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간의 여유가 마음의 여유를 가져온다 [기타]

나에게 우울을 즐길 시간을 달라
글 입력 2018.12.1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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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한 학기의 끝자락에 와있다. 그래서 너무 너무 너무 바쁘다.


과제와 시험이 나에게 던져주는 마지노선 때문에 스트레스 폭발 직전의 마지노선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다. 이런 때는 휴식이 필요하단걸 알지만, 밍기적거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다. 조금만 더 참으면 그토록 기다리던 방학이 오니까, 쭉 뻗어 있고 싶은 마음을 있는 힘껏 저편으로 밀어버린다.


귀차니즘은 내 평생의 친구지만, 침대에 누워있을 때 이불에서 나오기 싫은 것과 그냥 이대로 지하까지 꺼져버렸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는 것은 약간 다른 문제다. 주인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는지, 귀차니즘이란 놈은 바쁠 때 더욱 극성을 떤다. 안돼, 알잖아. 한눈팔면 주루룩 미끌어질 내 학점을 생각하자. 마음 속으로 되내인다. 이 여유 한 점 없는 시간이 끝나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조금만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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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힘들었던 고교시절에,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거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보면서 우울을 웃음으로 풀었다. 방에 틀어박혀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덮은 채로 재밌는 방송을 보는 것. 뭐, 이 방법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어쩔 때는 오히려 엄청나게 슬픈 영화를 봤다. 슬픈 영화를 보며 질질 짜거나, 새벽감성에 젖어 슬프거나 마음을 위로해주는 시를 읽으며 베고 있는 베개에 눈물자국을 세기고 나면, 조금은 후련한 감정이 찾아오고 피곤함이 덮친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잠이 솔솔 찾아온다.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는 다음날, 다음주, 다음달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방법을 찾아 방전된 상태를 끌어올려야 한다. 무기력증과 우울은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절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천적들이라고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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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오늘 할일을 적어둔 메모를 보려다가 한참 전에 적어둔 자작시를 하나 발견했다.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울한 날이었나보다. 근데 좀 다른 것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의 우울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항상 기분좋고 행복하고 활력넘치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약간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항상 해피한 사람을 보면 느껴지는 어떤 기시감은, 그 사람 어딘가에서 곪아가는 어두운 감정들을 추측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울함을 느낀 과거 언젠가의 나는 마음이 침울하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청승떨 수 있다는 게 현재의 나에게 상당한 사치라는 것을 알았던건지, 우울을 떨쳐내려고 버둥대는 대신 우울을 즐기는 걸 택했다. 이 억겁같은 시간이 지나면 그 언젠가의 나처럼 우울에게 마음 속 방 한 켠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리라.



우울을 즐기는 법


그런 날이 있습니다

우울이 내 방문에 노크하면

굳이 문고리 돌려 맞이하고는

추적추적 비에 젖어 잔뜩 무거워진 우울에게

마시멜로 띄운 따뜻한 코코아를

제일 좋아하는 찻잔에 받쳐 건네주고

내 체온과 침묵의 온도가 같아지길 기다리며

눈꺼풀의 쉼표를 하나 하나 세어보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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