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위로의 무지개,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공연예술]

사회 각종 이슈들을 무겁지만은 않게 풀어내다
글 입력 2018.10.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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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TMI(Too Much Information)를 말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고향은 충청도다. 그의 부모와 조부모도 충청도 사람이다. 사실 나는 충청도 사람들이 사투리를 쓴다는 걸 20대가 되어 서울에서 살면서야 알았다. 우리 할머니의 말투나 부모님이 종종 쓰시곤 하는 화법에는 어딘가 공통적인 게 묻어나온다. 사실 충청도는 전라도나 경상도처럼 사투리 억양이 강하지가 않아서, 우리 세대는 사투리를 쓰는 티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실제로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은 고향을 얘기하지 않으면 내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지 못했다. ....아닌가?).


사투리를 일단 인지하고 나니 나도 고향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면 "그런겨?"나 "댕겨와" 같은 말을 곧잘 주고받는단 사실을 깨달았다. 확실히 같은 지역 출신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사투리를 쓰곤 하는데, 이게 퍽 친근감을 더해준다. 충청도 사투리에는 느긋하고 무심한 재치가 묻어나오는 특유의 뭔가가 있어서, 큰일도 별거 아닌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작은 마법이 숨어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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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충청도 어느 시골 변두리에 있는 폐관을 앞둔 영화관 「레인보우 씨네마」. 영화관의 폐관을 계기로 주인 조한수와 초대 주인 조병식, 한수의 아들 조원우 3대가 모여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티격태격하며 영화관을 둘러싼 각자의 추억과 사연을 펼치는 가운데 조한수의 죽은 아들 조원식이 언급된다. 늘 함께여야 했지만 마주보지 못한 채 피하고 살아왔던 가족. 진심을 처음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그 날 영화관은 마지막 상영을 맞이한다.



고향 얘기를 굳이 꺼낸 것은, 얼마전 관람한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의 배경이 충청도의 어느 작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휴, 제목이 참 긴데, 극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작품의 배경에 맞게,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고향이 충청도인 내가 봐도 상당히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이 사투리가 극의 분위기와 무게를 조정하는데 큰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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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한 시골의 작은 영화관 '레인보우 씨네마'가 폐관을 앞두자, 훌쩍 서울로 떠났던 아들 원우가 일을 거들기 위해 내려온다. 아버지인 한수에게 말은 안했지만, 그와 동거를 하고 있는 태호도 알바 선배라고 거짓말하고 원우를 따라 내려온다. 필름을 돌려 상영하는 오래된 이 영화관은 이제는 손님도 별로 오지 않아 한적하기만 하다. 평소엔 직원인 희원만 상주하고, 종종 집에 가는 길에 들러 쉬었다 가는 정숙만 방문할 뿐이다. 이 고요했던 공간에 폐관을 앞두고 오랜만에 사람들이 모이는 변화가 생기자, 그동안 서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따라나온다.


이 연극은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문제들을 여럿 안고 있다. 원우와 태호는 동성애자고, 수영은 사람이 무서워 한여름에도 인형탈을 쓰고 다니며, 한수의 아들이자 원우의 동생 원식은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했고, 정숙은 홀로 치매걸린 노모를 돌본다. 각자가 가진 아픔들은 각각 종류가 다른 것들이지만, 이 상처들을 꺼내고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이 치유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한바탕 눈물을 뽑아내고 나서도 극의 마지막까지 이어나가는 소소한 유머와 따뜻한 분위기는 마음 한 켠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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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초반부 상대의 외모를 가지고 놀려 웃음을 유발시키는 식의 유머는 평소 지양했으면 하는 바였기에 좀 아쉬웠다. 후반부, 한수와 원우 부자가 그동안 서로 말하지 않고 묵혀왔던 원식의 자살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부분에서 감정이 극대화되는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는 별개로 꼭 사건의 개요를 굳이 다 말로 한꺼번에 풀어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이런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이 더 컸다. 이 연극은 크고 작은 갈등과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충청도 사투리나 토끼 인형탈, 할아버지의 귀여움과 소소한 유머 등으로 적당히 완급조절을 해주며 풀어낸다. 덕분에 관객들도 이러한 소재들을 크게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관의 폐관식을 열며 내일의 희망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들의 오늘을 따스히 위로해주는 무지개의 출현. 마무리까지 잔잔하게 따뜻한 이 연극은 10월 21일까지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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