객을 끌어들인다.

샐린저는 어느 날 사교계에서 유명 극작가의 딸 우나 오닐을 만나 매혹되고, 그녀에게 인정받기 위해 유명 소설가가 되기로 한다. 동시에 어머니에게 글 쓰는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다시 대학에 들어간다.



수려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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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밀밭의 반항아를 처음 접했을 때, 러닝 타임 두 시간이 안 되는 영상을 일시정지 버튼을 연신 누르며 세 시간을 넘게 봤다. 극 중 샐린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작가로서 시작을 함께한 휘트 교수가 그에게 하는 이야기가 모조리 필사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샐린저가 휘트 교수의 첫 수업 내용을 기만하면서부터다. 휘트 교수는 그런 샐린저에게 그의 입학 원고에 대한 신랄한 평을 하고, 샐린저는 휘트 교수를 찾아가 자신의 글에 대해 다시 묻는다. 이때부터 시작된 휘트 교수의 언어는 샐린저가 단숨에 이치를 깨닫게 한다.


"목소리가 이야기의 독특함을 만든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이야기를 삼켜버리면 글은 자아의 표현에 그치고 독자의 감정적 체험이 못 된다."

"포크너의 소설 중 한 구절을 읊어보겠다."

<간수는 그녀를 내리고 살려냈다. 그다음 그녀를 때리고 채찍질했다. 그녀는 원피스로 목을 매었었다>

"난 최대한 지루하게 읽었지만 여러분은 흥미롭게 들었다. 이야기 속 사건이 흥미진진했고 주제가 탄탄했고 극적이었으니까. 자살시도, 폭행으로 우릴 끌어들인 다음에 자신의 목소리를 써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만약 내가 단조롭게 읽어도 듣는 이들의 주의를 끌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써라."

-휘트 교수의 대사 중



그의 대사는 수려할뿐더러 관객을 극으로 한차례 끌어들인다. 관객이 샐린저와 휘트 교수와의 교류로 인해 샐린저에게 생기는 긍정적 영향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닌, 마치 샐린저가 된 듯 휘트 교수의 말에 깊이 궁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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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린저는 출판사의 계속되는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소설을 써나가고, 마침내 <스토리>지에 그의 첫 단편집 '젊은이들'이 실린 후 그는 작가로서 첫 수표를 받는다. 이후 <뉴요커>지에 훗날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 <홀든 콜필드> 단편을 내며 작가로서 견고한 시작을 다진다. 그 시작에서 샐린저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홀든 콜필드는 장편 소설이 되어야 한다는 휘트 교수의 강한 조언에 따라 그는 전쟁 중에도 노트와 펜을 가슴에 넣어두고 홀든 콜필드 집필을 이어간다. 그는 전쟁 후유증으로 일 년 간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피폐한 삶을 지내면서도 홀든 콜필드와 함께였다. 훗날 홀든 콜필드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이름의 장편 소설로 발간됨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심미적 자극 요소


그가 참전한 전쟁터가 배경이 된 순간, 나는 호밀밭의 반항아가 여러모로 관객들의 시.청각에 심미적 자극을 주는 영화임을 깊숙이 느꼈다. 극에선 전쟁 상황을 불필요한 소음 없이 잔잔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내게 불필요한 소음이란, 영화 죠스에서 상어가 나타날 때 나오는 빠-밤 빠밤- 같은 효과음 혹은 공포 영화에서 위험한 순간에 나오는 정체불명의 소리 같은 것이다.) 호밀밭의 반항아에서는 전쟁 속 폭격 상황에도 포탄이 터지는 소리, 총 쏘는 소리를 연신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음을 멈추고 화면 속 연출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이런 순간의 빈 소리는 샐린저를 연기한 니콜라스 홀트의 독백으로 채운다.

이 모든 호흡이 조화를 잘 이루어서일까, 니콜라스 홀트의 매혹적인 음성에 이끌려서일까, 내게 호밀밭의 반항아는 심심한 귀를 달래기 충분함과 동시에 귀로만 보길 줄곧 실패하는 영화로 남았다.

어느 날 휘트 교수가 던졌던 '아무 보상이 따르지 않더라도 글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훗 날의 그는 깊은 마음울림으로 'YES'라 대답하며 산속에서 오로지 글만을 위해 은둔 생활을 하고,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특정 요인으로 인해 샐린저가 전쟁에서 돌아온 시점부터 그와 휘트 교수의 교류는 끊긴다. 그럼에도 그의 작가 생활 전반에 늘 휘트 교수의 언어가 따라다닌다. 나는 그것이 샐린저의 삶과 이 극을 이끈 요소라 느꼈다.



호밀밭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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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적은 없다. 반면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게 여러모로 익숙한 문학 소설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나와는 그리 친하지 않은, 엄마 친구 아들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종종 듣던 경험에 비유하면 될까. 호밀밭의 파수꾼은 '꼭 읽어야 할 문학 소설'에서 언제나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접할 기회가 많았다. 나는 그때마다 책 제목에 약간의 호기심만 비출 뿐이었다.

그리고 난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사흘간 연달아 재생한 후에야 서점에 가 책 <호밀밭의 파수꾼>을 구매했다. 아직 20p 남짓 읽은 나의 알량한 감상평은,, 저자의 냉소적인 시선, 넓은 사고 범위와 그로 인한 전혀 압축되지 않은 듯 깊고 긴 독백이 수십 년간 수많은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궁금하다는 것. 또한 냉소적인 시선을 비판과 불평보단 관조적으로 풀어냈기에 나 또한 감정에 큰 동요 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집중해서 책장을 넘기다가도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의 영향으로 니콜라스 홀트의 준수한 외모와 그의 음성이 자동 연상되어서 흐믓하게 읽고 있다.


*


<호밀밭의 반항아 2018>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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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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