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해답은 사랑_존 레논 展

당신은 사랑, 하고 있습니까?
글 입력 2018.12.2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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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은 사랑_존 레논 展

당신은 사랑,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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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d-in 캠페인 (존 레논 展)


존 레논 展을 보기 위해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길,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구청 앞에는 한 남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트럭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챈 사람들은 불쾌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들 속에서 남자는 묵묵히 피켓을 들고 서있었다. 난 남자를 지나쳐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먹자골목에 다다르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전단지를 들이밀었다. 손을 꺼내기가 귀찮아 짧게 목례를 하고 지나쳤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마찬가지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봤지만 아주머니는 신경 안 쓴다는 듯 새로운 사람들에게로 전단지를 내밀고 있었다. 도착한 전철역 입구에는 구걸하는 사람이 엎드려있었다. 오전이라 돈이 한 푼도 모여있지 않다.


지하철에서는 내내 졸았다. 1시간 정도를 꼬박 졸았는데도 내릴 때가 되니까 몸이 무겁고 피로했다. 미세먼지로 눈도 뻑뻑하고 목도 아팠다. 누워서 좀 자고 싶다, 생각을 하며 전철역을 빠져나오는데 <빅이슈>를 판매하는 남자가 보였다. 잠시 표지에 눈길을 두다가 고개를 돌렸다. 버스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남부터미널 역에서 예술의전당까지는 두 정류장이다. 그 사이 창밖에선 "규탄하라"라고 외치는 거대한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버스가 잠시 정차한 사이, 왼편에 앉은 사람들은 창 너머의 그 거대한 현수막을 바라봤다. 하지만 다시 버스는 출발했다. 시야로 예술의전당이 들어오자 조금 전 본 현수막은 희미해졌다.


피로하다는 생각을 했다. 해결할 수 없는 아픔들. 그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속수무책의 외침들은 나에게 스트레스였다.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 저런 것들은 그만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친다, 피곤하다를 되뇌며 도착한 한가람 미술관. 그곳에선 그런 나를 반기듯 청재킷을 입은 존 레논이 다리를 쭉 뻗은 채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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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즈 (존 레논 展)
 

존 레논 展에 오기 전 내가 중점을 두고 살펴봤던 부분은 '평화 운동가'로서의 존 레논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타이틀에 맞게 존 레논의 다양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처음 나를 맞이한 존 레논은 한 사람의 '아들', '남편', '아버지'로서의 모습이었다. 그를 외롭게 한 아버지, 그리고 의지가 되어준 이모 미미, 첫사랑이자 첫 번째 아내인 신시아 파웰, 늘 존을 지지해준 이모부 조지 스미스. 존 레논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 이외에도 매니저 브라이언 사무엘 엡스타인,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이 존의 곁에 있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곁에 있었을 테다.

존 레논을 스쳐간, 혹은 그에게 머물렀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허무하고 복잡했다. 사진 속 그들은 대부분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그저 행복한 순간 사진기를 들어 올린다. 그 순간을 포착해 영원으로 남긴다. 그들 중 누군가는 존 레논을 깊이 사랑했으며, 또 그와의 오랜 미래를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존 레논의 인생에 작은 발자국만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저문다. 존 레논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다가올 크고 작은 변화들을 모른 채, 그저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혹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웃고 있다.


이 모든 곳들은 내가 아직도 기억할 수 있는

연인과 친구들의 추억들을 품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이미 떠나고,

아직 남은 사람들이 있죠


난 살아가면서 그 모두를 사랑해 왔어요


- in my life (비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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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존 레논 展)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룬다. 우리의 인생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스치고, 통과하고, 흔들고, 잠재워준 무수한 사람들의 손길이 모여 지금의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닿아있던 사람들이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기억하는 존 레논의 모습 역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뒤의 모습이다. 만약 그가 신시아를 만나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Hey jude'라는 곡이 없었을 테고, 영화 'How I won the war'를 촬영하지 않았더라면 관심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며, 또 오노 요코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은 점묘화다. 무수한 작은 점들이 모여 지금의 완전한 형상을 이룬다. 새로운 색을 덧칠하면, 멀리서 또 어떤 빛으로 보일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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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즈의 음반들 (존 레논 展)


존 레논의 인생을 논할 때 음악은 절대 빠질 수가 없다. 각 전시 구획마다 테마에 맞게 그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그가 사용했던 기타와 피아노 등 유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그의 노래 <imagine>과 <love>를  감상할 수 있는 방이었다. 그 방에는 생전 그가 사랑했던 피아노 한 대와 스크린, 그리고 의자 몇 개가 놓여있었다. 오로지 스크린 불빛만이 방을 밝혔다. 그가 직접 앉고 만지고 연주했을 피아노를 곁에 두고 존 레논의 음악을 들으니, 마치 그의 혼이 피아노 주변을 맴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피아노는 마치 혜안을 가진 사람처럼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imagine'이 흘러나오면서 영상은 우리에게 전쟁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죄 없는 사람들. 이념으로, 종교로 자신과 관계없는 싸움 속에서 신음하는 무고한 영혼들을 보았다. 빠르게 전시장을 통과하던 사람들도 모두 발을 멈추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숨을 죽인 채 서있었다. 우리는 모두 엇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발매 당시 'imagine'은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라는 가사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비판받았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방에서 imagine을 감상한 후엔 더 이상 그 비판에 공감할 수 없었다. 허깨비를 좇으며, 신음하는 국민들의 흐느낌을 외면하는 국가. 도대체 국가가 뭐길래. 누군가의 생명과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데, 마치 더 중요한 것이 있는 양 구는 국가를 우리는 정말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얼마 전 읽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생각났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해낼 수 일을 것처럼


- 소년이 온다,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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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레논의 곡 '사랑' (존 레논 展)



<imagine>과 <love> 두 곡이 나란히 배치된 이유를 생각해봤다. 모든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상상을 해보자는 'imagine'과 사랑에 대한 단상을 나열한 'love' 사이에 어떤 교집합이 있는 걸까. 사랑과 평화, 익숙한 배치지만 한 번도 두 개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 적은 없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자판기였다. 어두운 방 한구석에는 내 키 반만 한 낮은 상자가 있었는데, '문학 자판기'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기계였다. 버튼을 눌러 짧은 글 혹은 긴 글 하나를 받을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나는 마치 포춘 쿠키를 쪼개는 기분으로 '긴 글'을 눌렀다. 내가 받은 쪽지는 이것이었다.



사랑이 해답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무엇이든, 어디서든 사랑이죠.

우주의 근본적인 주제가 사랑 같습니다.


가치 있는 모든 일들이

결국 이 사랑, 사랑, 사랑이란 것이죠.

사랑하려고 사랑받으려고

환상적인 표현을 하려고 애쓰는 거죠.


- 존 레논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의 사랑일,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내가, 네가, 우리가 다치질 않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끝끝내 사랑하며 살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평화를 바라는 마음의 시작 아닐까? 결국 우리는 사랑하려고 사랑받으려고, 그렇게 영영 사랑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 평화, 전쟁 반대, '규탄하라'라는, 무수한 말들을 외쳐대고 있는 거 아닐까.


전시장에 오기까지 나를 스쳐간 사람들을 떠올렸다. 1인 시위를 하던, 전단지를 나눠주던, 빅이슈를 판매하던 사람들. 거대한 기업의 건물 앞에 커다란 현수막을 걸었을 사람들. '규탄하라'라는 말을 적으며 했을 생각들. 그들의 바람과 소망. 내가 외면하며 지나쳐온 모두가 사랑의 주체였다. '저렇게 해서 뭐가 달라진다고 이러는 거야?'라고 짜증 냈던, 속수무책의 외침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그저 묵묵히 살아가고 사랑하는 중이었다.


자신을 삶을 위해,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사랑받아야만 할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것들을 하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집에 가는 길에는 빅이슈 한 권을 사야지.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나가야지. 사람들을 사랑해야지. 미워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나를 보며 스크린 옆 우두커니 선 피아노가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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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링스톤지의 표지 (존 레논 展)



존 레논 展은 비틀즈, 음악, 사랑, 평화. 존 레논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되짚으며 그를 뒤따라 걸어볼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 평소 존 레논을 좋아하던 사람에게는 그를 추억하고 되짚어 볼 좋은 시간이, 그의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에겐 한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이자 평화 운동가였던 그의 삶 속을 걸어볼 좋은 기회가 될 '존 레논 展'.


410여 점의 사진과 유품, 최대 규모의 전시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일생을 모두 담기엔 턱없는 크기였다. 사진과 사진 사이, 글과 글 사이 나는 이따금 멈춰 서서 빈 부분을 상상으로 메웠다. 그리고 그 상상을 가능케한 건 이어폰 속 흘러나오는 그의 음악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큐레이터처럼 설명을 해주는 듯했다. 사진 속 의미, 이야기, 하고 싶었던 말. 그의 목소리를 따라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많은 사진과 글과 음악들을 지나쳐 걷다 보면, 그 끝에 존 레논이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의 물음과 만날 수 있었다.


"사랑, 하고 있습니까?"



[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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