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쩌면 우리는 닮았을지도 모른다 <고아 이야기> [도서]

글 입력 2019.02.03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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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이야기>, 팜 제노프



책을 읽고 울어본 것이 얼마 만인가. 감정이 메말라버린 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봐도 감동을 느끼기는 커녕,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일부러 감정을 자극하는(슬픈 것, 혹은 불편한 것) 것들은 일부러 피한다. 사람을 만나는 건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최대한 꺼렸고, 내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감정을 소모할 모든 것들은 내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한마디로 나와 타인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타인에게는 일말의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 버린 나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 <고아 이야기>.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는 그런 이야기의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낯선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책을 다 읽고서 든 느낌은 무언가에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500p 남짓한 두꺼운 책을 통해 내 마음속에 작은 울림이 일었다.

    

*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계에서 남을 사랑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랑이란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가족도 아닌 남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전쟁처럼 사람들이 각박해 질대로 각박해진 현대 사회에서도 남을 사랑한다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솔직하지 못한 상태로 남을 대한다. 이런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언젠간 약점으로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염려를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남을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솔직하게 터놓지 못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고아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였으면 상대방에게 내 모든 상처를 고백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독일군의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뺏기고, 유개화차에서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감히 남에게 고백할 수 있었을까? 말 한마디에 끌려가서 죽을 수도 있는데, 내가 뭘 믿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래서 서커스 안, 노아와 아스트리드 사이에서도 ‘비밀’을 증오하고 서로의 신뢰를 중요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과거는 여전히 비밀이었으니까. 그 비밀이 서서히 우리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서 우리 둘을 멀어지게 하고 우정마저 거짓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거짓말에 불같이 분노하고, 자신의 거짓으로 둘 사이에 연대가 곪아간다면서 자책하기도 한다. 매일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는 내가 보기에는 예민하다고 느낄 정도로 거짓을 증오한다. 비밀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도 하지만, 또한 그들이 서커스에서 합을 맞추는 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커스에서 합이 맞지 않아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노아와 아스트리드 사이의 연대는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죽지 않기 위해서,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그들의 사이에 비밀은 없어야 하고, 연대가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 둘 사이는 처음부터 거짓과 불신으로 얼룩졌었다. 처음 보는 노아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아스트리드와 처음부터 거짓말로 둘러대는 노아 사이에 연대가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소설이 진행되면서 둘 사이는 서로에게 치부를 들키고, 비밀을 고백하면서 그들에게 연대감을 조금씩 느끼면서 마지막에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둘 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나는 부모님에게, 아스트리드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셈이니까. 게다가 가족을 잃었다는 점에서도 똑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면에서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문장이 이 소설을 관통한다. 

 

마지막 서커스를 앞두고 아스트리드와 노아에게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스트리드는 극적으로 헤어졌던 가족의 생사를 알게 되었고, 오빠가 있는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고, 노아는 루크와 함께 떠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들 앞에 놓인 서커스장 화재로 인해 둘은 영원히 작별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계속 눈물이 차올랐다. 겨우 행복해지려고 발버둥 쳤지만, 행복이 무참히 깨져버렸을 때의 허무감에 슬픔을 느꼈다. 둘 사이를 가로막은 전쟁에 분노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으려고 해도 못 읽고 있다. 그래도 목숨을 바쳐 소중한 것을 지켜주는 이 장면은 내가 조금은 남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마음을 녹여준 따뜻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다면 가슴 아프더라도 참고 읽어 보길 바란다.

   

*

    

전쟁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이루어진 연대로 살아갈 힘을 얻듯이,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에 고립된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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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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