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날로그 대나무숲; 고민을 들어드릴게요 [도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글 입력 2019.01.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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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장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오랜만에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웹툰, 웹소설 등의 각종 모바일 콘텐츠에 관심이 생긴 이후 종이책과는 잠시 이별했었는데, 역시 종이책만의 질감과 끊기지 않는 흐름은 고유한 매력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2019년 첫 소설책으로 접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너무 유명한 책이다. 도서 추천목록에서 이 책이 빠져 있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우연찮게 책을 구입한 덕에 이제야 보게 되었다. 뭐, 딱히 이유는 없다. 최근 일상이 소설책을 쥐고 있을만한 여유가 없어서인지. 어쨌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소설책은 정말 오랜만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펼친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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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날아온 한 통의 편지


 

잡화점, 우편함, 우유 상자. 20대인 나에게는 조금이나마 친숙한 단어이지만 현재 10대들에게는 낯선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잡화점이라는 말은 잘 안 썼지만 슈퍼에서 군것질을 하고, 친구들과 서로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몰래 그 집 우편함에 놓고 돌아와 언제쯤 답장이 올까 기다리던 기억이 선연하다. 또 아파트에 살았는지라 우유 상자는 없었지만 우리 집도 매일 아침 우유 배달을 받곤 했다.

 

‘나미야 잡화점’은 이러한 추억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만 같은 기묘한 잡화점에 발을 디딘 사람은 세 명의 남자로, 그들은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좀도둑이라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폐가를 찾았고, 아침까지 이곳에서 지낼 목적이었을 뿐이다.

 

그러한 목적은 난데없이 날아온 한 통의 편지에 의해 흔적 없이 사라진다. 수신인도, 발신인도 불분명한 ‘달 토끼’라는 사람의 편지. 그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답장을 해주었을 뿐인데 달 토끼 씨는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감사를 표한다. 여러 번에 걸친 편지 끝에 편지가 마무리되고 이제 그만 펜을 놓으려고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편지가 날아들며 이야기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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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편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구성은 총 다섯 개의 챕터로 다섯 에피소드가 교묘하게 연결되며 진행된다. 그들은 서로 살아가는 시대도, 배경도 모두 다르다. 그나마 공통점이 있다면 아동복지시설 ‘환광원’과 관련이 있다는 것과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 상담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비록 누군가는 진짜 나미야 할아버지가 답장을 했고, 누군가는 미래의 사람이 답장을 대신 해줬지만 말이다.

 

신기한 점은 어떤 고민을 상담했든, 누구에게 답장을 받았든, 그 답장이 실제 자신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든 관계없이 그들 모두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존재를 가슴 깊이 간직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편지를 보낼 일도 없으면서 그저 문 닫은 잡화점을 바라보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흘러 나미야 잡화점 부활 소식에 반신반의하면서도 한달음에 잡화점으로 달려오기도 한다.

 

그 어떤 답장이든 그들의 고민을 진중히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었다는 ‘진심’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생선 가게 뮤지션’은 답장에 쓰인 그대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믿어 세상에 발자취를 남겼고, ‘폴 레논’은 답장의 지시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인간의 마음은 이어져 있다’는 나미야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한다. ‘달 토끼’와 ‘길 잃은 강아지’ 또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상황과 처지를 꾸밈없이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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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일이다, 고작 편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인생이 뒤바뀔 수 있다니.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둘 점은, 그 어떤 답장을 받았든 그들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들 ‘스스로’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힘든 상황 속 자신의 처지를 편견 없이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 어쩌면 실용적인 조언은 필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지 답장을 해줬을 뿐이지만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나미야 할아버지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좀도둑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편지가 왔으니 답장을 해줬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대리 상담자가 진짜 상담자에게 받은 백지 편지의 마지막 답장은, 갱생을 다짐한 도둑들뿐만 아닌 그간 스쳐간 모든 상담자,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준다. 두고두고 기억되는 것, 명작만이 지닌 힘이겠지.

 

일본 소설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일본식 이름의 많은 등장인물들로 인해 혼란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차분히 읽어가며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정리해보고, 그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말 그대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반전과 감동을 빠짐없이 선사한다. 해리포터를 읽으며 한 번쯤 호그와트의 편지를 꿈꾸듯이, 우리 집 근처에도 나미야 잡화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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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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