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낯설고 아름다운 세계,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도서]

‘나’를 구성하고 있는 부조리한 세계와 폭력적인 사람들
글 입력 2018.11.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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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나이, 신체, 지위, 국적 인종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합니다.



2017년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은?

 

 

시집을 제대로 분석하기 전에 임솔아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임솔아는 <옆구리를 긁다>라는 작품으로 2013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통해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시로 먼저 등단을 했지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장편소설인『 최선의 삶』을 먼저 출간하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는 가출한 청소년들이 마주한 사회를 그려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그들 간의 갈등과 잔혹한 폭력을 자세하게 풀어낸다. 그런 지점이 첫 시집인『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과도 연결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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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을 살펴보자. 괴괴하다는 쓸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고요하다를 뜻하는 형용사이다. 괴괴하다와 착하다라는 단어는 동떨어져 있어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집을 다 읽고 나면 시인이 왜 두 단어를 제목으로 엮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시집의 색은 빨간색이다. 단순히 시집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빨간색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 이 시집에서 빨간색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빨간색은 고통을 참아내거나, 폭발시킬 때 피어나는 색이다. 시집의 마지막에는 <빨간>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빨간색에는 작가가 투영되어 있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은 2016년 10월 중순 트위터를 통해 시작되었고, 문인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들의 고발이 이어졌다. 임솔아는 습작생 시절 중견 시인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른 시집과 다르게 이 시집에는 해설이 없다. 불합리한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글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해설을 따로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문학 평론가 김수이는“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은유하는 듯한 임솔아의 시는 현실을 실감하는 능력,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고 잔인함을 느끼는 능력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대의 역량이 되었음을 이야기한다.”라고 말했다. 시집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하게 겪을 수 있었던 세계의 부조리들이 적나라하게 쓰여 있다. 독자들은 그 시를 보면서 현실을 실감하고 고통을 느끼게 된다. 다양한 상황 속에 놓인‘나’라는 화자처럼 말이다. 나는 이번 시집을 통해 1인칭 화자인‘나’와‘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계와 사람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1. 1인칭 화자인 ‘나’


    

시집을 읽다 보면 유독 많이 반복되는 단어를 볼 수 있다. 그건 바로‘나’이다. 대부분의 시에서‘나’라는 단어가 등장하고,‘나’라는 1인칭 화자가 등장한다. 임솔아는 다양한 상황 속에 놓인 나라는 화자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감각들을 화자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시는 결국 말하기의 양식으로 시속에서 누가 어떤 목소리로 말하는가는 중요하다.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어조가 다르고, 거꾸로 어조에 따라서 화자가 다르다. 어조는 대상과 독자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암시한다. 임솔아는 다른 화자의 목소리가 아닌‘나’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과 가장 가까운 1인칭 화자인 나를 내세운 것이다.


1인칭 시점은 사건에 대한 화자의 주관적 반응과 성찰을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건네는 양식이다. 1인칭 시점에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들의 우연한 증인으로서의 나, 둘째는 이야기 혹은 사건의 주변적 참가자로서의 나, 셋째는 이야기의 중심인물로서의 나이다. 이 시집에서는 세 가지 유형의 1인칭 시점이 모두 등장하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야기의 중심인물로서의 나라고 할 수 있다.

    

 


2. ‘나’가 살고 있는 부조리한 세계


 

세계에는 관념이 아니라 사물이 있다. 산다는 것은 계속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물들과 만나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고, 세계와의 감각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대체로 이런 만남, 곧 세계와의 감각적인 만남의 중요성을 잊고 살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사는 게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고 우리가 만나는 세계가 매일 새로운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같은 하늘, 같은 골목, 같은 거리,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결국에 시 쓰기는 우리가 상실하고 망각하고 놓쳐버린 일차적 경험의 세계와 만나는 일, 말하자면 이 세계와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만나는 일이다. 요컨대 시는 세계와의 추상적인 만남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살아 있는 감각적인 만남을 노리고 그런 만남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런 만남이 중요한 것은 첫째로 이 세계에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 우리의 삶이 일차적 경험, 곧 사물들과의 구체적 감각적인 만남을 상실하고, 따라서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감각이 중요하다. 임솔아는 시를 쓰면서 우리가 닿지 못했거나, 많은 사람이 무심하게 놓치고 있던 세계의 모습을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그려낸다. 문제를 인식하면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적나라하게 써내려간다.

 

임솔아의 시에서‘나’는 세계 속에 놓여 있다. 단순히 세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문제들을 마주하고 직면한다. 12p에는 <아름다움>이라는 시가 있다.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임솔아, <아름다움> 中



아름다움이라는 시의 제목과 다르게 시에서 등장하는 세계는 아름답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화자는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고 말했다지만 이곳에서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고 말한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화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화자는 자신과 세계를 분리한다. 그 과정에서‘나’는‘나’를 구성하고 있던 세계를 인지하게 되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나’와 내 주위를 둘러싼 세계와의 간극을 확인하고, 객관화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시에서는 화자가 바닷속에 자신을 둔 채 꿈에서 빠져나오는 것으로 표현된다. 스스로 바다를 액자에 걸고, 바다에 가라앉는 자신을 지켜본다. 화자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이 속한 세상을 재현하면서 그 밖에 또 다른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정해진 틀 안의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임솔아는 갈등과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의 나와 그걸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나로 차분하게 분리해낸다. 다시 빠져나가서 사회의 부조리함을 명확하게 바라본다.

 

세계를 표현한 시는 이뿐만이 아니다. 41p에 <아홉 살>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에서는 도시를 만드는 게임을 하는 화자를 볼 수 있다. 화자는 제목처럼 아홉 살의 어린아이다. 아무렇지 않게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빌딩을 세운다. 이 모습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모습과 유사하다. 화자가 만들어낸 세계 속에는 시민들이 등장한다. 화자는 지루해지면 아이 하나를 집어서 호수에 빠트리는 행동을 한다. 아이는 살려달라고 하지만 화자는 아이가 얼마나 버티는지 구경할 뿐이다. 아이를 죽여도 도시는 조용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계속해서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도망 다니는 시민들을 벽으로 둘러싸고, 도시를 망가트린다. 하지만 미안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약간의 사고와 불행은 시민들을 더 성실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시는 단순히 아홉 살의 어린아이가 게임을 하는 모습이 아니다. 아이가 만든 도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폭력적인 세계의 부조리한 모습을 은유한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단지 더 놀고 싶은 유희의 욕망으로 불타는 어린아이의 게임으로. 생각은 없고 욕망만 있는 어린아이의 무지는 폭력으로 쉽게 변질된다. 의미와 목적의 부재보다 인간에게 절망적인 상황은 없을 것이다. 맹목과 무의미에 바쳐지는 온갖 폭력과 희생은 인간으로부터 좋은 삶과 선한 인간에 대한 의지를 박탈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세계는 점점 더 나빠지지만 위태롭게 지속된다. 임솔아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재난과 죄악이 무지한 어린아이의 게임과 다를 바 없다고 진단한 것이다. 세계의 부조리와 비개연성은 현대성의 특징이며, 현대인의 삶의 조건이다. 문제는 상태가 갈수록 악화된다는 것이다. 삶의 생명력과 따뜻한 인간성이 갈수록 마비된다는 것이다. 실감 없는 현실이 세계의 일부가 된 것이다.

 

임솔아는 시를 쓰면서 경계하는 일은 멋 부리는 일이라고 한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멋 부림이란 생활과 유리된 채 오직 문학적 수사만을 위한 자세를 말한다. 사람들은 이걸 예술지상주의나 탐미주의라고 부르는데 임솔아는 일상의 층위에서 벗어나 오직 문학만을 위한 미학적 태도를 경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임솔아가 표현해내는 문장들은 간결하고 명징하지만, 끊임없이 뒤척이며 새로운 행로와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파열음에 가까운 문장들은 의도한 난해성이 아니라, 삶의 바닥에 닿아본 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이다. 그런 부서진 존재들은 간신히 세계를 견뎌내고 있다.

 

짧은 문장들로 시를 구성하고 있어서 대상을 꽉 물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시가 현실의 표면에 머물게 하는 효과도 주고 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정직하고 진솔하게 꺼내 놓고 있다. 그건 임솔아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눈에 띄는 것은 임솔아의 시적 태도와 닮은 짧은 명사인 제목들이다. 제목은 시의 내용과 연결되어있지 않거나,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다. 제목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기보다는 부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제목을 정하는 방식은 냉소적으로 느껴진다.

 

 

 

3. ‘나’를 구성하고 있는 폭력적인 사람들


 

부조리한 세계 속에 놓인‘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세계뿐만이 아니다. 바로 세계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임솔아는 세상을 인식하고 그 세상과 자신 사이에 있는 갈등과 폭력적인 사람들과의 갈등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있다. 그 과정에 뒤따라오는 행동이 있다.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이곳과 그곳의 날씨는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그래서 날씨를 전한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딘가로 가고 있다.  

날씨 이야기가 도착하는 동안에도 내게 새로운 날씨가 도착한다.  

이곳은 얼마나 많은 날씨들이 살까.  

뙤약볕이 떨어지는 운동장과 새까맣게 우거진 삼나무숲과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는 저수지와 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노인과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임솔아, <예보> 전문



16p에 <예보>라는 시가 있다. 예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린다는 뜻이다. 시에서는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나’라는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는 자신을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고 말한다. 날씨 예보처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만 되풀이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확신하지 않고 같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서로 대립하기 때문이다.‘나’라는 화자는 타인에게서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착한 사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착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고난이 올 것을 걱정한다. 누군가 불행에 빠져나올 수 없게 될 것을 근심하며, 그를 배려한다. 그렇게 착한 사람들의 세계는 미래에 대한 생각과 말로 이루어져 있다. 타인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배려와 근심으로 말이다. 그들의 선의와는 무관하게 착한 사람들은 계속 현재의 지평을 반복하고 타인을 그 안으로 감금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창문 안에 쉽게 갇히게 된다.

 

시에서는 타인에게서 자신을 명명하는 이야기를 듣는 ‘나’가 일종의 창문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나’는 계속 갇혀 있지 않다. <예보>에서 등장하는 창문은 프레임을 은유하고 있는 사물인데, 화자는 스스로 창문을 열고 그 안에 고여 있는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밀어낸다. 타인은‘나’를 착한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창문을 들여다보면‘나’는 선의로 같은 말을 수동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나’를 만들어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밀어내면서‘나’는 진정한 내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호의적인 평가에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화자의 적극적인 행동은 시집에서 여러 번 등장하고 있다. 세상의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행동하는 화자의 모습은 지옥 같고, 부조리한 세상을 아주 작은 움직임들로 계속해서 바꿔가겠다는 어떤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행동이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해도, 이 세계 속에서 자신 안에 있는 구김을 해결하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이 시집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창문을 여는 사소한 행동도 임솔아의 시에서는 하나의 시적 행위가 된다. 창문을 연다는 것, 반복과 감금의 상황을 해제하는 것, 고여 있는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 바깥의 낯선 무엇인가로 환기를 시킨다는 것, 예보로 점철되어 수척해진 그것을 분열하고 꿈틀거리며 뒤엉키느라 한없이 풍만해지는 것으로 되돌려놓으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집에는 창문을 열거나 창문 너머로 투사하는 장면이나 그것과 형식적으로 유사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시집에서는 여성을 둘러쌓고 있는 남성의 폭력적인 모습들도 시에서 드러나고 있다. 48p에 있는 <티브이>의“머리채를 잡힌 여지가 중심가로 질질 끌려가며 죽어갔고”나 68p에 있는“다가와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혼자니? 잘 데 있어? 도와주려고 그래. 옆에 앉았다. 무릎에 손이 올라왔다”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이 모습을 아까 언급했던 <빨간>이라는 시를 통해 자세히 분석해보려고 한다.



사슴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슴은 태어나면서부터 갈지자로 뛴다

는 말을 들었다. 먹히지 않으려고


여자라는 말을 들었다.

먹고 싶다

는 말을 들었다.


*


목소리는 어디까지 퍼져 나가 어떻게 해야 사라지지 않는가 눈물을 흘리면 눈알이 붉어졌다 고통에 색이 있다면 그 색으로 나는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다면 창문을 넘어 번져 가 창밖의 은행나무와 횡단보도와 건너편 건물의 창문까지 부글부글 타오르는(창문을 열어 줘) 저것을 나는 고통의 색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의 피가 빨갛다는 말을 믿고 있다 새빨간 태양이 떠오를 때처럼 점점 눈이 부시다


살인자에게서도 기도를 빼앗을 수는 없다는 나의 한 줄 일기와

당신들이 자살하게 해 달라는 나의 기도 사이를 헤맬 것이다.


*


이곳으로 가면

길이 없다는 말을 들었고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울어야 한다

는 말을 들었다. 


당신들은 발가벗은 채 발목을 잡히고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매를 맞고

처음으로 울어야만 한다.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말해지는 동안

믿어 본 적 없는 소원이 이루어진다.


고통을 축하합니다.

빨간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른다.


임솔아, <빨간> 전문



<빨간>에서는 페미니즘을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여성의 시선으로 살아온 삶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 깊게 잡은 여성 혐오 문제는 심각하다. 이 시에서는 피해받은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시의 앞부분에서는 사슴은 먹히지 않으려고 태어나면서부터 갈지자로 뛴다는 특성에 대해서 먼저 언급한다. 바로 다음에는 여자라는 말을 들은 화자가 먹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시속에서 여자와 사슴은 동일시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는 '신체적 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사회의 주류 집단 구성원에게 차별받으며, 스스로 차별받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먹이사슬에서 약자인 사슴처럼 여성은 사회에서 약자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는 절대 쉽지 않다. 직장에서의 성희롱과 임금 차별,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에서 여성은 끝없이 피해받고 있다. 시의 구절처럼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들은 여자는 사슴처럼 먹히지 않기 위해 갈지자로 뛰어야만 한다. 성폭력 피해를 본 여성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지고 살아간다. 임솔아는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진술에 예리한 시선과 뾰족한 비판을 담아서 이 시를 표현해낸다.

  

*


임솔아 작가의 시 속에서 등장하는 1인칭 화자인‘나’를 통해 본 세계는 부조리했다.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폭력들을 임솔아는 외면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파고들 뿐이다. 시집 속에서 그려진 세계는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난해했다. 하지만 그 난해함 속에는 작가만의 강한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외면해왔던 세계들이 담겨 있었다. 독자들은 작가가 그려놓은 시를 따라가다 보면 한 번쯤은 자신이 겪었던 일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임솔아 작가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1인칭 화자인 ‘나’와 ‘나’를 이루고 있는 세계와 사람들을 중심으로 분석해보았다. 평소에 임솔아 작가의 글을 좋아해서 읽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시집을 분석하기 전에는 그저 간결한 시를 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날카롭고 단단한 시를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만 간결했을 뿐이다. 임솔아 작가에게는 놀라운 서술능력이자 통찰력이 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는데도 그 어떤 시보다 슬프게 느껴진다. 그 시선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1인칭 시점의 화자인 나와 나를 둘러쌓고 있는 세계와 사람들에 집중하면서 시집을 읽었다. 임솔아 작가가 쓴 부조리한 세계와 폭력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왜 일인칭 화자인 나를 설정해야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지옥이 여기라는 이 시집은 역설적이게도 낯설고 아름다운 세계를 품고 있다.

  


[차유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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