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 재벌 흑역사 - SK [문화 전반]

여느 곳과 같은 복합비리의 온상
글 입력 2018.10.25 23:0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sk최태원.jpg
- SK 총수 최태원 -


이 글은 민중의 소리에서 출판한 이원배 기자의 한국 재벌 흑역사를 인용 및 재서술 한 것입니다. 삼성, 현대, 롯데에 이어 마지막 SK를 다룹니다.


적산 가로채기로부터 시작된 선경그룹의 역사

한국 재벌들에 대한 역사적 과오를 평가하기 위한 자료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만든 자료에 의존해야한다. SK의 경우 하나는 창립 50주년에 발간된 최종건 평전<공격경영으로 정면 승부하라>이고 다른 하나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발간된 <SK 60년사>이다. 재밌는 것은 최종건의 평전은 그가 살아있을 당시 작성된 것이 아니기에 삼성의 이병철처럼 뜬금없는 자수와 고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최종건의 사망 당시 SK는 전혀 대기업이 아니었고 사후 30년 뒤에야 평전 위원회라는 전문적 조직을 꾸린 것은 후대에 의해 윤색되고 미화될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다.

SK그룹의 뿌리가 어땠는지 유추할 수 있는 점은 “해방 직후 청년 최종건은 선경치안대를 조직해 선경직물의 일본인 간부들이 무사히 일본에 돌아가도록 도왔다” 부분이다. 공장 중간 관리자인 최종건에 대한 이런 찜찜한 서술 때문인지 10년 뒤 발간된 SK 60년사에서는 “8.15 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 선경치안대를 조직해 공장 보호에 앞장섰던 최종건 창업회장은 미군정이 선경직물을 적산(敵産, 즉 일본인 재산)으로 지정해 관리인을 위촉하자 공장의 조속한 가동을 설득했다”으로 바꿔 서술한다. 이러한 표현에도 불구 우리는 이미 그들 스스로 말한 역사를 보았다. 최종건은 35년 동안 한반도를 수탈했던 일제의 기업, 그것도 전쟁에 간여했던 기업의 충실한 관리자였고 해방 직후 자신을 관리자로 임명해줬던 일본 전범기업 간부들의 탈출을 도왔다.

SK는 그룹의 기반이 일본 적산이었다는 것이 부끄러운지 ‘적산’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역사에서 국토에 남은 적국의 재산을 차지한 이들은 이런 적들과 싸운 민족의 것이 아니라 민족반역자들이었다. 정상적인 귀국 조치에 따르면 조선에 남은 일본인은 자기나라로 들고 돌아갈 수 있는 돈은 1000엔이었으나 일본인들은 더 많은 재산을 챙기기 위해 밀항을 했고 당시 대부분의 적산이 부동산이었던 만큼 그것들을 헐값에 팔아 친일파로 하여금 자신을 돕게 했다. 10대 나이에 일본군의 군복을 만드는 전범 기업에 들어가 18세에 조선인 청년이 관리자로 되었다는 것은 일본인에게 철저히 복종했다는 것이 아닐까. 이승만 정권은 놀랍게도 이런 적산을 시장가격보다도 훨씬 낮게 불하하였고 불하 우선순위는 해당기업의 주주 및 경영인으로 있던자였다. 재산을 불하 받을 권리가 가장 적을 도운 사람에게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삼성의 이병철은 적산으로 무네이 양조장과 삼성이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을 인수하며 얻은 신세계의 전신인 미쓰코시 백화점을 가졌다. 한화의 김종희는 일제 순사에게 도움을 받으며 전범인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했고 한 때 두산 그룹의 주력이던 OB맥주는 창업주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이 일본기업이던 소화기린맥주을 불하받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박승직은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되어있고 정치인 김무성의 아버지 김용주도 민족문제 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기준에 부합한다.


SK그룹의 정경유착 그리고 노태우

SK그룹이 오늘날 재계 5대 대기업이 된 이유는 1980년 유공(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 덕분이다. 단번에 재벌 반열에 오르면서 SK는 1988년 최태원과 노태우의 딸 노소영을 결혼을 성사시킨다. 공기업이던 유공은 1970년 석유 파동을 겪으며 위상을 높였고 1978년에는 대기업 매출 1위였다. 당시 삼성을 제치고 유공을 인수함은 전두환의 말에 따르면 노태우의 업이었다. 사실 선경 직물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중견 수도권 기업에 불과했는데 중앙정보부 서울분실장까지 오른 이병희와 최태원이 친분을 유지하며 김종필에 연이 닿았고 이는 박정희까지 연결되며 자금줄이 쉽게 풀렸다.

1987년 노태우는 갖은 선거부정과 야권의 분열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고 1992년 8월 여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경그룹을 선정한다. 당시 이동통신 사업은 엄청난 이권을 가져다주는 사업이었는데 권력의 주변으로 이동한 노태우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퇴임 후 생활을 선경으로부터 보장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연히 야당이 반발했고 선경그룹은 여론에 밀려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해야했다. SK는 이를 통해 자신들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 것은 노태우와는 상관 없다 하지만 이는 전체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다. 1994년 SK그룹은 이동통신 사업을 공기업이던 한국이동통신의 주식을 매입하는 형식으로 진출했고 정부의 이동통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제 1이동통신이던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하고 제 2이동통신 신규 사업자를 선정하려 했다. 이는 워낙 이권이 큰 사업이었기에 김영삼 정부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권을 재계로 넘겼고 노태우에 의해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으로 내정된 최종현이 그 진행을 하였다.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은 1992년 사업권을 땄다가 토해낸 적 있는 선경과 최종현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고 선경은 그렇게 유유히 한국이동통신이라는 공기업을 손에 넣었다.


헤지펀드를 불러들인 SK의 분식회계

한국 기업은 외환위기 전까지 회계장부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았다. 경영인에 대해서도 전문 경영인, 주주로부터 임명 받은 대표란 개념이 없어서 어떤 회사의 대표도 총수가 지목한 자가 임명되었고 이런 배경 속에 총수에 의해 진행된 분식회계는 범죄라는 인식도 부족했다.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이 기아 자동차의 4조 분식 규모, 김대중 정부의 혈세 21조 공적 자금에도 불구한 대우그룹의 41조의 분식규모였다.

2003년 이 둘에 이어 SK그룹의 SK글로벌도 분식회계 사건이 터진다. 선경직물과 SK상사를 거쳐 2000년 7월부터 SK글로벌이란 이름을 쓰는 이 회사는 SK네트웍스로 이름을 바꾼다. SK 글로벌은 당시 그룹의 부실을 처리하는 해결사 역할을 했으며 SK증권은 외환위기 직후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퇴출 위기에 놓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월가의 JP모건으로부터 돈을 빌렸으나 JP모건은 SK증권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여 재미를 본 것이었다. 자신들이 태국 바트화 투자로 입어야할 손실을 SK증권에 떠넘겼고 속임수를 알게된 SK증권은 소송을 걸었으나, JP모건과 맞서는 대신 그들의 명성을 이용하여 회사의 신뢰도를 높이려 JP모건이 SK에 투자했다는 사기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SK글로벌은 JP모건에게 웃돈까지 얹어줘 이중으로 당했고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사용했다. 그 규모는 1조 5000억원을 넘어섰고 최태원이 구속된다.

최태원의 구속 사유는 단순 분식회계를 지휘한 것에 그룹 계열사끼리도 주식을 사고 팔게 해 959억 원을 챙긴 혐의가 추가되었다. 최태원이 구속되며 SK그룹 주가는 폭락했고 이는 국제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었다.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 돈을 투자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기자본인 소버린은 꾸준히 SK의 주식을 사들여 지분의 14.99%까지 차지하였다. 소버린은 단순 투자가 아닌 경영 참여임의 목적이 드러나면서 SK와 경영권 분쟁을 시작했다. SK는 하나은행, 신한은행, 산업은행에 호소하였고 소버린은 외국인 주주를 설득했으나 결국 최태원이 경영권을 가져갔다. 그러나 소버린은 경영권 분쟁 후 모든 주식을 팔고 나갔으며 경영권 분쟁으로 올라간 가격 덕에 9437억원 이라는, 투자금 4배의 이득을 챙긴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


최태원의 두 번째 구속

최태원은 분식회계로 구속된 이후 단 7개월 만에 병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풀려났으며 2012년 회사 돈 46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구속되었다. 이는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한 점쟁이이자 부채도사라고 불리는 김원홍에게 증권투자를 맡긴 것이지만 영발이 다했는지 다 날려먹었다. 재벌과 점쟁이의 유착은 한국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최태원이 계속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경제 발전을 위해” 한 마디면 사면되는 현상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두산 그룹 박용만도 당시 경영권 싸움에서 비자금을 조성했고 경제 5단체로 경제를 위해 박용만을 사면해달라 애썼다. 2015년 당시 전경련 회장인 박용만도 최태원의 사면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구린 사람들끼리의 연대를 볼 수 있다.


최철원.jpg
- 매값 폭행의 주인 최철원 -


영화 베테랑의 실존 인물 최철원.

최철원이 경영하던 물류회사 M&M 앞에서 탱크로리 노동자가 시위를 벌였다. 노조에서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용이 승계되지 않았고 최철원은 이 사람을 불러 “한 대에 200만 원 쳐줄 테니 맞아라”라며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팼다. 열 대를 맞은 노동자는 살려달라고 빌었고 최철원은 그의 입에 휴지를 물리고 얼굴을 팬 이후 2000만원짜리 수표를 던졌다. 폭행 이후 노동자가 사과를 요구하자 M&M 간부들은 “2000만원 어치 맞지도 않았다, 돈 더 받으려고 일부러 맞았다”등으로 모욕하였고 최철원은 이런 만행에도 불구 징역 3년 구형에 말도 안되는 야구방망이 몰수형을 받았다. 놀라운 점은 최철원의 기소를 담당한 형사 3부 옆 4부에서 최철원에게 구타를 당한 노동자를 업무방해와 일반교통방해로 기소했다. 노동자를 기소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박철 검사이며 이듬해 SK건설 전무로 당당히 영입됐다. 최철원은 1년 6개월 선고받고 항소심으로 인해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당시 재벌을 위해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볼 수 있었다.

한국은 아직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기업은 여전히 봉건적인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과 더불어 소유주 자체도 전문경영인에 대해 비하와 낮은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재벌들이 귀족의식과 갑질로 이어지는 것이며 이런 의식은 사회심리학자 폴 피프에 의해서도 설명되었다. 결국 금수저들은 자신의 성공을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노력과 재능 덕분이라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신격호와 마찬가지로 최태원도 불륜에 회사 돈을 이용했고 이건희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에 나온 건물은 삼성 비자금으로 임대한 곳이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재벌의 벙역 기피와 더불어 최태원도 이재용과 마찬가지로 조세 포탈과 편법 증여로 돈을 불렸다.

삼성, 현대, 롯데, SK를 다루며 단지 존재할 것 같다고만 여긴 재벌들의 흑역사는 명확히 인식되었다. 비리와 적폐로 얼룩진 그들의 민낯은 백 년도 넘지 않는 역사 속에서 벌써 희석되어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기업의 중추로 인식되고 있다. 삼성, 현대, 롯데, SK가 무너지면 마치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릴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인식을 심어놓았고 그래도 이들 덕에 경제가 발전했다는 분위기는 횡행하게 되었다. 아마 그것은 기업은 재벌의 소유라는 한국 특유의 구조와 짧은 시간 경제적 발전을 이룩한 역사 속에서 의식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은 총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이루고 있는 노동자와 시민의 역사가 함께 구성되어 있는 것이며 대한민국이라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전체의 산물이다. 시장경제체제를 비판하는 말에서 자본주의가 흘러나왔고 우리는 어쨌든 자본주의에 세계에 존속된 존재라지만 시장경제와 자유주의를 꿈꾼 이들의 모습은 한국 재벌 흑역사가 아님이 분명하다. 재벌이 잘해서 대한민국이 이만큼 온 것이 아니라 그 기반인 시민사회가 잘해서 이 만큼 온 것임을 그리고 재벌과 그들과의 유착이 만들어낸 부채를 시민사회가 떠안은 이중고를 기억해야 한다.


[김혁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