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성스러운 사슴 죽이기, '킬링 디어' [영화]

상처를 없던 것으로 만드는 방법
글 입력 2018.08.0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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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그러나 매혹적인

 
인간이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주술이 점차 사라졌다고 한다. 고대 사회에서 널리 행해지던 잔인한 희생제의 같은 것들도 이런 이유로 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영화 <킬링 디어>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영화는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모든 불편함을 자아낸다. 가상의 이야기임에도 자꾸 현실로 머리를 들이밀며 관객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성스럽고 매혹적인 분위기로 눈을 뗄 수 없게 하며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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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하는 영화 중 가장 고대했던 작품을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킬링 디어>를 꼽을 것이다. 왜냐면 전작인 <더 랍스터>를 보고 푹 빠져버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킬링 디어>는 개인적으로 <더 랍스터>보다는 신선하고, 당혹스러운 전개와 장면은 덜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간에 약간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는 영화다. 혹평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리 케오간의 연기와 매혹적인 연출을 놓치는 건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다.

요르고스 감독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시험에 든 인간이 얼마나 유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덤덤하게 증명해내곤 한다. 등장인물들은 딜레마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만 그마저 부조리의 연속이다. 눈살은 찌푸려지지만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불쾌한 당혹감을 느낀다. 바로 이 점이 감독의 가장 큰 장기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킬링 디어>도 마찬가지다.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타개하지 못하는 인물들을 우리는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성스러운 사슴 죽이기

 
줄거리를 설명하기 전에 이 영화의 원제가 ‘The Killing of a Sacred Deer(성스러운 사슴 죽이기)’라는 걸 짚고 넘어가면 좋을 듯하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자신이 속죄하기 위해 희생양을 제물로 바치는 그리스 비극을 모티브로 가져왔다.

흉부외과 의사인 스티븐(콜린 파렐), 그의 아내이자 안과 의사인 안나(니콜 키드먼) 그리고 그들의 자녀 킴(래피 캐시디)과 밥(서니 설직)은 그림같이 완벽하지만 감정이 별로 없는 가족이다. 그런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운명이 선고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이 집의 가장인 스티븐은 어느 날 술을 마신 채 심장 수술을 집도하게 되는데, 결국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한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게 되고,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죽은 환자의 아들인 마틴(배리 케오간)을 챙겨주기 시작한다. 물질적인 도움뿐 아니라 마틴의 집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가기도 하고, 그를 가족들에게 소개 시키기도 하며 마틴을 위로하려 한다. 그런 마틴은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만 모든 표현이 솔직하고,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모습이 묘한 긴장감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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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스티븐에 대한 마틴의 집착은 점점 커져갔고, 그러던 중 갑자기 스티븐의 어린 아들 밥이 사지 마비가 된다. 놀란 안나와 스티븐은 모든 검사를 다 해봤지만 밥에겐 아무 이상이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스티븐에게 마틴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 가족 중 한 명을 죽였으니 공평하려면 당신도 셋 중 한 명을 고르라고, 안 그러면 세 명 모두 죽을 것이라고. 이렇게 비극은 시작되었다.



비극보단 부조리극

 
사실 이 영화는 비극보단 부조리극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인물에게 닥친 시련으로 인한 동정심 유발, 주인공의 깨달음 그리고 해소라는 흐름을 가진 비극과 <킬링 디어>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보통 인물들의 감정을 자세하게 다루는 비극과는 달리 <킬링 디어> 에서는 감정을 모두 건조시켰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관객이 인물들의 행동과 영화의 미장센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또한 비극의 중요한 요소인 동정심 또한 이 영화에선 느끼기 힘들다. 관객의 감정이입을 최대한 막고 이 모든 상황을 그저 지켜보게 하려는 게 감독의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감정이입을 막는 요소들은 영화 곳곳의 부조리한 인물들의 행동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는 이 저주에 반응하는 가족들의 행동이다. 특히 희생양이 된 세 명의 인물은 이상하리만큼 침착하다. 마틴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하는 스티븐과 다르게 셋은 상황에 바로 순응하고 자신이 살 방법을 찾는다. 안나는 아이를 더 낳으면 된다고 스티븐에게 선택을 종용하고, 두 자녀는 스티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들을 하며 생존을 바란다. 결국 스티븐도 운명을 받아들이고 학교에 찾아가 두 자녀의 학교생활을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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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극이 진행될수록 스티븐이 신격화 되어가는 듯한 모습도 꽤 불쾌하다. 스티븐이 죄를 저지른 당사자지만 죗값을 치르는 사람은 가족 중 한 명이다. 이에 그는 소리치며 괴로워하기보단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며 영화 대부분을 채운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런 스티븐을 자신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신처럼 떠받든다. 이 때문에 스티븐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속죄를 위한 성스러운 제의라고 느껴지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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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단연 마틴 역의 배리 케오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에게 내려진 비극적인 저주가 왜 별로 안타깝지 않았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마틴이라는 인물의 몫 또한 크다. 관객에게 마틴이 생각하는 ‘정의’를 너무나도 잘 설득한 결과일 것이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도 이와 관련 있는데, 바로 스티븐이 지하실에 마틴을 묶어두고 총으로 위협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마틴은 스티븐의 팔을 물고, 스티븐이 고통스러워하자 자신의 팔도 똑같이 물어 살점을 떼어낸다. 상처를 없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똑같이 만들어주면 된다는 대사를 하며 말이다. 이게 마틴이 생각하는 ‘정의’이며 관객들은 이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한 채 스티븐의 심판을 지켜본다. 공포스러운 심판자의 모습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오묘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만들어내고 소화한 배리 케오간 배우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연출

 
그리고 영화를 보며 가장 좋았던 건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 숏들의 편집, 신경을 곤두세우는 OST 등의 연출적인 부분이었다. 영화를 즐겨보다 보니 요즘은 감독의 연출을 보며 전율을 느낄 때가 많은데 요르고스 감독은 단연코 나에게 1등이다. 포스터 한 장으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든 영화는 또 처음이다. 이 영화에는 이 포스터처럼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숏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관객을 신과 같은 자리에 앉혀두고 인물들을 지켜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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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봐야 할 건
하나의 장면이 아닙니다.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고
부딪히는 걸 주목해야 합니다.
영화의 불꽃은 거기서 피어납니다.


최근에 씨네21 잡지에서 읽은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말인데, 이 말이 참 와 닿았다. <킬링 디어>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도 저 말이었다. 말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좋은 영화의 보편적인 기준이 영화를 보며 관객이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지 있다고 생각한다. 인식할 수 있는 감정부터 아주 미세해서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정까지 말이다. 영화의 장면이 휙휙 지나가면서 관객의 다양한 감정들도 소용돌이치게 된다면 자연스레 관객은 영화에 흥미를 느낄 것이고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신선한, 조금은 당황스러운 감정일수록 더 좋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이 느꼈던 낯선 감정은 그 영화를 결코 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그게 소위 말하는 여운이 남는 영화, 머릿속에 각인되는 영화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나열해본 것이라 조금 추상적이지만 내가 최근 영화에 관해 느낀 점이다.

목소리만 들어도 이건 어떤 가수의 노래인지 알 듯이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감독이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킬링 디어>는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이다.


[김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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