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라지는 당신을 생각해, 신영배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도서]

환상적인 공간에 놓여 있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
글 입력 2018.11.0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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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가슴을 끌어안지 물랑 당신을 그렇게 부르고 싶어 당신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 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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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시인의 네번째 시집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가 출간됐다. 시인은 그동안 한국 현대에서의 여성적인 시쓰기와 여성의 몸으로 시 쓰기가 가질 수 있는 지점들을 그려왔다.


물과 그림자를 경유하고, 흐르고 유동하는 여성으로서의 타자화된 신체를 포착한다. 그래서 시인의 시에는 여성 화자가 자주 등장한다. 시 속에서의 여성들은 관찰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적 주체가 되어 당당히 발언하고 있다. 그러나 말하는 방식과 목소리의 톤은 대조적이다. 시인만의 독특한 언어로 환상적이고, 기이한 세계 그려내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의 확장된 시세계를 볼 수 있었다.


시인의 시에는 흐릿하지만, 선명한 화자들이 등장한다. 화자들은 시인이 만들어놓은 환상적인 공간에 놓여 있다. 그속에서 발생하는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시집에는 '물랑'이라는 단어가 곳곳에 놓여 있다. 우리는 시집을 읽으면서 물랑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게 된다. 뜻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언어라서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시인이 그동안 써왔던 물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물랑은 하나의 시가 되기도 하고, 시어가 되기도 하고, 제목이 되기도 하면서 시집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사라지는 당신을 생각해 책 위에 빛이 쏟아질 때 이유를 알아버릴 시와 당신을 생각해 시작처럼 끝처럼 공간은 빛나지 우리가 걸어가는 곳은 사라지는 숲속이야 숲이 왜 사라지는지 묻지 않고 고요할수록 빛나는 부리를 부딪치지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곳은 사라지는 물속이야 물이 왜 사라지는지 묻지 않고 발끝이 다 닳을 때까지 푸른 가슴을 끌어안지 물랑 당신을 그렇게 부르고 싶어 당신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 물랑


「물랑」 中



물랑은 흐릿한 유령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왜 사라지는지 묻지 않지만,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곳은 사라지는 물속이고, 고요할수록 빛나는 부리가 존재한다. 물랑은 시인이 그동안 시집에서 사용해왔던 물의 이미지를 상기시키면서 자유롭게 형태를 바꾼다. 때로는 증발하며 평범한 공간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바꾼다.


시집을 읽으면서 물랑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물랑을 하나의 의미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다. 틈과 틈 사이를 흐르다가 욕조처럼 파인 공간에 고였다 사라지고 나의 몸을 담글 수도 있고 때론 너의 몸까지도 담글 수 있는 흐르고 있는 물랑은 정형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끝없이 의미를 확장해가는 열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물랑은 새로운 단어 그 자체로 읽는 이의 낯선 감각을 건드리면서 동시에 시공간의 자장을 바꾸고 전에 없던 세계를 창출해낸다는 지점에서 이번 시집으로 빠져드는 통로이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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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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