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와 나, 영화와 인생 : 도서 '영화의 심장소리 II'

글 입력 2019.03.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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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와 나

영화를 보는 게 괴롭다.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나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스토리, 그러니까 기승전결이 있기 위해서는 갈등 상황이나 위기가 나타나곤 하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의 그런 상황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괴로울 지경이다. 위태로운 상황이 닥치면 그저 빨리 해결되길 바라면서, 총 러닝 타임이 몇 분인지 재차 확인하고 5분에 한 번 씩 시계를 보면서 조급해하곤 한다.


위기와 갈등은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영화에서 나타난다. 적어도 내가 봐왔던 모든 영화들은 그러했다. 아름다운(혹은 그렇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는 오해와 갈등, 이별이 등장하고, 영웅들은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꼭 거친 후에야 악당을 물리치며, 범인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밀당을 선보이며 여러 차례 달아난다.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마치 나의 일인 것마냥 불안하고 초조해지곤 하는데, 아마 영화를 볼 때마다 과하게 감정이입을 하는 습성 때문인 듯하다.


날 괴롭게 하는 모든 불가피한 상황들은 영화가 끝날 때쯤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이 된다. 머릿속엔 빨리 모든 게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결말만을 기다린다.


같은 이유로 연극과 뮤지컬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걸 보면, 이러한 요상한 증상에는 산만하고 성미가 급한 내 성격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두 세 시간가량의 시간동안 한 자리에 앉아 기, 승, 전, 그리고 결까지 봐야한다니. 결말을 보려면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게다가 주인공과 함께 힘든 상황들까지 견뎌내야 하니 정말 고역이 아닐 수가 없다. 아무튼 나는 이런 이유로 영화를 즐겨 보지 않았다.


 


#2 영화와 인생

영화 속 사랑과 인생 이야기, 영화의 심장소리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다. 친구를 만날 때, 데이트를 할 때, 하다못해 가족과 간만에 외출을 했을 때,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될 때면 ‘영화 보러 갈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영화는 만만할 정도로 친숙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대신 당신들과 이야기를 하고, 게임을 하고, 술을 먹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딱히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영화의 심장소리’라는 제목의 책을 읽게 된 건 영화를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에 발맞춰가기 위한 도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꽤나 성공적인 시도였다. 감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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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심리상담사인 저자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직업에 걸맞게 따뜻함을 가득 담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밀한 분석이나 날카로운 비평을 하는 대신 영화 속에서 들려오는 삶과 사랑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지나온 인생과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속에는 총 55편의 영화가 등장한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은 영화에 대한 칼럼이라기 보단 삶과 사랑에 대한 에세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그 덕에 ‘괴로운 존재’였던 영화에 보다 편안하게 한 발 다가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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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심장이 건너 뛴 박동'


한번이라도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을 뜬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추한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일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시인 사무엘 얼만은 노래했다.

“나이가 든다고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理想이 없을 때 늙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친구여, 그대 심장의 박동 소리를 건너뛰지 말기를. 두 가지 목소리가 들릴 때, 어느 쪽에 귀 기울여야 하는 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을 테니.

-영화의 심장소리 145p


폭력적이고 거친 세상에서 벗어나 피아노라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사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 심장이 건너 뛴 박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자가 남긴 말이다. 저자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더불어 다채로운 인용구와 함께 온기가 깃든 메시지들을 건넨다. 각박하고 고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하기라도 하듯이.


저자는 좋은 영화란 '마음을 정화시키고 따뜻하게 하며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 이야기한다. 그 따뜻한 치유의 메시지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었는지 알 것만 같다. 내가 봐왔던 몇 안 되는(정말 몇 개 없다) 영화를 되돌아보자면 오락물에 가까운, 말 그대로 킬링 타임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온갖 자극이 난무하고, 뻔하고 비슷한. 어쩌면 그 때문에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나 경계심이 생겼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인생에 깊은 만족이란 끝내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인정해야 할까보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아름답다고, 모두가 '화양연화'였다고, 조금은 과장되게 기억해도 좋으리. 그리고 오늘은 그저 담담하게 또 하루를 살면 되는 것이다. -화양연화


사랑에 관한 한, 먼저 사랑하고 먼저 손 내미는 것이 진리인 것 같다. 상투적으로 들릴 만큼 진부한 말이지만, 진리란 원래 그렇게 진부한 것이 아니겠는가. -마리안느와 마가렛


어쩌면 연약하고 부족한 이들의 존재로 세상은 더 다채롭고 깊이가 있어지는 건지도 모른다고. 나보다 작고 연약한 존재의 가치를 알고, 존중하고 배려할 때만이 우리는 깊이와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진짜 장애는 역시 몸이 아니라 마음의 장애이므로. -네이든 X+Y



저자가 건네는 따뜻한 메시지와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삶은 곧 우리의 초상이기도 했다. 좋은 영화가 따뜻한 치유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실로 영화는 삶과 같다. 글과 그림과 음악이 그러하듯이. 그 안에서 들려오는 심장 소리를 이제야 알아차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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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500일의 썸머'


책을 덮은 뒤 책 속에 등장했던 두 편의 영화를 봤다. 6년 전에 봤던 ‘500일의 썸머’를 다시 보니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의 인생을 닮아있는 것 같이 느껴져 가슴이 저리기까지 했다. 모든 걸 불태워버릴 만큼 뜨겁고 아픈 여름의 끝에는 또 다른 계절이 기다리고 있다. 이는 수많은 상처를 거듭해도 계속해서 우리를 기다리는,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마음을 시리게 만드는 '저마다의 썸머'가 존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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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립'



책 속 ‘사랑과 착각 사이’라는 소제목에 이끌려 본 플립. 예전 같았으면 어린 아이들의 유치한 사랑이야기로만 여겼겠지만, 어쩐지 책을 읽고 보니 ‘풍경 전체를 봐야해. 그림은 단지 부분들이 합쳐진 게 아니야.’라는 대사가 마음속에 잔잔하면서도 깊숙이 다가왔다.


여전히 조급한 마음에 영화를 보는 내내 시계를 들었다 놨다 반복했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화에서 들려오는 삶과 사랑의 메시지에 마음을 내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화에 대한 이유 모를 반항심을 한 풀 꺾고 한 발 다가설 수 있었다고나 할까. 두 세시간의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여전히 힘들지만, 전과 달리 진득하게 영화 속 삶을 만나려는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노력을 요할만큼 영화는 내게 힘겨운 분야이다.)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이는 실로 놀라운 발전이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빈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누군가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를 보며 유별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생각보다 더' 심하게 영화를 거부하고 경계해 왔다. 영화에서 들려오는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알게 되었다. 나는 제대로 된 영화를 아직 맛 보지 못했던 것이라고, 그리고 좋은 영화를 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뻔한 오락물이 아닌 삶과 사랑을 담아낸 영화들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고 싶어졌다.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만나고 싶다.



[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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