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도서]

위화의 생과 글쓰기
글 입력 2019.02.0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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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사랑하는 이유



내게 중국 문학은 참 어렵고 멀었던 대상이다. 사실 여전히 어렵고 멀다. 내가 이 책을 골랐던 이유는 작가에게 끌려서라기보다 글쓰기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글 쓰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기 때문에 소설가가 이야기하는 글쓰기는 어떤 글쓰기일지 굉장히 궁금했다. 그래서 중국 문학에 전혀 지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읽어 내려갔던 것 같다.


문득 우리 과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국어 교과서를 제작할 때, 누군가에겐 이 작품이 평생의 마지막 소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듭니다.” 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이 대입 후 독서와 연을 끊고 산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예전에는 지식과 정보를 얻을 매개체가 활자뿐이었지만 지금은 구태여 글자를 해석할 필요 없이 영상이나 그림으로도 충분히 유식해질 수 있다. 물론 그 깊이는 확연히 차이가 나겠지만, 아무튼 책보다 빠르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세상인 건 틀림없다.

그래도 우리가 소설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이와 활자에서 느껴지는 빈티지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술은 작가가 하지만 해석은 독자가 한다. 그 말인 즉, 같은 대사와 같은 상황을 읽어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이 영화화된 작품을 상당히 좋아한다. 내가 상상했던 책 속 세계를 영화감독은 어떻게 상상해서 구현해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 머릿속과 비교해가며 영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설이 주는 무한함 탓에 우리는 여전히 책을 놓지 못하나 보다.



작가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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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읽기를 좋아한다 하여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끔씩 단편소설 공모전이나 시 공모전에 나가기도 하지만 좋은 결과를 기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운 좋게 당선이 된 적도 있긴 하지만, 한 번도 소설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게 글쓰기는 어렵고 심오하다.


전에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을 때는 항상 학생들과 젊은이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단 한 단어로 대답하곤 했지요. “쓰세요.”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인생을 경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인생이 채워지지 않아요.

62쪽


“쓰세요.”
 
책을 읽다가 한동안 이 구절에서 멈췄던 기억이 난다. 마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정말 뻔한 표현이지만 말이다. “쓰세요.” 너무 단순한 말이지만 정말 맞는 말이기도 하다. 단순히 과제를 할 때도 일단 한글을 켠 후 첫 단락을 시작해야 마지막 단락까지 쓸 수 있는 법이다. 소설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첫 문장이 있어야 마지막 문장도 있는 법이고, 첫 글자가 씌어져야 온점도 찍을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위화는 글쓰기를 인생에 비유했다. 역시 작가는 남다르다는 걸 느낀 부분이다. 경험하지 않고선 인생이 채워지지 않듯이 시작하지 않고서는 원고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아가 풍부한 경험만이 혜안을 낳을 수 있듯이, 다수의 글쓰기 경험만이 더 나은 글을 이끌어낼 수 있다.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고르는 것도 경험이 뒷받침해주어야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소설의 가치




저는 일찍이 현실을 법정에 비유한다면 문학은 원고도 아니고 피고도 아닐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문학은 법관도 아니고 검사도 아니며, 변호사도 아니고 배심원단의 하나도 아닙니다. 문학은 가장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서기원이지요.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 사람들이 법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할 때는 서기원의 기록이 가장 중요할 겁니다. 따라서 문학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36쪽


나는 지금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중이라 종종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문학을 가르치기도 한다. 저번 년도에는 한 중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국어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때 몇몇 학생들이 내게 물었다. “소설은 허구인데 왜 읽어야 해요?” 라고.

소설을 한 문장으로 나타낸다면 ‘사회의 단면을 재진술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소설가의 주관적 시선이 창조한 허구적 인물이 허구적 세계에서 진실을 말하는 게 소설이 아닐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헛소리가 아니라 가치 있는 판타지로 끊임없이 향유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유독 저 구절이 눈에 띄었다. 문학의 가치는 이 순간이 아니라 나중에 있다는 말에서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았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그 당시 사회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고, 그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이유는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우리가 ‘맥베스’를 읽는 까닭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맥베스가 있기 때문이며, ‘노인과 바다’를 향유하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의 인생이 바다를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고도는 오지 않았기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먼 미래의 신세계를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하기에 ‘멋진 신세계’가 여전히 정전의 가치를 가진다. 그만큼 소설의 가치는 영원하고, 또 시간이 흐를수록 소설이 가진 힘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고전이 주는 이상




작가에게는 자신만의 이상이 있지요. 작가는 어떤 작품에서 이 이상을 완성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상은 작가가 스물 남짓일 때, 심지어 십대일 때 고전작품을 읽으면서 갖게 되기 마련이지요. 저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178쪽


고전을 읽으면서 이상을 꿈꾼다는 말에 잠깐 찔렸다. 실제로 나는 중학생 때 세계 고전에 빠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 같은데, 고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차분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호밀밭의 파수꾼’, ‘1984’, ‘동물농장’, ‘이방인’, ‘수레바퀴 아래서’ 등 일주일에 적어도 한 권은 고전을 읽었던 것 같다. 고전이 주는 묵직한 주제의식과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묘사, 한참을 더듬어 생각해야 작가의 의도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그 깊이까지, 한 권을 독파할 때마다 묘한 쾌감을 느꼈다. 동시에 나도 언젠가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전에서 느끼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평균적인 삶이었다. 하지만 고전적인 이상에서 벗어났을 뿐, 나에게는 이제 현실적인 이상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목표’ 정도가 되겠다. 아마 작가가 이야기한 것도 이런 맥락 같다. 모두가 카뮈를 대단한 작가라고 칭송하지만 누구도 카뮈가 될 수 없듯이, 고전이 주는 이상과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에서 시작해 나만의 소설을 완성하는 것, 이게 진정한 이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

책을 읽으면서 내내 작가는 정말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을 경험에 그치지 않고 기록으로 새긴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와 재능을 필요로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쓰고자 하는 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위화에 대해서, 또 중국 문학에 대해서 거의 무지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었으면 하는 책이었다.


도서 정보

제목: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원제: 我只知道人是什麽
저자: 위화
역: 김태성
출판사: 푸른숲
발행: 2018. 11. 15
쪽수: 384
ISBN: 9791156757696
정가: 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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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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