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tory of My Life, 우리의 이야기 [공연예술]

당신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글 입력 2018.11.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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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린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친구가 죽었다.

열 손가락으로 셀 수조차 없는 세월 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죽었다. 우리만의 전통까지 만들어 기념하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손끝에 닿은 눈송이마냥 사라졌다.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눈 감아버린 지난 세월도 함께 녹아내린다. 어렸을 적 작은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송덕문을 쓰기는 써야 하는데, 망자의 수식어조차 정하기 어렵다. 가장 친한? 좋은? 오랜? 종이에는 차마 채우지 못한 빈칸만 늘어가고 머리에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만 가득 찬다. 왜 그랬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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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친구의 송덕문을 쓰며 서로가 함께 했던 세월을 되짚는다는 줄거리만 보면 어쩐지 뻔한 감동 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독특하다. 바쁜 일상 안에서 놓칠 수 있는 ‘먼지처럼 작은 사건’을 하나하나 조명하며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비춘다. 놓친 것에 대해 후회하기보다,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인 추억을 회상하는 게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중심이다.
 

“그날 핼러윈 낮에 마주 앉은 두 눈에 우리 엄만 천살 보고 난 널 봤어.”


토마스와 앨빈의 우정은 일곱 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렸을 적 돌아가신 엄마의 옷차림을 하고 핼러윈 파티에 나타난 앨빈과, 영화 ‘멋진 인생’ 속 천사 클라렌스 복장을 하고 나타난 토마스는 한 눈에 인연을 알아본다. 서로의 천사가 되어 준 토마스와 앨빈은 급속도로 친해지고, 앨빈이 추천한 책 ‘톰 소여의 모험’을 계기로 토마스는 작가의 꿈도 품게 된다. 앨빈의 책방 ‘새 책과 헌 책방’은 두 사람의 유년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일종의 아지트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일곱 살 시절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법, 토마스는 점점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된다. 반면 앨빈은 순수한 일곱 살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채 점점 변해가는 토마스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본다. 대입을 앞둔 토마스는 대학에 보낼 단편 원고 하나를 앨빈에게 먼저 보여주게 된다. 제목은 ‘나비’, 토마스와 앨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였다.


“너는 강한 나비야. 나의 힘이야. 네가 춤출 때 난 하늘 위를 날 수 있단다. 네 몸으로 공기 흔들며 그 춤을 출 때면 네 날갯짓에 이 세상이 변해.”



  

멍하게 이야기를 듣던 앨빈의 표정은 점점 굳어진다. 토마스가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가 서운했던 탓일까?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그뿐일까? 저 아름다운 단편 소설을 대학에서 거부할 리가 없고, 그렇다면 토마스는 도시로 떠나게 된다. 추억 속에 사는 사람에게 현실이란 더 없이 서운하고 아픈 비극이다. 한 발짝, 한 발짝 멀어지는 친구를 보며 앨빈의 세계는 점차 좁아졌을 것이다. 아빠와 토마스만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토마스가 떠난다면 제 세계의 반절이 사라지는 것일 테니.

하지만 앨빈은 막지 않았다. 토마스는 대학으로 떠났고 그들이 함께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만 되면 영화 ‘멋진 인생’을 보고 눈 위에서 눈 천사를 만드는 그들의 전통은 굳건했지만 만남의 횟수는 줄었다. 각박한 현실에 치이며 일에 눈이 멀어가는 토마스와 제 자리를 곧게 지키며 토마스를 기다리는 앨빈의 대비는 극이 진행될수록 선명히 드러난다.


“둘러 봐, 톰. 영원토록 저 폭포가 보여. 호수에 돌멩이 치는 물결 같이 멈추지 않고 시간 너머 남아. 네 몫이야. 내 삶의 이야긴 다, 네 거, 둘러 봐, 톰. 네 거야."





토마스와 앨빈은 영원한 친구다. ‘친구’, 참 뻔한 단어지만 그들의 관계를 명확히 전달할 다른 수식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토마스와 평생을 함께 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할 친구가 바로 앨빈이다. 앨빈 없이는 글을 쓰지 못하는 토마스, 그리고 토마스 없이는 살아가지 못했던 앨빈. 어쩌면 우리의 삶도 토마스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바쁘고 힘든 현실 탓에 먼지처럼 작은 관계들은 외면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먼지처럼 작은 사건이 인생을 바꾸고 삶을 뒤집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미 삶이 변한 뒤에야 깨닫는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할수록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변화에 적응하느라 바빠 바위처럼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까지 시선을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게 변명임을 누구나 알지만 좀처럼 마음을 고쳐먹기 쉽지가 않다. 내일 연락하지 뭐, 다음에 찾아가지 뭐. 언젠가 그 ‘내일’과 ‘다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날이 온다는 건 외면한 채로 그렇게 살아간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나의 이야기이고 당신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당신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 언제인지, 아직 놓치지 않았다면 한 번 찾아가보는 건 어떨지. 이 작품이야말로 눈 내리는 겨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사진.jpg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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