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앨리스먼로의 <착한여자의 사랑> [도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전하는 '여자'로서의 삶을 듣다.
글 입력 2018.12.0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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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 단편 소설을 주로 썼던 그녀의 새로운 단편 모음집 <착한 여자의 사랑>이 출간됐다. 그 중 티저북을 통해 <자식들은 안 보내>를 읽어보게 되었다. 단편이라 부담없이 읽어야겠다는 기대는 첫 장부터 와장창 부셔졌다.




때로는 무의미한 것들이 예고없이 다가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자식들은 안 보내>는  엄마이자 여자, 그리고  연극배우로서 이 모든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 위태로운 여성 '폴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생님인 남편과 함께 교육자 사교 모임에 참석한 폴린은 파티에서 우연히 연극 출연을 제안받는다. 그녀가 연기에 소질이 있어서도, 연극에 대한 관심이 다분히 높아서도 아니다. 그녀는 단지 연극의 원작 책을 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다. 지역 주민들끼리 하는 소규모 아마추어 연극이었지만 그런 건 폴린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설렘과 함께 매일 연극 연습만을 기다리게 된 폴린에게 이건 명백한 '사건'이었다.


그녀가 연극 연습을 기다리는 것에는 가정일에 대한 해방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이를 재우고 잠깐 짬 나는 시간을 활용해서 대사를 연습하는 그녀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심지어 시부모님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에서도 그녀는 연극의 끈을 놓지 않고 틈틈히 연습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녀가 연극에 그토록 애착을 보인 것이 비단 그러한 이유 뿐이었을까. 그녀의 마음 속에 서서히 자리잡는 한 남자가 있었다. 연극 출연을 제안했으며, 연극을 연출한 남자 '제프리'였다.




놀랍도록 충동적이며, 놀랍도록 이성적이다.



앞서 말했듯 폴린은 가족여행을 가서도 연극 연습을 충실히 한다. 시부모님까지 함께 동행한 그 여행말이다. 그리고 그 여행은 예상치못한 결말을 빚고 만다.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이 잠시 외출을 한 사이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제프리의 전화. 자신은 여행지 근처에 있으며, 잠깐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약속지는 모텔. 누가 봐도 이상하다. 누가 봐도 오해할 상황이고, 누가 봐도 다분히 의도가 있는 부름이다. 하지만 그녀는 별다른 고민없이 그에게로 향한다.


'제프리'는 말한다. 우리 둘이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 남편에게 말하라고. 둘은 몸을 섞는다. 폴린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감을 느낀다. 제프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매력적인 남성의 모습도 아니었으며, 남편에게 말하면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여인이 된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한다. 동시에 자신에게 남은 돈을 확인한다. 이걸로 얼마정도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해보고, 당장 필요한 생필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놀랍도록 충동적인 동시에, 놀랍도록 이성적이다.




"자식들은 안 보내."



마치 자신도 이 상황이 대수롭지 않은 척 '연기'하며 내뱉은 남편의 한 마디였다. 그에겐 폴린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보다도 그러한 상황이 자신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했다. 태연한 척하면서 '나에게 너는 애초에 이 정도의 가치밖에 아니었어.'를 확인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것, 마담 보바리가 그토록 꿈꿔왔던 것. 안나 카레니나가 실천했지만 비극으로 끝맺는 것. 하지만 안나 카레니나도 이처럼 충동적이진 않았다. 폴린의 행동은 어찌 보면 일탈 그 이상이 아니었다. 자신이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남자와의 잠깐의 일탈. 그녀는 모텔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남편에게 어떤 식으로 거짓말을 할지 궁리했다. 결코 돌아가지 않거나, 사실을 뱉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시부모의 그녀를 무시하는 태도에 신물이 나서, 제프리가 너무 매력적인 남자여서 비롯된 '단 한 번의 실수'라고 포장하고 싶지 않다. 모든 선택에는 그 대가가 따른다. 때로는 폴린의 경우처럼 한순간의 선택이 주는 대가가 지나치게 가혹할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결과에는 자신의 선택이 개입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남편의 이 말 때문이 아닐까.



아내는 한번 걷어차줘야 움직인다니까요. 브라이언이 제프리에게 말했다. 어린 노새 같은 면이 있거든요. 첫걸음을 떼게 하기가 어려워요.



순진함 이상으로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거절에 미숙한 착한 여자 폴린. 어쩌면 그녀는 제프리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무의식중으로 자신의 앞날을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연극을 하며 좋아했던 대사는 이랬다.



외리디스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어. 하지만 그녀는 오르페를 사랑해. 어느 면에서는 오르페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녀가 그를 더 제대로 사랑해. 그녀가 그를 더 제대로 사랑하는 건, 그녀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야. 그녀는 그를 한 인간으로서 사랑해.



한 여자로서 존중받고 사랑받고자 했던 폴린. 차마 그녀의 삶에 어떠한 비난도 퍼부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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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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