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익숙함에서 멀어진다는 것 [기타]

나는 요즘 익숙함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글 입력 2019.02.2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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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가 끝나고 약 두달이 흘렀다.


그 짧지 않지만 길다고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기간동안, 꽤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3년을 살았던 기숙사에서 나왔다. 물론 방은 몇 번 옮겨 다녔지만, 3년이란 기간동안 쌓인 짐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큰 박스 4개를 우선 택배로 부친 뒤 그만큼의 짐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차로 옮겨왔다. 짐을 싸기 전 입지 않는 옷이나 쓰지 않는 잡동사니를 정리한다고 방을 한차례 뒤엎은 결과치곤 너무 많았다. 새삼 무소유의 삶은 이토록 어렵구나 느끼면서 고생한 몸뚱이를 차시트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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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빠져나오는 도로에서, 처음으로 집을 나와 혼자가 된 자유를 누렸던 스무살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부모님의 아늑한 품에서 빠져나와 처음 만난 서울은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고, 생각처럼 자유로웠고, 생각지 못하게 서럽기도 했다.


적절한 무관심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의 틈새에 섞여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특별함이라 믿었던 것들이 길가에 흔하게 널린 들꽃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나날들. 익숙한 사람들, 장소들, 기억들에서 빠져나와 도착한 그곳에서, 나는 가끔 좌절하고 종종 무기력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성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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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풀어 헤쳐놨던 짐들 중 꼭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다시 짐가방에 옮겨 담았다. 사실 우리 부모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패션쇼하러 가는 것 마냥' 넉넉한 양의 옷들을 가방에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역시 난 무소유는 틀렸다, 고 느낀 것 또한 깨달음이리라.


남은 날을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지만, 사실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보냈던, 그리고 보낼 시간에 비하면 훨씬 짧은 기간인데도 물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너무나 다른 공간이라 현실감이 떨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인지 시간이 태엽을 빠르게 감는 것처럼 쏜살같이 지나간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이런.


설렘과 흥분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몇가지 믿고 있는 것은 내가 생각보다 잘 해나갈 것이란 것과, 익숙함을 떨쳐내고 낯선 공간으로 내딛은 이 발걸음이 결국은 또 한번 나를 성장시키리란 것이다. 설령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졌을 지라도, 나뒹군 내 몸은 더 앞쪽에 흔적을 남기리라.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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