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이 허기지면, 꺼내 먹어요 [문화 전반]

이건 당신을 위한 요리입니다.
글 입력 2018.07.0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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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닭도리탕과 매콤한 고등어조림을 좋아한다. 밥에 쓱쓱 비벼 한입 먹으면 한 끼를 지켜주는 밥 경찰이 따로 없다. 닭도리탕은 당근과 감자를 사각으로 썰어 닭과 빨간 양념장과 함께 푹 졸인다. 고등어조림은 생선보다 무가 많아야 한다. 그 무에 양념장이 스며들어 숟가락을 넣어 으깰 수 있을 정도가 딱 이다. 이 레시피는 엄마의 음식이고 이제 나의 음식이 되었다.



<달팽이 식당>과 <리틀 포레스트 : 사계절>

여기, 요리 안에 담는 내용이 참 비슷한 책과 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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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은 손님을 하루에 한 팀만 받는 색다른 식당이다. 손님과 대화를 주고받아 무엇이 먹고 싶다든가, 가족 구성이라든가, 장래의 꿈이라든가 면접 후에 그날의 메뉴를 준비한다.

달팽이 식당의 사장님은 린코. 사실 린코는 도시에 살다 애인의 배신에 돈까지 잃고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설상가상 목소리까지 잃었다. 유일하게 남은 건 할머니의 겨된장과 요리 솜씨. 그래서 마을에 돌아와 엄마의 도움으로 차린 게 바로 ‘달팽이 식당’이다.

린코는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행복해한다. 요리구성을 짜고, 신선한 재료를 구하고, 음식을 만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님만을 위한 맞춤 요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달팽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각지에서 찾아온다. 이는 곧, 먹는 이가 부디 행복해졌으면 하는 린코의 바람이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가서일 것이다.


몇십 년이나 상복 차림으로 지내는 할머니를 위해 내가 생각한 메뉴는 다음과 같다.

·요리로 희로애락을 표현한 듯한, 단 음식은 제대로 달고, 매운 음식은 제대로 맵고, 그러니까 강약의 장단이 있는 자극적인 맛의 메뉴였다.
·개다래나무주(酒)를 사용한 칵테일
·사과 겨된장절임
·굴과 옥돔 카르파초(날것으로 얇게 저민 쇠고기나 생선 등에 야채를 곁들여 먹는 이탈리아 요리: 주)
·토종닭을 통째로 푹 고은 삼계탕
·햅쌀을 이용한 가라스미(숭어 방어 삼치 등의 알집을 소금에 절여 말린 식품 : 주)리조토
·새끼 양고기구이와 야생 버섯의 갈릭 소테
·유자 셔벗
·마스카르포네(크림치즈의 일종. 우유 향이 나는 부드러운 맛이 특징으로 디저트에 주로 사용된다: 주) 티라미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서
·진하게 끓인 에스프레소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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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 사계절’은 하나의 농작물이 어떻게 농작 되고 음식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더 세세하게 설명된다. 그만큼 등장인물보다 음식이 더 많이 등장하는 영화다. 그 많은 요리를 하는 사람은 작은 숲 속 코모리 마을에 사는 이치코. 그녀는 도시에 살다 고향인 코모리로 돌아와 직접 농사짓고, 수확해 먹는 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농작물을 심고, 기다리고, 재배하고 음식을 만드는 순서가 반복된다.

그 반복을 가만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 짓게 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만큼 요리에 얽힌 사람과 자연에 관해 이야기하는 잔잔한 느낌의 영화다. 그중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가을부터 겨울까지 팥이 완성되가는 과정이 인상 깊어 적어본다.


초여름이 되면 밭에 씨를 뿌려 그대로 둔다.
여름, 아래쪽부터 꽃이 피고 떨어지면서 가을이 시작될 무렵 팥꼬투리가 두꺼워진다
난 참지 못하고 덜 여문 팥을 먹어버린다
아직 덜 여문 팥 꼬투리를 벌리면
촉촉한 보라색의 어린 팥이 고개를 내민다
단단해지기 전이라 생각날 때 살짝 쪄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희미하게 팥의 향이 난다

수프 건더기로도 좋고
달게 찐 팥을 반죽과 섞어
머핀 용기에 넣고 굽는다
말랑하니 향도 좋다
팥을 삶아 살짝 익힌 후
차게 해서 그냥 먹는다
맛을 음미하면서 먹어야 맛있다

-여름과 가을 中 5th dish : 팥-


음식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1th dish, 2th dish 자막은 독자들이 음식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위로와 화해 그리고 엄마

‘달팽이 식당’의 내용은 어떻게 보면 낭만적으로 보인다.

도시와 떨어진 고즈넉한 마을에서, 손님들의 기호에 맞춰 요리 구성을 짜고, 손님이 와서 먹을 땐 맘껏 음미하라며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는 매너까지. 식자재는 마을에서 농사하고 키운 걸 받아쓰는 유기농이라니! ‘고향에 내려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며 호강에 겨웠네. 지금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 놀리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낭만에 취해 시시덕거리는 책이라 말하면 서운하다.

분명히 이 책은 따뜻하다. 하지만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껍질을 벗겨보면 씁쓸하다. 요리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린코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가족들에게 런치세트를, 매일 상복만 입던 첩 할머니를 위한 코스 요리를, 구마씨를 위한 카레를 선사한다. 린코의 요리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그리고 마음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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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 사계절'의 이치코는 친구 키코와 싸웠다. 그런 그녀들의 화해방법은 음식. 키코는 냄비 안에 카레를 만들어 이치코를 찾아온다. 이치코도 사과를 받아들인다. 그리곤 집에 있던 밀의 껍질 부분인 밀기울을 밀가루와 섞어 반죽해 밀대로 민 후 석쇠에 구우며 함께 차파티를 만든다.

그렇게 서로가 가지고 있던 인도풍 치킨 카레와 차파티를 나눠 먹는다. 언제 싸웠냐는 듯 사이좋게.

*

그리고 '린코'와 '이치코'는 마을에서 생활하며, 엄마를 조금씩 알아간다. 사실 두 주인공에게 엄마란 좋은 기억만 안겨준 사람은 아니었다.

린코에게 엄마란, 자신을 불륜 상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로 만든 사람. 밤에 늘 술집으로 나가 자신을 외롭게 했던, 하는 말마다 통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인스턴트를 주로 먹고, 음식이 썩든 말든 냉장고에 넣고 보는 사람. 하지만 그 행동 안엔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뭐든
냉동실에 넣어두면 돼.
그리고 필요할 때
전자레인지로 해동시키면 대부분은 괜찮아.


라고 말한 엄마의 냉동실엔 린코의 어린 시절 사진 2장과 탯줄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없는 밤에 딸이 무서워할까 봐 다락방에 부엉이 자명종 시계를 숨겨둔 엄마의 마음. 그걸 헤아리고 엄마를 안을 용기가 생겼을 때 엄마는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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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의 엄마는 5년 전 어떤 암시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를 두고 말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엄마는 거짓말과 진실을 섞어서 하는 사람. 위 안에는 개구리가 살고, “누텔라”는 발라서(塗って:누테) 먹으니까 사투리로 “누텔라”라고 설명해 최근에야 그게 거짓말이었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이치코가 보는 엄마는 뭐든지 덜렁대고 대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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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이치코는 엄마의 요리를 자기식대로 재현해나간다. 그런데 푸성귀 볶음 맛은 영 따라 할 수가 없다. 푸성귀를 씻고, 자르고 볶는 순서는 같은데 엄마 거랑 씹는 맛이 다른 것이다. 그러다 푸성귀의 껍질도 하나하나 벗겨본다. 그러고 나서야 숨어있던 빈칸을 찾는다.

“또 볶은 거뿐이야? 좀 정성 들인 음식 좀 먹어보자”고 말했던 어린 날의 이치코는 지금에서야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덜렁대고 대충한 건 나였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몰랐던 엄마와 마주한다.

*

그렇게 ‘린코’와 ‘이치코’ 둘 다 엄마를 매개로 새로운 변화를 찾는다.

사실 이 둘은 마을에서 투명한 인물이었다. 린코는 엄마의 비상금을 찾았더라면 다른 지방으로 가서 생활했을 것이고, 이치코는 물총 오리를 위한 집을 만들면 이곳에 영영 정착하게 될까 봐 실행을 못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고향은 도피의 공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연과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파란빛과 먹구름이 반으로 갈린 하늘 같은 불안전한 반쪽의 상태인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귀향을 쉽게 생각하는 우리를 위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죽은 후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린코는 죽은 비둘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엄마가 비둘기의 몸을 빌려서 온몸으로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러 온 것으로 생각하며 다짐한다. 엄마가 없는 이곳에서 달팽이 식당에서 요리를 계속하기로.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기로. 먹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요리를 만들기로.

이치코는 엄마의 편지를 읽고 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계속 도망쳤던 자신을 마주 본 듯하다. 진취적인 마음으로 살 곳을 찾기로. 마을에 자신이 있을 곳을 만들겠다고 하고 떠난다. 그 말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땅을 제대로 디뎌보기로 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이치코는 5년 후 다시 마을로 돌아오며 끝이 난다.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요리를 만들었던 린코도 자신을 위해 때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했던 이치코도 위로의 마지막 종착점은 ‘나’ 자신이었던 책, "달팽이 식당"과 영화 "리틀 포레스트 : 사계절"이었다.



우리를 위로하는 대사 - “리틀 포레스트 : 사계절”에서

뭔가에 실패해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했어
맞은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였겠지만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갔을 거야
그런 거면 조금 낫겠지
아니, 그것보다도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면서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
내가 그리는 ‘원’도 점차 크게 부풀어
조금씩 ‘나선’은 커지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힘이 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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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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