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직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렬함, 연극 '에쿠우스' [공연예술]

탄탄한 구성과 강렬한 시각적 요소로 관객을 매혹하는 연극, 에쿠우스
글 입력 2018.10.0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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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연극 '에쿠우스'를 떠올리면 강렬한 붉은 색이 떠오른다. 이 오래된 희곡은 매번 접할 때마다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매혹적이다. 처음 읽었을 땐 미로 같았고, 처음 보았을 땐 폭죽 같았으며 몇 차례 더 만나자 긴밀히 짜인 설계도 같았다.




나와 에쿠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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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쿠우스'를 희곡으로 처음 접했다. 연극을 배우는 교양에서 다른 몇몇 작품들과 함께 교수님이 올려주신 파일을 통해서였다. 모니터로 읽어서 그랬는지, 수업 준비를 위해 급하게 읽게 되어서였는지, 당시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지 알쏭달쏭했다. 작품이 만들어진 지 한참 지난시기에 읽어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작품이란 느낌이었다. 그때 우린 조를 나눠 직접 소품과 무대의상, 조명뿐 아니라 각색과 연출을 모두 직접 해보는 팀 프로젝트를 위해 배웠던 희곡 중 하고 싶은 작품을 선정해야 했다. 파악하지도 못한 작품으로 연극을 올릴 순 없었기에, 나는 이 작품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팀원들과 연습실까지 빌려 가며 열심히 준비했던 연극 시연 일이 다가왔다. 우리 팀은 '에쿠우스' 팀의 다음 순서였다. 앞의 팀이 너무 잘해버리면 우리가 준비한 게 묻히거나 주눅이 들 것 같아서, "너무 잘하진 말아라" 하는 마음으로 그 팀의 공연을 기다렸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 작품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각색한 이들의 공연은, 텍스트로 접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강렬함을 선사했다. 두 눈이 시뻘게질 정도로 열연하는 알런과 말 머리를 표현한 쇠 투구를 쓰고 박자에 맞춰 발을 세게 구르는 말들의 모습. 붉은 조명과 강렬한 음악으로 보는 사람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던 이들의 공연은 물론 상당히 조악했겠지만, 에쿠우스만이 가진 매력을 잘 표현해냈다.


자신들의 공연을 준비하던 학생들도, 꽤 긴 시간 이어진 발표에 지쳐 졸던 학생들도 모두 이들의 공연에 시선을 빼앗겼고, 다음 차례이던 우리 팀도 마찬가지였다. 시연이 끝나고 우리 조는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어떤 팀원은 '브라보'! 를 외쳤다. 부담감이나 시기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음이 우리 차례라는 것도 사실 생각나지 않았고, 그저 내가 방금 보았던 강렬한 충격만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사실 그때도 이 작품에 대한 파악이 잘은안 되었었지만, 다음에 이 작품이 올라오면 꼭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쿠우스가 가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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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17세 소년 알런, 7마리 말의 눈을 찌르는 충격적인 사건! 헤스더 판사는 알런을 감옥 대신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에게 보낸다. 치료를 위해 다이사트가 방문한 알런의 집. 다이사트는 기독교인 어머니와 사회주의자 아버지 사이에서 왜곡된 사랑과 가치관으로 인해 혼란으로 짓눌린 알런을 마주한다. 다이사트를 점점 신뢰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알런! 다이사트는 광기어린 모습 뒤에 순수함이 있는 알런을 알아갈수록 무기력과 절망에 빠져있는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는데....



작품의 플롯은 다양한 질문거리들로 긴밀하게 짜여있다. 종교적 숭배, 직업적 회의, 정상과 비정상, 성적 욕망 등 인간의 삶에 긴밀하고 중요한 질문거리가 되는 여러 소재들은 작품 속에 치밀한 구성으로 분포해 있다. 어린 시절 겪은 경험과 부모의 영향으로 말을 에쿠우스라는 신으로 숭배하게 된 알런.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자유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소년의 모습.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소년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없애야 함에 고뇌하는 다이사트의 회의. 소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를 부순 알런의 행위. 이 작품이 대단한 이유는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는데도 탄탄하고 세심한 구성으로 스토리에 개연성을 잘 부여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높은 작품성을 가진 희곡의 매력을 더욱 배가시켜 주는 것은 에쿠우스가 가진 시각적 강렬함 덕일 것이다. 에쿠우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숭배의 감정, 즉 신을 모셔왔으며 성적 욕망은 가장 1차원적인 욕구로 여겨진다. 작품 속에서 말이 등장하기 때문에, 연극적으로 인간이 말의 모습을 표현한다. 말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육체와 그 움직임은 1막 마지막에 알런이 전라로 말을 타는 장면과 2막 마지막 즈음 알런이 말들의 눈을 찌르는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 압도적인 시각적 강렬함은 글로 읽거나 진짜 말들을 통해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연극만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


나에게 있어 '에쿠우스'는 연극만의 매력을 가장 극대화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에 압도되는 경험을 처음 내게 선사해줬던 연극. 이 작품이 가진 독창적이고도 강렬한 매력은 작품이 초연된 지 4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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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에쿠우스'는 9월 22일부터 11월 1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한다.)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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