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다가도 모를 <지중해의 영감>, 모르다가도 알 것 같은 그 느낌에 대하여

도통 명쾌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어떤 느낌만을 받았다고 말할 수밖엔.
글 입력 2018.12.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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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삶을 초월하는 어떤 영혼의 상태를 엿본 적이 있다.

그 상태에서 보면 영광이란 아무 것도 아닐 것 같고, 행복 그 자체도 거기서는 부질없을 것 같다.

- <서문>에서 플로베르의 말을 인용하며



쉽게 그려지지 않는 풍경들이었다. 장 그르니에의 언어로 표현된 지중해는 단순 풍경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은 "문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감수성, 그리고 행간을 읽어내는 시적 자질을 요구"했고, 그 어떤 면에서도 부족한 난 도통 명쾌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어떤 느낌만을 받았다고 말할 수밖엔. 알다가도 모를 <지중해의 영감>이었다.




어떻게 읽었나:
장 그르니에의 시선을 따라가며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의 에세이스트이자 철학자로, 제자였던 알베르 카뮈로 인해 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장 그르니에의 또 다른 대표작 <섬>에 카뮈가 개정판 서문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사고로 죽은 후 장 그르니에는 <카뮈를 추억하며>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를 뛰어넘어 문학적 동지이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동반자였다. 두 사람 모두에게 '지중해'의 자연, 특히 바다와 태양은 정신세계 가장 아래에 자리한 뿌리였고 작품의 근간이 되었다.



우리는 사물들을 알아본다. 흔히 말하는 연인들의 벼락 같은 사랑이 그렇듯 어떤 풍경 앞에 서면 가슴이 방망이질치고 달콤한 불안, 오래 지속되는 관능을 느낀다. 강변에 널린 돌들, 찰랑거리는 물소리, 갈아엎은 흙의 따뜻함, 석양 무렵의 구름에 대해 어떤 우정이 솟아난다.


나에게 그런 풍경들은 바로 지중해의 풍경들이었다.


/109p



장 그르니에는 <지중해의 영감>에서 그가 젊은 시절 머물거나 여행했던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에 대한 내면화된 인상을 담아낸다. 이 책 속의 풍경들은 단순히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장 그르니에의 철학적이고 시적인 표현들로 그려지고 있기에 어떤 논리적인 이해로는 그의 시선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말을 따라 읽고 그 느낌과 분위기를 느껴보는 수밖에.


장 그르니에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느낀, 지중해의 자연을 바라보는 장 그르니에의 시선은 관조적이었다. 찬란한 지중해의 빛은 특유의 선들과 형태들로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냈지만, <지중해의 영감>의 글에서 보이는 장 그르니에의 시선은 깊고 고요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지중해에 대한 그의 어떠한 애정같은 것이 엿보인다.




어떻게 읽을까:
문득 찾아오는 침묵. 그 없음의 충만에 귀를 기울이라.


끝내는 읽히지 않던 문장들과 이해할 수 없던 표현들. 그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배회하다가 '옮긴이의 말'과 '파트리크 코르노의 해설'을 향해 도돌이표처럼 돌아가기를 여러번. 나침반 같은 그들의 해설이 없었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르니에는 자신이 지중해 세계에 대하여 느끼는 매력을 "바람직한 세가지 S, 즉 침묵(silence), 태양(soleil), 고독(solitude) 이라는 유명한 공식으로 압축하여 표현했다. 이 세가지 덕목은 발레리가 언급한 세 가지 신들, 즉 "바다, 하늘, 태양"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결국 소멸하고 말지만 근본적인 재화들인 "바다, 태양, 빛"에 대한 카뮈의 애착을 예고한다.


/229p



아득한 수평선과 작열하는 태양, 그 찬란한 지중해 앞에서 장 그르니에는 오히려 침묵과 고독을 느낀다. 그는 단순하게 이 자연을 찬양하는 것에서 거리를 두고, 현실을 관찰하고 관조하며 그의 사상과 미학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산문을 써냈다. 그리고 지중해의 풍경에서 비롯된 그르니에만의 감수성이 드러나는 그 글이 끝내는 휴머니즘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책 <지중해의 영감>을 읽는 내내 폴 발레리-장 그르니에-알베르 카뮈로 이어지며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지중해의 영감(inspiration)을 나 역시 경험해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아직 내면적 성찰을 동반하는 '창조적 읽기'가 부족한 탓이리라. 알베르 카뮈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30여년간 불문과 교수로 재직한 옮긴이 역시 다 이해하지 못하고 어둠으로 남겨놓았다는 이 책을 무슨 수로 내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그저 그 비슷한 어떤 느낌이라도 받은 것에 만족하고 있다.

열심히 내공을 쌓으면 이 형이상학적 시의 분위기를, 그 속에 담긴 어떤 상징들을 읽어낼 수 있을까? 혹시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오르던 여러 질문들과 그 사이를 메꾸던 침묵이 내가 찾던 정답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어쨌든 명쾌하지 않은 독서가 참 오랜만이라 나름 즐거움이 있었다. 시간이 흐른 후 재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간을 모은채 또 똑같은 문장을 수십번 읽어보며 이해하고자 애쓰겠지만 말이다.



지중해의영감-입체표지.jpg



지중해의 영감
- INSPIRATIONS MÉDITERRANÉENNES -

지은이 : 장 그르니에
옮긴이 : 김화영
출판사 : 이른비
분야 : 에세이
쪽 수 : 240쪽
발행일 : 2018년 6월 30일
정가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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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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