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스페인,맑음] #5. 두 번의 키스, Dos Besos

글 입력 2018.12.1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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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月 첫째 주. 땡볕더위



Besame, Besame mucho(베싸메, 베싸메 무쵸)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여성 가수가 부른 노래, 베싸메 무쵸.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익숙했던 이 가사가 사실 많이 키스를 해달라는 뜻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랬던가. 하지만 스페인에서 '키스'가 가지는 의미는 한국에서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두 번의 키스'라는 뜻을 가진 Dos Besos(도스 베소스)는 아주 일반적인 스페인의 인사법으로 상대를 만났을 때 서로의 오른뺨과 왼뺨을 번갈아대며 입으로 가볍게 소리를 내면 된다.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 이미 들어보았기에 도스 베소스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공손히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에 익숙했던 한국인에겐 먼저 악수를 건네는 일도 힘겨웠는데. 뺨이라니 당황스러워라.


나의 첫 도스 베소스 대상은 집주인 아저씨였다. 말라가에 도착하자마자 6개월 동안 지낼 집을 다니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찾은 나의 스위트홈. 나름 큰 방도, 바다와 가까운 위치도 마음에 들었으나 사실 집을 계약하기로 결정한 큰 이유는 집주인 아저씨였다. 우리 집주인 아저씨지만 나에겐 삼촌과도 같은 존재가 된 Victor. 아저씨의 첫인상은 '깐깐하다'였다. 대충 하면 된다며 제대로 된 계약서도 보여주지 않던 다른 집주인들과 달리 처음부터 아주 깔끔한 계약서와 함께 셰어하우스에 살게 될 때 지켜야 할 규칙 리스트들을 보여주던 빅터 아저씨. 그 모습을 보며 참 깐깐하면서도 집 관리에 많이 신경 쓰고 계시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뢰가 가는 모습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빅터가 좋았던 건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한국 이름은 참 발음하기 어렵다고 한다. 나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갔기 때문에 그동안 만났던 외국인들에겐 영어 이름이나 스페인어 이름을 말해주고는 하였다. 하지만 빅터 아저씨는 제대로 이름을 불러야 서로 간의 유대감과 신뢰가 형성된다며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방법을 거듭 연습하셨다. 처음엔 무슨 중국인 이름처럼 야오씬~야오씬~이라고 부르시기도 하셨지만 틀렸다는 말에 금세 풀이 죽고 그래도 또다시 연습하는 모습에 좀 감동받았다.


그렇게 여러 번 방을 보러 왔다가 계약서를 작성한 후, 아저씨는 처음으로 악수가 아닌 도스 베소스로 인사를 건넸다. 처음 경험하는 도스 베소스에 흠칫 당황하긴 했지만 겉으로는 되게 익숙한 척 오른쪽 한번, 왼쪽 한번, 도스 베소스를 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날의 첫 도스 베소스를 떠올리면 아저씨의 덥수룩한 수염 덕에 까칠까칠했던 느낌, 낯선 곳에 드디어 내 공간이 생겼다는 안도감, 그리고 누군가 나를 환영해준다는 따뜻한 기분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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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하고 따뜻한 내 방, 내 공간



하지만 아저씨처럼 친근한 사람이 아닌 사람과 도스 베소스를 하기엔 나는 너무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규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수강한 어학원 수업, 무섭기로 소문난 한 선생님이 '너넨 스페인에 왔으니깐 이 문화에 익숙해져야 해! 다들 지금부터 반에 있는 모든 친구들과 도스 베소스를 하도록!'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양볼이 닳도록 도스 베소스를 한 날이 있었다. 그냥 아프다고 학원 오지 말 걸, 도스 베소스는 도대체 왜 하나, 이 선생님은 또 왜 이렇게 강압적인가, 그냥 교실을 뛰쳐나갈까 등등. 짧은 순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외국인들은 개인 공간, 즉, personal distance를 유지하는 걸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던데 스페인 사람들은 왜 처음부터 양볼을 내어주는 거냐고 홀로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쭈뼛쭈뼛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과 도스 베소스를 시전.


사실, 후기를 이야기하자면 그날 수업 이후 도스 베소스는 꽤 괜찮은 인사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반에 몇 없는 동양인이라는 생각에 나도, 다른 외국인 친구들도 서로 모종의 거리감을 느끼곤 했는데 그날 도스 베소스를 하고 서로의 이름이나 학과, 일상 이야기를 짧게나마 주고받으며 그 거리감이 사라졌달까. 확실히 친해지는데 특효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만큼이나 정이 넘치고, 정열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뜨거운 스페인 사람들에게 딱 맞는 인사가 아닐까.


아직도 가끔은 어색하고 꺼려지기도 하는 도스 베소스이지만 요새는 친한 친구들이 도스 베소스를 안 해주면 서운한 기분도 드는 것 같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 누군가를 처음 만난다면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야 할 텐데. 벌써 이 따뜻하고도 거리감 없는 스페인식 인사가 그리워지는 것 같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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