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쓸모 없음의 해피엔딩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글 입력 2018.12.22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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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로 인간을 논할 때



기린이 된 아버지, 너구리가 된 상사. 박민규의 소설 속 인물들은 (꽤 자주) 동물로 변한다. 마법 세계에서 뱀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나, 가문 전체가 12지신으로 변신하는 이야기와는 다른 결이다. 박민규의 세계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하다. 소설 속 아버지와 상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없어’진 개체였고, 그래서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변신되었다. 달리 말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인간은 그 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갈 자격조차 잃는 거다. 무용지물이 된 인간은 그렇게 동물이 되었다.


그리 어색한 논리는 아니다. 오늘 하루 쓸모없어서 버린 것들을 세어보시라. 일회용 커피잔, 과자 껍데기, 코 푼 휴지, 잉크가 다 떨어진 볼펜 등등의 것. 세자면 차고 넘친다. 그걸 버린 이유가 무엇인가? ‘효용 가치’가 없어서다. 그러니 이상할 것도, 불쾌해할 것도 없다. 소비사회란, 자본주의 사회란 으레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리니. 그 메커니즘을 (박민규식으로) 인간에게 적용하면 기린이 되고 너구리가 되어 세계를 배회하는 것이고, 혹은 (아서 밀러식으론) 쓸쓸히 죽은 후 초라한 장례식만이 치러지는 것이다. ‘쓸모’로 인간을 논할 때 벌어지는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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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더웨이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도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로봇이라는 캐릭터 설정 때문에 4차 산업 시대의 사랑 이야기로 점치는 사람도 적잖지만, 이 작품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뻗어 나온다. 효용이 기치가 된 시대. 그래서 효용 없는 것들이 버려지는 시대. 인간도 마찬가지인 시대. ‘이곳’이 먼 훗날 미래 한국으로 치환되고 ‘지금의 우리’는 인간을 위해 고안된 ‘헬퍼봇’으로 대치된다. 그러니까 이건 오늘 우리의 이야기다.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철저한 목적의 산물 헬퍼봇. 헬퍼봇 5인 올리브와 헬퍼봇 6인 클레어는 구형 로봇이다. (이때 ‘5’, ‘6’는 휴대폰 시리즈를 넘버링할 때의 그것과 같다) 스마트폰 초기 시리즈가 요즈음엔 고물 취급을 받는 것처럼 이들 역시 주인에게 버려진 후 고물들만 모여 사는 헬퍼봇 아파트에 방치된다. '쓸모를 위해 고안된 것들의 쓸모'가 없어졌을 때, 그때의 '합리적인' 수순이다. 도구화된 인간의 삶을 논하는 우리 시대의 면면과 다를 게 없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이 두 ‘쓸모없는 존재’를 통해 가장 ‘쓸모없는 감정’인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없는 사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큐베이팅부터 트라이아웃, 초연, 앵콜, 지금의 재연에 이르기까지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받아온 작품이다. 한 시상식 당 받은 상만 해도 압도적이고,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고르게 얻었다. 특별히 기발한 이야기냐 하면 그건 아니다. 국내 뮤지컬에서 로봇을 주인공으로 삼아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건 획기적이라 할 만하지만, 이야기적으론 꽤나 흔한 서사다. 두 로봇이 만나고 여행하며 사랑하다가 결국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라, 로맨스의 가장 주된 갈등이 고장, 폐기라는 이 ‘착한 전개’라. 다 알만한 감정에 알만한 전개인 거다.


하지만 잘 만든 작품은 단순함과 복잡함, 대중성과 작품성을 하나의 태피스트리로 엮어내는바, <어쩌면 해피엔딩>은 알만한 단순함으로 날카로운 복잡함을, 남녀노소를 울고 웃게 만드는 따뜻함으로 뮤지컬만의 장르적 품새를 능히 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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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더웨이브



주인공 올리버와 클레어는 인간의 효용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국 인간에게 효용을 부정당한 존재들이다. 헌신했던 주인에게 버려지는 것은 물론, 생존을 위한 부품도 단종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효용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돈을 들일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먼 미래 한국의 ‘쓸모없음’이 된 존재들은 끝이 정해져 있는 생을 하루하루 살아간다.


자신의 방안에서 자족하던 두 인물은 클레어의 노크 세 번으로 만난다. 충전기 렌탈(?)이라는 필요에 의해 시작된 세 번의 노크는 점차 관심과 호감으로 이어진다. 정해진 일정을 지키는 걸 좋아하던 올리버에게 클레어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변수였고 영원한 마음을 믿지 않았던 클레어에게 올리버는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국 두 인물이 사랑에 빠지는 건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선) ‘쓸모없음’의 극치다. 프로그래밍을 뚫고 올라온 사랑이란 변수. 이건 작동 중지가 정해져 있는 이들에겐 필연적으로 아프고 서글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은 시간을 약간의 행복과 크나큰 슬픔으로 물들일, 잡아야 할 버그에 가깝다. 합리와 자본의 세계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들이 가장 ‘쓸모없는’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이게 <어쩌면 해피엔딩>의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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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더웨이브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의 품새는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단 다분히 과거지향적이다. 사랑이란 0과 1의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체계인바, 작품은 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삼지만 작중에서 추구하는 건 도리어 예스럽고 근본적인 가치다. 이는 두 사람의 서사 군데군데에 배치된 아날로그적인 장치가 구축한다. 오래된 재즈 레코드 음반, 화분, 반딧불이, 종이컵 전화기, 우비가 그렇다. 헤어짐을 노래하는 장면에서 이들이 읊는 사랑의 기억을 들어보시라. 사소한 인간의 일상, 그것도 아날로그적인 장치들이 사랑의 추억으로 노래되지 않나.


이 테마를 견인하는 건 단연 음악이다. 현악기와 피아노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꾸리면서도, 곳곳에 재즈 선율을 가미한 음악은 <어쩌면 해피엔딩>만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배가시킨다. 특히 두 사람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면서, 이 작품의 주제인 소통과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내는 '노크 소리'는 넘버 곳곳에 녹아 있다. 그걸 알아채는 순간, 이 작품이 참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지더라. 듣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 무엇하나 부족한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을까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변수, 사랑, 이 ‘쓸모없음’에 천착하는 걸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에 있다. 두 '쓸모없는 존재'가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전개는 지극히 따뜻하고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혼자 지내는 것보다 함께 있는 걸 더 충만하게 느끼고, 서로의 흔적을 방안에 남기고, 타인과의 접촉으로 자신의 감각을 느끼며 두 로봇은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사랑'이란 감정을 학습한다.


하지만 사랑의 끝엔 정해진 이별, 예정된 슬픔이 있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듯, 이 구형 로봇의 삶에도 끝은 있다. 클레어에게 남은 시간은 300일에서 500일, 올리버에게 남은 시간은 900일에서 1200일. (올리버의 말에 따르면, 제조사가 이윤 추구를 위해 충전기를 바꾸면서 헬퍼봇6의 내구성이 약해졌다고 한다. 이 역시 지금, 여기의 자본주의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 대목) 남은 시간 동안 사랑엔 슬픔의 색채가 더해질 것이다. 서로의 몸이 망가져 가는 걸 바라보고 그 고통을 함께 느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하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한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 사랑이나, ‘어쨌든’ 행복하게 살았다는 로맨틱 코미디 속 사랑과는 다르다. 이 사랑은 아플 걸 알면서도 한 발 내디디고, 슬플 걸 알면서도 반복하는, 참 효용이라곤 한 스푼도 없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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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더웨이브



이 사랑의 질감엔 ‘기억’의 문제가 더해지며 메시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기억이란 선택과 배제를 통해 만들어내는 오롯한 ‘나’의 것인바, ‘내가 너를, 너와의 행복하고 슬펐던 시간을 기억한다’라는 건 사랑의 또 다른 일면인 거다. ‘당신을 기억한다’는 말이, 당신이 겪은 일을 ‘잊지 않는다’는 말이 존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걸 보면, 기억하겠다는 말은 사랑해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올리버는 사랑의 기억을 지우지 않았고, 클레어는 사랑의 기억을 지운다. (배우에 따라 지우지 않은 듯한 클레어도 있다) 그리고 다시 울리는 노크 소리. 사랑과 슬픔의 기억을 안고 사는 존재와 그 일련의 것들을 지워버린 존재는 재차 만난다. “듀크 엘링턴의 즉흥 연주는,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면서도 그 아래 하모니는 끊임없이 변주한다”는 스쳐 지나가는 대사처럼,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은 반복되면서도 그 안의 다른 하모니로 계속 변주될 것이다. 언젠간 멈출 기계, 언젠간 찾아온 이별, 언젠간 다가올 슬픔. 기억하기를 택하면서 파생되는 문제는 효용 없음의 끝이다. 하지만 존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길 택한다. 클레어가 다시 문을 두드리고 올리버가 다시 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사랑은 끝을 바라보며 또다시 시작된다,




무쓸모의 해피엔딩



'어쨌든', '그래서'이기 어려운 인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의 문법은 눈물겹게 예쁘고 애틋하게 사랑스럽다. “인간은 죽을 줄 알면서도 산다”는 옛 드라마의 명대사처럼, 인간 존재는 누구든 끝이 있단 걸 알면서도 하루를 살아가고 빛바랠 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참 비합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일 거다. '쓸모없는' 존재들의 '쓸모없는' 사랑은 쓸모의 세상이 해명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심연을 예쁘고 따뜻하게 보여준다. 상당히 멋스러운 음악과 아기자기한 소품이 만드는 짜임새까지 더해지면 작품은 더없이 진진해진다.


사랑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는 설정이나, 일관성 없는 인간 개체 묘사는 다소 성글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해피엔딩>을 지지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따뜻한 시선, 따뜻한 감정 와중에도 인간 본연의 문제를 잡고 간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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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더웨이브



어제는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친구의 부재중 전화를 못 본 척했다. 또 오늘 누군가는 하등 도움되지 않는 관계를 정리했을 거다. 그게 친구가 됐든, 연인이 됐든, 부모가 됐든. 사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와 함께한다는 건, 그리고 사랑한다는 건 생각보다 쓸모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쓸데없는 감정낭비인지도, 안 그래도 복잡다단한 생에 슬픔과 힘듦만 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수미쌍관을 장식하는 '우린 왜 사랑했을까'란 넘버처럼, 그런데도 왜? 우린 왜 사랑했을까? 그리고 왜 사랑할까?


효용의 논리를 인간에게 적용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에 <어쩌면 해피엔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의 가능성을 믿는다. 우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사랑과 위로를 믿는다. ‘화분은 햇볕에 너무 오래 두면 안 된다'는 말, ‘종이컵 전화기를 사용하는 법’, ‘오래된 레코드 지직거리는 따뜻한 소리’, ‘밤에 외출할 땐 노란 비옷 안 입어도 된다’는 말, 이 같은 ‘눈부시게 예쁜 기억’들도 늘상 아픔과 함께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행복과 슬픔이 공존한다 해도 우리가 서로 연결된다는 건, 사랑한다는 건 결국 해피엔딩이 아닐까? 글쎄요. 어쩌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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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2018>



공연장소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공연기간

2018년 11월 13일 (화) ~ 2019년 2월 10일 (일)


공연시간

평일 8시 | 토 3시, 7시 | 일, 공휴일 2시, 6시

(월요일 공연 없음)


티켓가격

R석 66,000원 | S석 44,000원


관람등급

만 13세 (중학생) 이상 관람가


관람시간

100분


제작진

작,작사 박천휴 | 작,작곡 윌 애런슨

연출 김동연 | 음악감독 주소연


출연진

김재범, 문태유, 전성우, 신주협, 박지연

최수진, 강혜인, 성종완, 양승리, 권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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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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